2
부산메디클럽

심우현의 규슈 문화리포트 <19> 지금도 전해지는 뱌크렌의 기구한 사랑

석탄왕과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 그리고 대학생과 사랑이야기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1-30 20:33:33
  •  |  본지 19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야나기하라 뱌크렌.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의 이토 덴에몬 저택에 그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는 석탄산업의 번성기가 시작되던 1906년에 건축된 대저택이 있다. 이 저택은 당시 석탄왕으로 불리던 이토 덴에몬의 집으로 지금으로 치면 한국 재벌총수의 집인 셈이다. 100년이 조금 지난 최근에 이 집이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대지 약 4958㎡(1500평), 건평 약 826㎡(250평) 규모에 유럽식 실내장식과 일본전통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에는 그림 같은 일본식 정원까지 곁들여져 있다.

이 저택에서 10년간 이토 덴에몬의 아내로 살았던 야나기하라 뱌크렌의 기구한 운명과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1885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천왕의 외사촌 혈통으로 당시 관습에 따라 14세가 되던 1900년 가족이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고 이듬해 남자아이를 출산한다. 하지만 정신박약 증상이 있던 남편과 힘든 결혼 생활을 지켜보던 뱌크렌의 가족은 결혼 5년 후 그녀를 이혼시키고 말지만 그녀가 낳은 아이는 남편의 어머니에게 빼앗겨 버린다.

야나기하라 뱌크렌은 이혼 후 친가로 돌아와 감금과 같은 감시생활 속에서 유일한 낙이었던 시 쓰기에 몰두했다. 그런 답답한 시간이 흘러 1911년 나이 27살에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상대가 바로 당시 52세의 이토 덴에몬. 그 결혼은 '목적'이 전제된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되는 감시 생활에서 탈출하여 어디로든 빠져나가기를 원했다. 탄광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토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이었기 때문에 부인 만큼은 좋은 집안의 박식한 여자를 원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순탄하지 못했다. 대저택에 하인 20여 명을 거느리며 공주처럼 살던 뱌크렌은 남편의 출근준비, 청소, 세탁, 식사 등 집안의 모든 일은 직접 하기 원했지만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만다. 그리고 결혼한 여자라도 사회참여와 공헌에 자주적으로 나서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당시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그렇게 활동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남편 이토 덴에몬은 그 저택에 몇명의 첩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민망하고 방탕한 일도 자주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의 나날을 보내던 뱌크렌은 시는 계속 썼다. 그렇게 시를 쓰며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 남자는 미야카키 류스케로 동경제국대 법학과에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미야자키는 여성의 사회적 인권 확장 등 사회혁명을 꿈꾸던 젊은이였다. 당시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교제하는 것은 커다란 금기였고 간통죄가 있던 시대였다. 뱌크렌과 미야자키의 사랑도 남의 눈을 피해 2년 동안 700여 통의 러브레터를 주고받으며 이어졌다. 그러던 중 1921년 전대 미문이라고 할 만큼의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만다. 어느날 뱌크렌이 일본의 대표적 일간지 '아사히신문'에게 남편 이토 덴에몬에게 이별을 고하는 절연장을 투고해 크게 게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당대 일본의 3대 미인으로 꼽히던 뱌크렌과 석탄재벌 부부 이야기는 일본사회에 주요 관심거리였기 때문에 뱌크렌이 남편 몰래 투고한 절연장은 전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한다. 그 절연장은 '돈의 권력을 가졌다고 하여 여성의 인격적 존엄을 무시하는 당신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합니다'라고 시작한다. '아내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권리와 존엄을 부정했기 때문에 집을 나온다'라고 선언은 이어진다.
그 뒤 연일 신문 지상에서는 뱌크렌의 행위를 두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과 비난이 이어졌다. 이토 덴에몬은 사회적인 관심을 피하고자 간통죄 고소 대신 조용히 이혼을 허락해준다. 부와 명예를 뿌리치고 가출하여 이혼한 그녀는 호적에서 제명당하는 시련과 궁핍한 생활을 겪어야 했지만 앞선 두 번의 결혼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1967년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사회를 떠들석 하게 했던 1921년의 뱌크렌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이웃나라 일본의 일이지만 여성사에서 뜻있는 사건의 하나로 공유하자는 것이 그 하나이고, 부산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규슈에 남아있는 알려지지 않은 문화사의 일부라는 점이 그 두 번째다.

사진가·후쿠오카 아시아포토그래퍼스갤러리 기획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

무료만화 &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