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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大 트레일을 연다 <12> 울산 신명~개운포(약 85㎞)

[창간 63주년 특집] 통일전망대 ~ 부산 650㎞

신라 왕들의 바다정원 가는 길, 걸림돌도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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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트라이앵글…감은사·이견대, 문무대왕 수중릉
- 만파식적 울림 벗어나 원전 공사로 우회한 '석탈해왕 촌' 나아리
- 울산 신면~주전 해변길, 화암주상절리·몽돌밭 수려한 자태 뽐내
- 시내구간 유격전 후 대왕암공원·슬도 만나
- 동남부 공단 즐비, 독한 매연·소음 복병

만파식적(萬波息笛)! 이름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되는 기이한 피리.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연은 이렇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하였다.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하늘 수호신이 된 김유신은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왕이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만파식적은 보이지 않는 음률이다. 그 음률은 마음의 파도다. 마음으로 들어야 들린다.

■만파식적의 울림

   
문무대왕비의 설화가 전해지는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 수중릉은 신라의 문화영웅들이 만든 역사 문화의 트라이앵글이다. 특히 감은사 3층 석탑 앞에서는 옷깃을 여며야 한다. 이 높은 탑은, 우리 국토의 의식과 정신이 오늘날처럼 얼 빠지고 넋 나간 것이 아니었음을 실증하고 있다. 이견대(利見臺). '이로운 것이 보이는 둔덕'이니 찾아가 보고 싶은 충동이 그냥 인다. 지금 이곳엔 이견정(利見亭)이란 정자가 들어서 있다. 정자에서 보면 문무대왕 수중릉이 빤히 보인다. '상상하는 역사'가 고증된 역사보다 더 소중할 수 있음을 깨우치는 공간이다. 소설가 박태순은 "만파식적에서 오늘날 평화, 화해, 화합의 상징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걷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을 듯하다.

문무대왕릉을 벗어나자 월성원전이 코앞에 다가선다. 한쪽에선 경주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공사가 한창이다. 해안길은 막혀 있다. 31번 국도 우회로는 오르막이면서 굽이지고 멀다.

힘겹게 돌아나오자 경주 양남면 나아리 해수욕장이다. 나아(羅兒)라…. 알고 보니 '신라의 아이'다. 여기서 신라 4대 석탈해 왕이 났다고 한다. 마을에 '석탈해왕 유허비'가 있다. 나아리의 지명들이 예사롭지 않다. 수아(收兒)는 석탈해를 거두어 들인 곳, 장아(長阿)는 석탈해가 자라던 언덕이라고 주민들이 귀띔해 준다. 나아리 아래의 나산(羅山)은 신라 육부촌과 관련 있다고 한다. 원전이 아니었다면 '신라촌'이 되었을법한 마을이다.

■울산 신명-주전 해변길

   
하서리-수렴리를 지나자 울산 땅 신명이다. 바닷가에 강동 화암주상절리가 수려한 자태를 뽐낸다. 신생대 3기(약 2000만년 전)에 분출한 현무암 용암이 냉각하면서 생긴 절리로 동해안 용암 주상절리 중 가장 오래됐다.

강동 몽돌밭으로 들어가 맨발로 걷는다. '자갈자갈~' 모가 나지 않고 새알같이 둥근, 그래서 발바닥이 함께 둥글어지는 자연지압이 잠시나마 피로를 풀어준다.

울산 해안길은, 정자→당사항→주전 해변→안삼→방어진으로 이어진다. 울산 북구 당사동을 지나다 옛 동해분교에 들어선 '추억의 학교와 자연사 박물관'을 본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파충류 40여 종을 전시, 체험활동도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주전 해안은 울산이 자랑하는 12경 중 하나. 새알처럼 반질반질한 몽돌들이 해안 1.5㎞에 즐비하다. 까만 자갈밭을 파도가 만드는 포말이 쉼없이 휘감는다. 주전봉수대 입구에서 안삼 삼거리까지는 주전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주전고갯길의 마골산 기슭에는 테마식물수목원이 볼거리다.

■대왕암 공원~슬도

   
울산 12경으로 꼽히는 주전 해변길. 아기자기한 포구와 몽돌밭 등 볼거리가 즐비하다. 사진제공=울산 동구청
세계 제1의 조선기업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를 흔히 조선 메카 정도로 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바다와 관련한 낭만을 즐길 수 있고 내륙에는 산림휴양시설이 적지 않다.

안산삼거리에서 일산해수욕장 쪽으로 향한다. 시내 구간을 유격전하듯 통과하면, 방어동 바닷가에 대왕암이 나타난다. 경주 대왕암과 울산 대왕암은 이름이 말해주듯, 전해지는 이야기가 비슷하다. 경주 대왕암이 문무대왕릉 수중릉인데 비해, 울산 대왕암은 문무대왕 왕비의 수중릉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대왕암 바로 앞에는 1906년 세워진 울기등대가 있다. '울기(蔚埼)'는 '울산의 끝'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 일제가 울기공원이라 불렀던 이곳은 2004년에 대왕암공원으로 바뀌었다. 대왕암 공원에는 네 갈래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짧게는 1.8㎞, 길게는 3.6㎞에 이른다. 모두 걸을 만하다.

대왕암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슬도(瑟島)'가 빼꼼 머리를 내민다. 섬 전체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닷물이 드나들어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낸다는 바위섬이다. 슬도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방어진항이다. 화암추 등대가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울산 통과, 묘책을 찾아라

울산은 동해안 트레일의 마지막 복병이다. 태화강을 기준으로 울산의 북동부는 그런대로 걷기가 괜찮지만, 동남부는 석유화학단지, 온산공단 등 대형 공단지대가 즐비해 걷기가 고역이다. 실제 울산을 걸어서 관통했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몇 년전 동해안 길 전 구간을 답파한 (사)우리땅걷기 회원들도 울산은 버스를 타고 건너뛰었다고 한다. 무슨 묘책이 없을까.

(사)걷고싶은부산 박재정 상임이사는 "울산 구간은 생태하천으로 변신한 태화강을 포인트로 삼아 강변 산책로를 잘 활용하고, 공단지대는 우회로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동해안 트레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해안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이성근 사무처장은 견해가 다소 달랐다. "냄새난다고 공단지대를 건너뛰어서는 안된다. 과거 우리 사회를 뒤흔든 온산공단의 온산병(공해병) 등을 울산시가 지향하는 생태도시 개념과 연관시켜 이 구간의 스토리텔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방어진 삼거리로 나와 시내 진입을 시도한다. 문재로를 지나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현대미포조선→염포부두까지는 이들 사업장의 담벼락 길이 제법 괜찮다. 염포삼거리에서 아산로로 접어들면 태화강 하구 둑방길이 명촌교까지 이어진다. 명촌교 건너 울산 신항 쪽으로 들어간다. 이제 공단지대다.

울산 신항과 울산해양수산청을 지나자 장생포 고래박물관(남구 매암동)이 나온다. 고래로를 따라 장생포항→석유화학단지→처용암(개운포)→개운교→온산공단→우봉항까지 31번 국도를 따라 이동한다. 공단 도로에도 대부분 인도가 있긴 하지만, 매연과 소음을 감수해야 한다. 대왕암에서 우봉항까지는 거리가 39㎞, 도보로 12시간이 꼬빡 걸린다. 갈 길은 멀고 걸림돌은 많다.
# 생태하천 태화강, 새 휴식공간·명물로

- 설화 흐르는 처용암, 공단에 포위돼 처량

   
울산의 얼굴 태화강의 산책로.
울산 구간 전체는 복잡하지만, 태화강(46.1㎞)만 보자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진다. 최근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태화강은 울산의 얼굴이자 자존심이다. 중구 태화동과 남구 신정동을 잇는 십리대밭교(인도교)는 울산의 새로운 명물로 떴다.

태화강의 다채로운 산책로는 울산의 또다른 자랑거리. 울산시 태화강 관리단 관계자는 "정해 놓은 걷기코스는 없지만, 중 하류 거의 전구간에 걸쳐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주변 명소와 연계해 걸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재)울산걷기연맹은 태화강 30㎞ 걷기 코스를 제시한다. 태화강 둔치에서 출발해 태화강 산책로~태화강 전망대~구 삼호교~태화강 산책로(중구)~십리대숲~태화강 대공원~십리대밭교~태화강 산책로(남구)~학성교~명촌대교~동천강 산책로~진장교~동천강 산책로~태화강 산택로(중구)~태화교~둔치(도착) 회귀 코스다. 태화강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한다. 태화강 관리단 관계자는 "늦가을 명촌교 아래 둔치의 억새밭 길도 일품"이라고 추천했다.

태화강이 뜨는 데 반해, 울산의 또다른 상징인 처용암(남구 황성동)은 신세가 처량했다. 신라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가 흐르는 처용암이 공단과 항만에 포위된 형국이기 때문. 처용로, 처용동, 처용공원, 처용문화제 등 사회문화적으로 처용이 차용되고 있지만, 정작 처용은 개운포(開雲浦)의 구름(스모그) 속에 갇혀 있다.

처용암을 마주하는 곳에 '처용가비'가 세워져 있다.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처용가 전문)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처용이야말로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가 아닌가.

처용암을 보러 약 2㎞를 따라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돌아나왔다.

국제신문·(사)걷고싶은부산 공동기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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