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정준모의 한국미술과 부산 <7> 다방, 차 대신 예술을 담다

전쟁 중 광복동 거리 다방은 예술인들 사랑방 · 전시공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03 19:31:25
  •  |  본지 19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이수억 화백 1953년작 '구두닦이 소년'
6·25전쟁이라는 겨레의 불행을 딛고 서울 명동을 대신해 한국의 문화중심으로 자리잡은 곳이 바로 '광복동 거리'였다. 이곳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매업과 유흥업소 다방 등이 밀집해 있고, 신창동과 창선동 일대의 국제시장은 전국 유일, 최대의 도매시장으로 한국전쟁 전후에는 전국의 상권을 좌지우지했던 곳이다. 당시 광복동 거리 남북 양쪽으로는 다방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 다방들은 단순한 다방이 아니었다. 전쟁 중 유일한 음악 감상실이자 전시공간, 갈 곳 없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광복동의 다방은 예술을 피워내는 연못이었다.

당시 다방들을 열거해 보면 밀다원, 금강다방, 대청동다방, 대도회다방, 뉴서울 다방, 다이아몬드다방, 루네쌍스다방, 봉선화다방, 늘봄다방, 휘가로다방을 비롯해 창선동의 실로암다방, 광복동 입구의 에덴다방, 국제시장 안의 태양다방, 동광동의 설야다방, 귀원다방, 정원다방, 일번지 다방, 상록수다방, 향촌다방, 망향다방 등이 있었다. 춘추다방, 녹원다방, 청구다방도 오갈 곳 없는 화가나 문인 음악가들의 사무실, 작업장, 연락사무소 노릇을 했다. 다방 외에 전문적인 전시장도 광복동에 함께 하고 있었다. 국제구락부, 동양상회, 창선동의 미국공보원, 외교구락부, 문화회관, 미화당백화점 화랑, 부산향상의 집, 피란 와있던 국립박물관 등이 그것이다. 미화당백화점 화랑은 특히 1952년 봄 전쟁 중에 개관했다.

절망과 허무에 빠진 예술가의 실존주의적 정신 궤적은 밀다원에서 찾을 수 있다. 김동리의 '밀다원시대'라는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는 명작을 낳은 곳이 밀다원이다. 이곳은 문인들도 많이 드나들었지만 전쟁 중 미술전람회가 가장 많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혁림이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밀다원에는 김동리 황순원 조연현 김팔봉 유동준 등 문총 중심의 문인들과 부산의 김말봉 오영수가 주로 모였고 금강다방에는 박인환 김경린 이봉래 김규동 등 후반기 동인들이 주로 모였기 때문에 밀다원파와 금강파라는 말도 생겨났다. 김환기와 특별히 친했던 금강다방 주인은 일본에서 연극을 했던 이로 그가 주방에서 커피를 끓이고 그의 딸이 카운터를 지켰는데 딸의 미모는 금강다방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신사실파 화가들이 3회전을 열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곳도, 이중섭이 생계를 위해 삽화를 연습하고 은지화를 그리던 곳도 이곳이다.
김송 조영암 임긍재 등은 태백다방에 모였다. 그들은 다방에서 차 대신 '낙동강' 소주를 마셨고 줄리엣 그레코의 샹송이나 베토벤의 '운명'에 운명을 맡기기도 했다. 이브 몽땅의 '고엽'도 전쟁을 잊고 잠시 정신적 귀족으로서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남포동의 스타다방에서 시인 전봉래(1923~1951)는 시대의 추위와 피란살이의 실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젊은 나이로 죽음을 택했다. 전봉래가 목숨을 끊은 지 여섯 달 만에 시인 정운삼(1925~1953)이 밀다원에서 자살하고 만다. 이렇게 다방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가 죽던 날 김말봉과 김환기 등이 있었지만 그의 자살을 막지는 못했다. 늘 앉아있던 그 모습 그대로 앉아서 죽음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다방은 미술전람회가 끊임없이 열리는 공간이었다. '미의 축제'라 일컬었던 '3·1절 기념 종군미술전'과 제4회 대한미술협회전이 광복동에 자리 잡았던 모든 다방에 분산되어 열렸다. 그때 광복동 일대는 '미술문화의 거리' 또는 '미전의 거리'라 불렸다. 휴전이 다가올 즈음, 창선파출소 옆 골목에 자리잡은 '망향다방'과 부근의 선술집 '곰보집'은 김경 임호 김종식 한묵 이시우 이중섭 등 화가들을 비롯한 예술인들과 화가 지망생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서울이나 외지에서 피란온 화가들의 우월감과 자부심 그리고 관료사회나 경제계의 편향적인 관심은 부산 경남지역의 화가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역의 토박이 화가들은 김종식의 대청동 집에 자주 모였고 토벽회를 결성하여 1953년 3월 '루네쌍스다방'에서 창립전을, 이어 10월에는 '휘가로 다방'에서 두 번째 동인전을 열었다.

국민대 초빙교수·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