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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있다, 부산문화의 길 <4> 부산의 해양문학 어디쯤 항해 중일까

문인들 폭 넓은 바다체험, 문학의 지평 계속 확대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0-09-28 19:57:1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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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열대바다 체험, 어선 고기잡이 등 몸으로 부딪히며 생생한 현장 경험
- 글로 녹여내는 문인들 갈수록 늘어

- 바다와 뗄 수 없는 부산지역 특성 살린 해양문학 작품 늘면
- 미래문학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며 성장할 것

지난해 7월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가 범선 누리마루호로 부산 문학인들을 초청해 부산 인근 바다를 항해하는 승선 체험행사를 펼치고 있다.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 제공
한국에서 태평양의 괌까지 비행기로 4시간. 괌에서 또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가면 미크로네시아연방국의 한 지역인 축(Chuuk)이다. 이름부터 낯선 미크로네시아연방국은 7500 여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축 지역은 총 연장 224㎞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환초(고리 모양의 거대한 산호초 군락)인 축 환초 안에 있다. 이 먼 곳에 한국의 해양연구소가 있다. 한국해양연구원이 2000년 연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다.

부산의 동화작가 한정기 씨는 2007년 9월 한국해양연구원이 모집한 열대해양체험단에 뽑혀 여기서 1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올해 7월 그림책 '안녕, 여긴 열대바다야'(비룡소 펴냄)를 냈다. 인기 모험동화 시리즈 '플루토 비밀결사대'의 저자인 한 씨는 2006년 11월에는 정반대 체험을 했다. 극지연구소가 주관한 극지연구체험단에 선정돼 남극세종기지에서 4주 동안 머물렀던 것이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어린이들에게 극한의 환경에서 활약하는 연구원들의 생활을 전하고자 냈던 그림책이 '남극에서 온 편지'(비룡소 펴냄·2008년)다.

한 씨는 "일상의 체험이 완전히 변해버려 사물을 새로운 차원에서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를 형상화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림책이란 형태로 전했다. "남극 드레이크만의 험한 물살과 펭귄, 해표, 지의류까지 공평하고 경이롭게 살아가는 생태를 봤죠. 이를 보존하고 알려야 한다는 책무감도 들었고. 열대바다로 갈 땐 스킨스쿠버부터 배웠어요. 그 덕에 열대바다 속도 체험했고, 거기 주민들과 한국 연구원들에게 저마다의 바다가 어떤 의미인지 접근해볼 수 있었죠." 한 씨는 "바다를 주제로 새 작품을 구상 중"이라 했다.

현재 상황에서 한 씨가 행한 일련의 활동을 해양문학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 판정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해양문학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씨 사례는 부산 아동문학이 바다를 받아들이고 형상화하는 방식과 태도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바다체험

미크로네시아에서 열대 바다 속을 체험하고 있는 동화작가 한정기 씨.
아동문학가 공재동 씨는 지난달 4일 부산시 주최, 부산문인협회 주관 2010 해양문학제의 제15회 한국해양문학 심포지엄에서 '해양문학과 아동문학' 발제를 통해 이렇게 정리했다. △최근 이상문의 동시집 '바다 누리 아이 누리'가 해양동시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아동문학 전체로 볼 때 해양동시는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경남의 임신행 씨가 '해저동굴'(1984) '갈매기섬의 아이들'(1985) 등으로 '해양동화 장르 개척자'로 꼽히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해양동화를 개척한 작가는 '용왕 삼국지'(1982) '남해바다 이야기'(1985) '동해바다의 왕국'(1991) 등을 쓴 부산의 정진채 씨를 꼽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정진채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다가 부산의 소민호 씨가 1999년 처음 출간하고 2009년 새로 펴낸 '형제섬의 비밀'이 본격 해양동화의 시대를 열고 있다

'형제섬의 비밀'은 작가가 10여 년 스킨스쿠버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렇게 보면, 비록 아직 본격 해양아동문학을 표방하지 않았지만 한정기 작가는 바다체험의 지평을 넓히면서 형태 면에서도 다채로워진 면모를 보인다. 그 속엔 '바다를 통한 체험의 전변(轉變)과 인식 변화'라는 해양문학의 특징도 녹아있다.

어선을 타고 고등어잡이 체험을 하고 있는 동길산 시인.
최근 바다체험 통로는 다양해지고 있다. 문인들의 승선 체험 프로그램이 전국 차원에서 간간이 이뤄져왔는데, 부산에서 문학·예술인의 해양체험을 본격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시행된 것이다. 부산문화재단(대표이사 강남주)과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이사장 김임권)이 지난 7월 공동으로 시행한 '문화예술인 승선 레지던스 사업'이다. 수산업의 의미와 현실을 알리고 싶어한 대형선망수협의 바람과 '해양수도'를 표방하는 부산에 해양문화의 체험과 축적 구조를 만들고 싶어한 부산문화재단의 의기투합 덕분이었다.

부산의 동길산 시인은 이 사업 참가자로 뽑혀 고등어를 잡는 혜승 153호를 타고 제주 해역의 근해를 1주일 다녔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사진가 문진우, 미술가 김범수 씨 등 함께 참가한 예술인들은 같은 선단의 다른 배에 각각 승선했다. "부산 사람이지만 헤엄도 못치고 바다가 두려웠다. 체험으로 극복하고, 감각과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 싶었다. 배에는 고된 작업만큼이나 끈끈하고 인간적인 삶이 있었다. 무척 중요한데도 위축되고 외면받는 수산업의 현장은 안타까웠다. 사방이 막막한 수평선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창조성을 느꼈다. 완전한 미지의 세계이면서도 치열한 삶의 의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소였으니까. 이 사업이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작가들을 만나 묻다

지난 24일 남포동 한 찻집에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원들이 모여 해양문학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길녀, 심호섭 시인(회장), 천태봉 수필가, 김광자 시인, 옥태권 소설가.
바다를 직접 겪고 새 방향에서 삶을 이해하며 감수성을 틔우는 통로는 이렇게 조금씩 열리는데, 이런 전개가 '해양도시' 부산의 문화적 콘텐츠의 핵심을 이뤄야할 해양문학의 상황과는 어떻게 맞물리는 것일까. 이 점을 묻기 위해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회장 심호섭 시인·해사고 교사)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해양문학을 오래 고민해 온 '선수'들이고 전체 맥을 잡아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지난 24일 심호섭 회장을 비롯해 옥태권 소설가, 김광자 김길녀 시인, 천태봉 수필가 등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의 회원들을 남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이들은 고민이 많았고 토론은 그만큼 진지했다. 주제는 한 방향으로 수렴됐다. "해양문학을 왜, 어떻게 향상시키고 독자의 마음에 심어야 하는가?"

소설가 옥태권 씨와 현역 상선 기관사인 수필가 천태봉 씨의 인식은 현실적이었고 부산이라는 입지와 직결됐다. "문학은 삶을 반영한다. 한국의 삶을 보자. 삼면이 바다라는데 북쪽이 막혀 있으니 섬과 다름 없다. 우리 국민의 삶은 수출의 99%,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배에 의존한다. 부산도 경제적 생산을 절반 가량 해운과 수산에서 낸다고 한다. 이보다 명백한 현실이 또 있는가? 그런 역할과 현실을 해양문학은 반영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현대인은 일상성에 갇힌다. 일상성에 갇히면 갱신이 안 된다. 이런 일상성을 파열시킬 수 있는 것이 바다에 있다. 안전한 땅위에서 영속될 것 같던 삶도 완전히 다른 공간인 바다에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면 삶의 차원이 달라진다. 해양문학은 그런 점에서 미지의, 풍성한 미개척지다."

김광자 시인은 "해양문학이 역사부터 일상까지 흡수하면서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했고 김길녀 시인은 "관련 인적 네트워크 확충이 우선 급하다"고 밝혔다. 심호섭 회장은 "결국 그런 잠재력을 입증하려면 작품으로 말해야 하고 그건 결국 우리 몫"이라고 아퀴지었다. 해양문학이 21세기 중엔 결국 지구유기체론이나 생태론과 결합해 미래문학의 한 부문으로 성장할 것이고 그런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옥태권 작가의 정보도 인상 깊었다. 이처럼 가능성이 큰 장르가 꽃필 수 있는 좋은 조건의 도시 중 하나가 부산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 한국해양문학가협회

- 부산 문학인들이 주축, 해양문학 활성화 앞장

현재 한국의 해양문학을 이야기할 때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회장 심호섭 시인)를 뺄 수 없다. 이 협회의 근거지는 부산이다. 회원은 70여 명. 부산 서울 등 전국에 퍼져 있다. 이 중 50여 명이 부산 문학인이다. 원래 2001년 광주에서 차용우 씨 등이 주도해 한국해양문학가협회가 발족한 적이 있지만 활성화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부산 해양문학인들이 주축이 되어 2003년 새롭게 한국해양문학가협회를 결성했고 이 단체가 사단법인화돼 지금에 이른다.

출범 당시 한국 해양문학의 선구자들인 부산의 고 김성식 선장과 해양소설가 천금성 씨 등이 비중 있는 역할을 했다. 천금성 씨, 황을문 전 한국해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구모룡(한국해양대) 교수 등이 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이 협회가 창간한 반연간지 '해양과 문학'(통권 13호 나옴)은 전국 해양문학 현황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등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에 해양문학상이 늘어나고 해양문화재단이 계간지 '문학바다'(통권 2호)를 발행하는 등 해양문학의 외연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독자들 사이에 해양문학 자체의 공감대는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다.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 한편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와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해양문학인들의 과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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