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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8> 천지무예도 창시 왕호 씨

"영화처럼 화려한 무술, 연기 아닙니다"

  • 국제신문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10-09-16 19:12:46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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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호흡·기공 모두 연마한 뒤에야 입문하는 천지무예도
- 영화에서만 봤던 액션 실전무술로 승화
- 11살에 태수도 수련, 중·고교 땐 태권도 두각
- 고2 때 체육관 운영 사범, 해병대 태권도선수단 활약
-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 액션배우로 무술 연기
- "무술 알아야 액션배우"
- 대학에서 후진 양성, 제2의 이소룡 키우는 게 꿈

   
무술을 영화 영역으로 확장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무예인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왕호 씨가 액션배우 특유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왕호(58) 씨는 영화감독이자 영화배우로 더 많이 알려진 무예인이다. 그는 불멸의 액션스타 이소룡이 키운 홍콩의 영화 제작사 '골든 하베스트'와 1975년 연을 맺은 이후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소룡의 유작인 '사망유희'(The Game of Death·1978년 5월 개봉)에 출연, '이소룡과 치열한 무술연기 대결'을 벌인 이력을 소지하고 있다. 물론 영화 속의 이소룡은 대역이다. 중국 배우 원표와 한국 배우 김태정이 번갈아 대역을 맡아 연기했다. 영화 '사망유희'는 이소룡이 마지막 격투 장면 등 영화의 3분의 1을 찍은 상태에서 1973년 갑자기 의문사하면서 사장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추모하는 팬들이 끊이지 않아 영화사에서 대역을 내세워 이 영화를 다시 제작한 것이다. '사망유희'에서 이소룡과 맞붙은 액션배우들은 대부분 사망했지만 왕호 씨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시나리오에서 그렇게 처리했지만 그는 이런 해석을 내렸다.

"이소룡이 자신의 몫까지 살다 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래 살겠다는 그는 생을 다할 때까지 영화 현장에 있겠다고 전했다. 왕호 씨는 이제 전인미답의 무술 영역에 대한 개척자로 나섰다. 천지무예도를 창시하고 기반을 착실하게 다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와 연관이 깊은 무술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04년 6월 국내 무예계에 부각된 사단법인 '천지무예도협회'. 낯선 이 무술단체의 실체가 궁금하다. 그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PIFF)의 회고전에 초청되는 등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이 쌓인 이 영화인이 벌이는 새로운 무술 영역의 개척 작업은 특별하다.

■영화산업과 연결…액션배우를 키우는 실용무술

   
왕호 씨의 본명은 김용호. 그는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 이 예명을 사용했다. "골든 하베스트 소속 배우가 된 뒤 국내 영화 팬들에게 이국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어 이름을 바꿨지요." 왕호 씨는 주연을 맡아 홍금보 등과 함께 출연한 '사대문파'(The Shaolin Plot·1977년 4월 개봉)를 촬영하기 전인 1975년 국내에서 먼저 '밀명객'과 '흑룡강'을 찍었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배우 왕호'로 살고 있다.

"무술을 익혔고 영화 장르의 예술도 접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의 무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지요." 그래서 이 시대 주요 산업의 하나인 영화에 필요한 인력을 키우는 무술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액션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무술과 더불어 영화적인 테크닉을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무술만 따로 한 뒤 영화계에 뛰어든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영화산업의 시대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액션배우는 감수성이 짙은 멜로영화 등 다른 내용의 영화에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도 무술을 모르면 액션배우 역을 직접 소화할 수 없습니다."

그가 창시한 천지무예도는 결국 '싸우기 위한 무술이 아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액션 상황을 동작으로 연결시키는 실전무술이다. 이 새로운 개념의 무술은 명상과 호흡, 기공 등 세 가지 기본 분야를 모두 습득해야 실전에 들어가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천지무예도는 어떤 무술일까. '기본 바탕을 닦은 행함은 흔들림이 없고 명상과 호흡 그리고 기를 통해 내면의 바름은 바른 동작을 낳는다'. 천지무예도의 기본수련법에 적혀 있는 글이다. 여기서 전진 지르기와 막기, 막기와 발차기, 목검수련, 전진 3각 지르기와 막기, 원형 지르기와 막기, 심지어 특수 점프 발차기 등 천지무예도의 실기 부문을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도예 무술을 비롯해 기공, 서도, 리듬 무예 등 무(武)와 예(藝)를 접목한 부분은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표정 연기와 영상 지르기-넘어지는 장면 등 영상 무예 분야도 이채롭다.

'무예도에서의 실기나 겨루기에서 일격필살이 그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예도에서의 실기의 목표는 일격 하나하나에 진선미(眞善美)의 완성으로 가는 과정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천지무예도의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기 이전에 던지는 이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되새길 만한 대목이다.
일격필살(一擊必殺). 한 번의 공격으로 반드시 죽인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무예인들이 무술을 시작할 때 가진 꿈이었기도 했을 터. 그러나 그 완성의 목표는 달라야 한다. 남을 해치는 무술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천지무예도는 이제 학계에서도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왕호 씨는 한민대학교 액션영화학과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무술 영역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대학에서는 처음 생긴 이 학과는 올 입시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 "스스로 전문성을 키우게 하는 등 제자들을 올바른 프로 정신을 가진 무예인으로 육성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열정과 노력이 바탕이 될 경우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할 참입니다."

그는 모든 학생들에게 인생의 여백을 남겨줄 예정이다. 그 여백에다 개개인이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과 실기를 채우길 바란다. 단순히 배운 것에만 머무는 제자에 만족하기 않겠다는 스승의 마음이다. 실용무술 천지무예도에서 배출된 인재들 가운데 언젠가는 이소룡에 버금가는 불멸의 액션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

■타고난 무예인…그를 키운 건 확실한 목표 의식

   
무예인 왕호 씨는 1952년 10월 전북 김제 만경면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고 노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당수도와 태수도를 하는 '동네 선배'(그는 그렇게 불렀다)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샌드백을 몰래 치고 선배들의 동작을 되풀이하는 등 어설프게나마 무술에 입문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운동에 대한 그의 열의가 남달랐던 점을 눈여겨본 '동네 선배'로부터 정식으로 태수도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장래 희망은 대한체육회 회장. 꼭 그 꿈을 이루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 뒤 태권도를 배운 그는 2학년 때 전북 남원에서 열린 전국종별태권도대회에 유단자(검정띠)가 아닌 유급자(청띠)로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태권도대회 단체전 우승을 이끈 주장을 맡았다. 그때까지도 그의 부모는 "운동을 하면 나쁜 길로 간다"는 이유로 극구 말렸다. 그 때문에 몰래 농경지 정리작업에 뛰어들어 태권도대회 출전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운동에 일찍 눈을 뜬 왕호 씨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신분으로 1970년 만경면에 체육관을 개설해 사범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사범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고교 졸업 뒤에는 해병대 태권도선수단에 입단하는 신화를 창출했다. 당시 해병대 태권도선수단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대학에서 태권도를 잘한다는 선수들만 입단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1974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한국대표 시범단으로 시연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때 그는 이미 액션스타 이소룡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홍콩의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와 인연을 갖게 됐다. 1975년 해병대 만기 제대 이후 그는 곧바로 영화를 찍는 등 액션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화배우이기 이전에 무예인으로서 참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는 왕호 씨가 불쑥 던진 이 말에는 진정성이 묻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통과 고뇌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자기 목표가 있으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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