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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7> 격투기 창시자 김귀진 씨

  • 국제신문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10-08-26 19:23:40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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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적인 종합무술…초창기에는 소싸움이냐 소리 들어
- 차고 꺾고 조르고 하니 그런 조롱 들었지만
- 넘어진 상대 공격 않고 같은 체급 끼리만 시합, 이종격투기와는 달라

- 한국 최초 격투기 대회, 프로레슬러 천규덕 씨와 77년 화제의 맞대결도
- 무술 홍보 위한 모험

- 열다섯살에 유도 입문, 권투·태권도·킥복싱 투기무술 두루 섭렵…격투기 낳은 밑천
- 올림픽 채택 목표


   
우리나라에서 종합무술인 격투기를 창시한 김귀진 씨가 모처럼 도복을 입고 기본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1977년 12월 7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타이거 김'이라는 킥복서가 한국 프로레슬링계를 호령하던 레슬러 천규덕 씨와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한국 최초의 격투기 대회로 알려진 이날 경기의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 심판진은 천규덕 씨의 승리로 결정을 내렸지만 애매한 판정으로 양 선수 진영에서 서로 치고받고 하는 등 심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체육관은 난장판이 됐다.

그 때문에 이 대결을 녹화 중계하기로 했던 MBC문화방송은 결국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다. 이 대결 전까지 킥복싱 전적 25전 25승을 자랑하는 '타이거 김'은 대한종합무술격투기협회 김귀진(72) 총재의 당시 닉네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격투기'라는 무술을 창시한 무예인이다.

한국 최초의 격투기 대회에 출전한 그의 프로필에는 '태권도 6단, 유도 6단, 킥복싱 7단'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신장은 180㎝, 몸무게 110㎏으로 기록돼 있다. 그는 왜 유명 레슬러에게 도전장을 냈을까.

1977년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이 세기의 대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천규덕 씨는 자신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이 무예인의 도전을 받고 대결을 무척 망설였다"고 밝혔다. 대결에서 '이겨도 본전인데' 만약 패한다면 망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전장을 뿌리친다면 비굴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무림 세계' 원칙이었는지 세기의 대결은 성사된 것이다.

김 총재는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구체적인 경기 내용이나 누가 이겼다고 언급할 필요가 없다"며 "신흥 무술인 격투기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 같은 모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결 덕분에 격투기는 세상에 크게 알려졌으며, 1979년 정부에 정식 무술단체로 등록할 수 있었다.

■치고 차고 꺾고 조르고 던지는 종합무술

   
우리나라 격투기의 창시자 김귀진 총재는 1938년 4월 8일(음력)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부터 유도를 시작했으며, 2년 뒤에는 권투를 배웠다. 19세에는 태권도에 입문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일본에서 유입된 킥복싱을 하면서 전주에서 스파르타체육관을 운영했다. 종합무술인 격투기가 그에게서 창시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그랬다.

"격한 운동을 하면서도 깡패의 길로 가지 않았던 것은 12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자칫 주먹 한번 잘못 사용하면 감옥으로 갈 판인데, 그렇게 되면 그 많은 동생들을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겠냐는 생각이 앞섰지요. 오로지 운동만 했어요." 10남 2녀 중 장남인 그에게는 가족애가 남달랐던가 보다. 김 총재는 모든 동생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이 무예인이 195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격동기에 '옆길'로 새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렇게 따뜻했다.

격투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 총재의 말이 이어진다. "여러 종류의 투기무술을 두루 섭렵하다 보니 종합무술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1964년 그는 치고, 차고, 꺾고, 조르고, 던지는 종합무술 격투기를 창시했다. 그리고 운동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운동과 수련을 종합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신속하게 자기 몸을 방어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격투기협회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지만 기존 무술단체의 반응은 싸늘했다. 심지어 "그게 소싸움이요, 개싸움이요"라는 등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12개 체급을 정립하는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무술화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지요." 그리고 1977년 아직도 한국 무예계에 회자되고 있는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고, 격투기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종합무술로 우뚝 선 격투기 인구는 10만 명을 웃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넘어진 상대는 공격하지 않아요." 김 총재는 일본의 K1이나 이종격투기 등과는 근본적으로 스타일이 다른 것이 우리나라 격투기라고 밝혔다. 충분하게 자기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선수들만 출전시키는 프로와 아마추어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으며, 조상의 얼과 숨결을 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정확한 체중에 따라 12개 체급이 나눠져 있고 체중이 다른 체급끼리는 시합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다. 게다가 "여느 무술 종목하고도 시비를 붙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이제 그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원로 무예인의 반열에 서 있다. 그는 말한다. "그동안 선수들을 데리고 100회 이상 외국에 나가 시합을 했는데 갈 때마다 느낀 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문무를 겸비한 무예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종합무술 격투기 창시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울림이 크다. 오랜 현장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 운동… "믿고 맡겨라"

   
김 총재는 요즘은 운동하기가 어느 때보다 좋은 풍토라고 밝혔다. 학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처럼 운동을 한다고 다치거나 심한 후유증이 생길 우려가 적다는 것이다.

그도 그 시절 무인들처럼 '무식하게' 운동을 했다고 고백했다. "산에서 수련을 했지요. 나무를 뛰어넘는 일을 반복하면서 수없이 다쳤습니다." 나무를 뛰어넘는 수련. 이는 중국 무협지에서 중원을 호령하던 무림고수들이 했다는 수련 방법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무식한 수련이었다"고 이 무예인은 거듭 말했다. 샌드백 속에 톱밥과 모래를 넣고 자꾸 치고 차다 보니 톱밥은 위로 올라가고, 모래는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도 그 시절 무인들은 손발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샌드백을 치고 찼다. 오로지 수련을 위해서라나.

"제 다리를 보세요. 나이가 드니 몸을 사리지 않았던 무식한 운동의 후유증으로 이렇게 피멍이 시커멓게 드러났어요." 김 총재가 애써 보여준 다리를 눈으로 보기가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흉측한 모습'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녀들에게 운동을 시킨다면 각 체육관의 관장을 믿고 교육시키면 됩니다." 그는 운동에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듯이 성실하게 운동을 하면 위기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 12남매의 장남으로서 '옆길'로 새면 많은 동생들의 장래가 걱정이 돼 '오로지 운동만 했다'. 그는 한때 서울 명동에서 한국 주먹계를 호령했던 '유명 깡패'(굳이 그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다)와 10년 동안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지만 '그 조직'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격투기의 창시자로서 어느덧 무술계 원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김 총재는 스스로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7년 심장병과 심부전증 등이 원인이 돼 쓰러진 그는 입원 7일 뒤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가족들은 장례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적처럼 3일 만에 깨어났다. 그는 몸에 두른 주사 바늘 등을 다 떼어내라고 한 뒤 혼자서 기어 다니고 휠체어를 타고 움직였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난 지 열흘 후 퇴원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생명을 얻은 날이 제 생일과 같은 음력 4월 8일이었어요."

다시 살고 있다는 김 총재에게는 새롭게 할 일이 남아 있다. "올림픽 비종목으로 돼 있는 격투기 등 무술 분야를 세계 스포츠계 최대 축제의 장인 올릭픽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종합무술 격투기 창시가가 큰 포부를 갖고 추진하는 이 일의 성사 여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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