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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31> 일본 도쿄필멕스, 야마가타다큐멘터리영화제

'작품'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다

상업영화에 짓눌린 日예술영화의 진흥을 목표로 창설된 도쿄필멕스

인구 25만의 소도시에서 다큐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탄생한 야마가타영화제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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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8-10 20:19:0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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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필멕스 영화제

   
류승완 감독이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제1회 도쿄필멕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무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매년 12월에 열리는 '도쿄필멕스'(FilMex)영화제'는 규모는 작지만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도쿄국제영화제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쿄필멕스는 일본 예술영화 진흥을 목표로 2000년 12월에 창설됐다. 1990년대 전반까지 일본에서는 예술영화가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메이저영화사나 배급사들이 예술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쿄국제영화제 또한 할리우드영화나 상업영화를 선호함에 따라 '새로운 영화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여 하야시 가나코와 이치야마 소조가 주축이 되어 소규모의 새로운 영화제를 출범시킨 것이 바로 도쿄필멕스다. 새로운 예술적 영화와 작가영화를 보고 싶다는 열망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하야시 가나코는 1962년에 태어나 조치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1993년부터 가와카타 기념영화문화재단의 제너럴 코디네이터로 들어가 1998년까지 주로 해외영화제에 일본영화를 소개하거나 주요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해왔다. 이치야마 소조는 영화사 오피스기타노의 프로듀서와 도쿄영화제의 아시아프로그래머로 활동해왔던 영화평론가다.

아사히신문사(2001년 아사히 TV도 합류)와 FM라디오 방송사 J-Wave, 영화사 오피스기타노, 이벤트회사인 디스크 개라지(Disk Garage)를 후원기관으로 조직위원회를 구성한 그들은 2000년 12월 16일 첫 영화제를 열었다. 하야시 가나코가 1998년 홍콩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첫 영화제는 이치야마 소조가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나, 그녀가 2001년에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제2회 영화제부터는 하야시 가나코가 집행위원장을, 이치야마 소조가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도쿄필멕스는 국제경쟁, 특별상영, 특집상영 등 세 부문으로 나누어 매년 30~40편의 영화만을 엄선하여 초청한다. 경쟁부문의 대상수상자에게는 100만 엔의 상금이 수여되고, 심사위원특별상에는 50만 엔 또는 미화 8000달러 상당의 코닥필름이 제공되고 있다. 하야시 가나코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가와카타 기념영화문화재단에는 엄청난 양의 일본영화를 소장하고 있다. 그녀가 이곳에 근무하고 있을 때 일본영화를 초청해야 하는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매년 가와카타를 방문했고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야시 가나코 또한 도쿄필멕스를 창설한 이후 아시아영화와 한국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제1회 영화제에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경쟁에, '반칙왕'(김지운>, '벌이 날다'(민병훈)가 특별상영 부문에 초대되었다. 제2회 영화제에는 당시 키노편집장이었던 이연호 씨가 심사위원이었다. '무사'(김성수)가 개막영화로, '수취인 불명'(김기덕)이 경쟁부문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와 '꽃섬'(송일곤)이 특별상영부문에 초대되었다. 제3회 영화제에는 안성기가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제4회 영화제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이 개막영화로 선정되었고, 김기덕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제5회 영화제에는 배우 문소리가 심사위원이었다.

필자는 2006년 11월17일부터 26일까지 개최된 제7회 영화제에서 미국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 일본 여성영화 편집전문가 오시마 토모요, 일본 영화감독 스와 노부히로, 봄영화사 오정완 대표와 함께 심사위원장을 맡아 경쟁에 오른 9편의 영화를 심사했다. 다음해인 제8회 영화제에는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제9회 영화제 때는 송일곤 감독이 삼사위원으로 참여하여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이 대상을 받았다. 작년에 열린 제10회 영화제에서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의 야노 카자유키(왼쪽) 집행위원장과 후지오카 아사코 프로그래머.
일본에는 도쿄필멕스보다 더 유서 깊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영화제가 있다. 2003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직후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도쿄로 갔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약 3시간 달려 야마가타에 도착했다. 야마가타는 도쿄에서 북쪽으로 350㎞ 거리에 위치한 인구 25만 명의 작고 조용한 도시다. 기차역에서 내려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30분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영화제 사무국에 들러 등록을 마친 후 '고미안 클럽'을 찾아갔다. 이곳은 영화제 기간 일반 식당을 빌려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일종의 페스티벌 카페다. 모든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영화제에 참가한 게스트들이 서로 만나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환담할 수 있는 장소이다. 입장료는 500엔이다. 입구에서 맥주, 정종, 콜라 중 하나를 선택하고 과자 한 봉지를 받아 들어간 후 모자라는 술과 음료는 사 마시면 된다. 오뎅은 무료로 제공되는 안주거리다. 자정이 넘으면 1, 2층이 손님으로 가득 찬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인상에 남는 이들이 많다.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면 오사카든, 교토든 어디든지 찾아가고 심지어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현장을 좇아 한국까지 찾아갔다는 극성스러운 주부, 한국역사를 전공하고 있다는 교수 등 여러 일본인을 만났다. 조그만 도시 구석구석에 붙여진 포스터, 학생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관객과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들, 정성을 다하는 많은 민박시설 등 다큐멘터리 '그 자체'를 즐기는 지역 주민들을 보면서 주민들이 동참하는 축제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는 21년 전인 1989년 야마가타 시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격년제 영화제로 창설되었다. 창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화제는 암스테르담, 오버하우젠과 함께 세계 3대 다큐멘터리영화제로 부상했다. 시상금도 큰 편이어서 대상에는 300만 엔, 최우수상에는 100만 엔, 우수상, 장려상, 특별상에는 각 30만 엔을 수여한다.

이 영화제가 짧은 역사에도 세계적인 영화제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고장 출신이며 일본 다큐멘터리영화계의 거장인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지원과 1회 영화제부터 10회까지 공식직함은 도쿄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실질적으로 집행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해온 야노 카자유키, 그리고 3회 영화제부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오카 아사코의 뛰어난 역량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유내강형의 과묵한 성격인 야노는 영화제의 운영을 전담하고 있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사코는 대외활동을 전담하면서 영화 선정을 위해 많은 나라를 누비고 다닌다.

야마가타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120여 편이다. 중앙공민관의 2개 홀과 뮤즈극장의 2개관을 주로 이용하여 상영한다. 1989년에 첫 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 15편과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 추모전 1편, 기타 5편으로 21편의 영화만이 상영되었고, 부대행사로 '아시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제2회 영화제부터 '아시아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아시아영화와 일본영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면서 편수는 100여 편으로 증가했다. 일본 다큐멘터리영화 흥륭전, 진주만 50주년 미·일 영화 특별전이 열렸고,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제3회 영화제에서는 야마가타 영화제의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해오던 오가와 신스케 감독이 1992년 2월 7일 타계함에 따라 그의 전작 11편을 모아 추모특별전을 열었다. 특히 1995년 제4회 영화제부터, '오가와 신스케'상을 제정하여 수상자에게는 50만 엔을, 장려상 2명에게는 각각 30만 엔을 상금으로 수여하면서 아시아프로그램을 '뉴 아시안 커런츠'로 확대 개편했다.

이 영화제는 한국영화와 인연이 깊다. 한국영화는 1991년(2회) '상계동 올림픽'(김동원)이 처음 소개된데 이어서 1993년에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변영주) 1편, 1995년에는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홍형숙) 등 4편이 상영되었다. 무엇보다 함께 상영된 변영주 감독이 '낮은 목소리'가 처음으로 신설된 오가와 신스케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특별 상영된 '낮은 목소리2'(변영주)를 포함해 '색안경'(정지우) 등 4편이 상영되었고 1999년에는 갈라 프로그램으로 상영된 '낮은 목소리 3- 숨결'(변영주) 등 5편, 2001년에는 '하늘색 고향'(김소영) 등 5편이 상영되었다.

   
필자가 참석했던 2003년 제8회 영화제에서는 '송환'(김동원), '그리고 그 후'(이호섭) 등 5편이 상영되었으며, 김동원 감독이 '아시아 뉴 커런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2007년 제10회 영화제에는 변영주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고, 작년 제11회 영화제에는 '아메리칸 앨리'(김동령)가 오가와 신스케상을 수상하는 한편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김경남), '외박'(김미례) 등 3편이 초청되었다.

IMF의 경제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야마가타영화제는 한때 존폐의 위기를 맞았었지만 위기를 넘기고 영화제가 계속 개최될 수 있게 된 것은 천만 다행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수준 높고 알차게 운영되는 도쿄필멕스와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와 같은 영화축제가 있는 한, 세계의 영화 팬들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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