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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30>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그림같은 항구도시와 아름다운 상영관에 홀리다

58년 역사를 자랑하는 화려한 영화제

본선경쟁부문 외 젊은 감독 작품을 소개하는 '자발테기' 인상적

한국영화는 2000년부터 진출… 꾸준히 초청·수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03 20:24:0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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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영화제 전용관인 쿠르잘의 전경.
지난 2002년 9월.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산세바스티안영화제를 찾았다. 이 영화제는 매년 9월 중순 열리는 탓에 10월에 열리는 부산영화제의 준비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 해에는 부산영화제 개최시기가 11월이 되는 바람에 여유가 생겼다. 2002년은 산세바스티안영화제가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0주년 행사를 준비할 필요가 있던 터라 배울 것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세바스티안은 스페인의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18만 명의 작고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도시 바로 앞 바다는 꼭 조개처럼 생겨 라콘차 만이라고 불리며 이곳은 칸타브리안 해로 이어진다. 라콘차 만 한 가운데 산타클라라섬이 그림처럼 떠 있고 두 개의 작은 산이 학의 양 날개처럼 펼쳐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관보다 더 크게 매료된 것은 영화제 전용관인 쿠르잘, 즉 문화회관이었다.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우루메아강과 라콘차 만이 마주치는 해변에 위치한 이 문화회관은 직육면체의 큰 건물 두 채가 각기 서로 다르게 마주하고 서 있다. 특히 밤에는 육면체의 건물 전체에서 비추는 빛과 바다에 반사되는 빛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야경을 보여준다. 이 건물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가 설계하여 1998년 완공한 후 1999년부터 영화제에서 사용하고 있다.

산세바스티안의 전경.
2002년 9월 19일 개최된 개막식에서는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는 없었다. 기념행사는 이틀 뒤인 21일에 열렸다. 잠실체조경기장과 같은 대공연장에서 거행된 50주년 기념행사는 밤 10시에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장장 5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총4부로 편성된 행사의 1부에서는 기념식, 회고전의 주인공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대한 감사패 수여, 이와 함께 50년의 역사를 담은 기록영화 상영이 있었다. 제2부에서는 지상과 공중을 무대로 활용한 '영화촬영' 주제의 총체극 공연이 눈을 사로잡았고, 제3부는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음악공연이, 4부에서는 3000명의 관객이 함께 어울려 춤추는 댄스파티로 이어졌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다운 연출이었다.

50년의 역사를 넘긴 산세바스티안영화제는 1953년 9월23일에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에는 국제영화제작자연맹으로부터 비경쟁영화제로 B등급을 받았지만 첫 해부터 경쟁영화제로 운영했다. 연맹으로부터는 1955년 경쟁영화제로 정식 승인되었다. 1957년에는 A급 영화제로 격상되었고, 초창기부터 할리우드영화인들을 초청함으로써 '화려한 영화제'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검열제도로 인해 진통을 겪어야했다. 시와 주 정부 및 중앙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를 반증하듯이 어떤 영화제보다도 잦은 집행위원장의 교체가 있었다.

현재 영화제 수장인 미켈 올레치레기 집행위원장은 2001년부터 10년간 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미켈은 1956년생으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방송계에 몸을 담았다. 1990년에는 ETB채널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근무했으며, 산세바스티안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재무관으로 발탁되면서이다. 그는 2001년에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시골아저씨처럼 성격이 소탈하고 쾌활해서 누구든지 만나면 친해질 수 있는 장점이 매력이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관계자와 필자. 미켈 올레치레기(오른쪽 두번째) 집행위원장과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내정된 호세 마리아 리바(오른쪽)의 모습도 보인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는 미켈 이외에도 항상 함께 다니는 호세 마리아 리바가 있다. 마치, 유럽의 기사(騎士)를 떠올리게 하는 공손하고 부드러운 인물이다. 그는 필자와 마주칠 때마다 '마이 프레지던트' 라고 호칭하면서 거수경례를 붙인다. 영화평론가였던 그는 프랑스인이며, 오랜 기간 칸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책임자로 일했다. 1980년 이후 산세바스티안영화제의 이사회 멤버로 현재 제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는 몇 가지 특색을 지녔다. 부산과 같이 벨로드롬이라는 야외상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400㎡의 스크린과 1000석을 마련하여 영화제기간 중 3~4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재미있는 점은 본선경쟁부문과 함께 '자발테기(Zabaltegi)'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자발테기 부문은 1984년에 시작되었고 형식이나 장르,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젊은 감독들이 만든 작품을 초청한다. 본선경쟁부문에서는 황금조개상(최우수작품상), 은조개상(최우수감독상, 최우수남우상 및 여우상), 심사위원상(최우수촬영상, 최우수각본상)을 수여한다. 또한 신인감독상을 본선부문과 자발테기부문에서 선정한 후 시상하는데 수상자에게는 15만 유로의 상금이 수여된다. 1986년에 신설된 '도노스티아 어워드'는 평생공로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도노스티아'는 산세바스티안의 바스크어 명칭이다.) 첫 수상자로 그레고리 팩을 선정한 이후 매년 2~3명의 세계적인 감독과 배우를 시상함으로써 영화제의 성격을 친할리우드적이며, 화려한 영화제로 만들고 있다. 글렌 포드(1987), 안소니 퍼킨스(1991), 로버트 미첨(1993), 라나 터너(1994), 카트린느 드뇌브(1995), 알 파치노(1996), 로버트 드니로(2000), 리처드 기어(2007), 메릴 스트립(2008) 등의 스타가 이 상을 수상했다.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진출한 것은 2000년부터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가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2002년에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자발테기'에 소개되면서 신인감독상 부문에서 '특별언급'되었다. 당시 밤 10시에 공항에 도착한 이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다 돼서야 극장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그녀와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본선경쟁부문에 초대되어 최우수 감독상과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비 경쟁부문에 소개되었다. 2004년에는 '거미숲'(송일곤)이 공식부문에, 2005년에는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국제비평가상과 함께 국제비평가연맹에서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었다. 강이관 감독의 '사과'는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허진호 감독의 '외출'도 함께 초청되었다. 2007년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윤기)과 '어깨 너머의 연인'(이언희)이, 2008년에는 '마더'(봉준호)와 '애니멀 타운'(전규환), '영도다리'(전수일)가 초청된 바 있다.

2009년에 열린 제57회 산세바스티안영화제에는 모두 46개국에서 초청된 202편의 영화가 상영, 16만6113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황금조개상은 중국영화 '난징! 난징!'에 돌아갔다. 지난 10년 간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이끌던 미켈 올레치레기는 개인적인 이유로 2010년 영화제를 치른 후 퇴임한다. 그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희망, 아이디어 그리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세대교체"라고 퇴임 배경을 밝혔다. 2011년 1월 1일부터 산세바스티안영화제를 운영할 새 집행위원장은 호세 루이스 레보르디노스다. 새로운 집행위원장 체제 아래 58년 역사를 지닌 산세바스티안영화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맞게 될까 궁금하다.


# 빌바오를 순식간에 문화도시로 바꾼 구겐하임 미술관

산세바스티안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빌바오에는 구겐하임미술관(사진)이 있다. 사실 산세바스티안에 갔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영화제 50주년행사를 참관하고자 했던 것도 있지만, 빌바오가 지도상으로 산세바스티안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구겐하임미술관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의 원로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거대한 추상형의 은빛 건물은 해마다 황폐해 가던 이 작은 조선공업도시 빌바오를 한 순간에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문화도시로 바꿔 놓았다. 2002년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2층은 전시준비로 문을 닫았지만 1층에서는 설치미술 작품이, 3층에서는 상설전시와 함께 독일의 거장감독 빔 벤더스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부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다녀갔던 빔 벤더스 감독이 때마침 심사위원장으로 산세바스티안에 와 있었기 때문에 구겐하임에서 돌아온 후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구겐하임미술관을 보고 난 후, 부산 해운대에도 이와 같은 형식을 지닌 건축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부산의 랜드마크이면서 영화와 문화를 지지하는 상징적인 아이콘이 필요함을 절감한 것이다.

부산 영상문화의 중심이며 부산영화제의 심장부가 될 '두레라움(부산영상센터)'의 완공이 가까워지면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기억이 더욱 새롭게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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