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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16> 폴란드 크라쿠프 오프 플러스 카메라 독립영화제

대통령 사망·화산재… 갖은 악재에도 현명하게 대처

폴란드의 대표적인 문화도시 크라쿠프

실험적이고 독특한 비주류 영화를 선호하는 영화제

의욕적으로 준비한 세번째 행사가 큰 벽에 부딪혔지만

순발력있게 수습하는 모습에서 폴란드의 미래를 봤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28 19:31:1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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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상영관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예기치 못한 엄청난 재앙이 신생 크라쿠프 영화제를 덮쳤다. 영화제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 10일 러시아로 향하던 폴란드의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와 최고위층을 태운 대통령전용기가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 96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초에 폴란드를 침공한 러시아가 폴란드의 재건을 막기 위해 지도층 인사 2만2000명을 처형했던 '카틴 숲 대학살'의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비극의 현장을 추모하려던 일정이 또 하나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었다.

지난 17일 바르샤바에서 합동 추모식과 미사를 마친 대통령의 시신은 다음날 크라쿠프로 옮겨졌고, 영화제 본부가 있는 마켓광장 마리아성당에서 추모미사가 열렸다. 시신은 바벨성에 안장되었다. 16일 개최하려던 영화제 개막은 19일로 연기되었다. 열흘로 예정됐던 영화제 기간도 7일간으로 단축됐다.

설상가상으로 15일 밤에는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유럽 하늘을 뒤덮었다. 유럽의 모든 공항이 폐쇄되는 전대미문의 대란이 발생했고, 영화제에 참석하려던 주요 게스트들은 일정을 취소했다. 필름 운송수단도 끊어졌다. 20일에 출발하려던 필자 역시 불참을 통보했다. 그러나 좌절하고 있을 젊고 순박한 '시먼' 집행위원장과 스태프들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올해 영화제에서 만난 오프 플러스 카메라 영화제 집행위원장 시먼 미슈자크(오른쪽)와 프로그램 디렉터 아나 체비아토프스카(왼쪽).
16일 먼저 출발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양준 부위원장은 공항이 폐쇄되면서 며칠째 뮌헨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었다. 뉴스를 주시하던 중 항공사의 대응방안이 나오기 시작했고, 루프트한자 항공사로부터 뮌헨까지는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20일 낮 12시30분발 항공편을 통해 무조건 인천공항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뮌헨공항의 연결항공편 중 99%가 취소되었다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5시30분 뮌헨공항에 내렸다.

물론 크라쿠프로 가는 항공편은 취소됐다. 항공사가 주선해 준 폴란드 바르샤바행 버스에 무조건 승차했다. 오후 8시30분 뮌헨공항을 출발한 버스는 두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리면서 밤새도록 달려 18시간 만인 21일 오후 2시30분 바르샤바공항에 도착했다. 크라쿠프 영화제 측이 제공한 승용차가 한 시간 후 공항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크라쿠프에 최종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였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38시간 반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크라쿠프영화제에 참석했다.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다. 인구로는 폴란드에서 세 번째로 많지만 수도 바르샤바에 버금가는 문화 과학 기술 관광의 중심도시다. 과거에 크라쿠프는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빈과 함께 중앙 유럽의 3대 문화중심도시였다. 카친스키 대통령이 묻힌 바벨성은 역대 왕이 거처하며 통치했던 곳이다. '폴란드의 아테네'로 불릴 만큼 오래된 성당과 교회가 있고, 곳곳에 많은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다. 마리아성당이 있는 중앙광장을 포함한 올드 타운과 인근에 있는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1978년 유네스코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슈비엔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도 크라쿠프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크라쿠프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1364년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야기엘로 대학은 646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수많은 지성인을 배출했고, 80만 명 인구에 18만 명의 대학생이 있게 만든 크라쿠프의 정신적 지주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지난해다.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기계박람회의 부대행사로 개최된 한국영화행사를 주관한 후 '오프 플러스 카메라 독립영화제'의 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크라쿠프를 찾았다. 두바이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인 하나 피셔가 꾸린 '문화적 교량'에 관한 세미나는 동양과 서양, 종교와 민족 간의 문화적 장벽을 영화가 어떻게 허물 수 있을 것인가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TV로 중계된 이 토론회에는 하나 피셔가 사회를 맡고 리츠 칸 미국알자지라방송 책임자, 케탄 메타 인도 감독, 시마 어랄 뉴질랜드 감독, 마르코 폰테코르보 이탈리아 감독, 안소니 파비안 미국 감독과 오로비치 폴란드영화위원회장 등이 참석했다.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장례식이 열린 성 마리아 성당
크라쿠프 영화제는 '카메라 오프 선언'에서 밝혔듯이 덴마크의 도그마운동이나 루마니아의 새로운 영화운동처럼, 주류영화보다는 비주류 영화를, 통상적인 영화보다는 실험적인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폴란드만의 독특한 영화를 부흥시키겠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창설자인 시먼 미슈자크 집행위원장은 올해 28세의 젊은 청년이다. 2005년 크라쿠프의 야기엘로 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획득한 후 상업방송국인 TVN의 제작부서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다. 그는 작년부터 같은 대학의 동기 동창인 아나 체비아토프스카를 영입하여 함께 일하고 있다. 그녀는 영국의 킹스 칼리지와 BFI에서 영화 및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시 전공한 후 BBC방송국에 근무하고 있는 매우 활동적인 여성이다. 그들은 매우 의욕적으로 영화제를 이끌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12편의 경쟁영화를 비롯하여 미국 '선댄스영화제 25주년' 특별전, 장 뤽 고다르와 안나 카리나 회고전 등 모두 10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특히 수상작품의 감독에게는 미화 10만 달러의 상금 외에도 수상 감독이 폴란드에서 차기작품을 제작하고자 할 경우에는 폴란드영화위원회에서 3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부터는 3년 전에 설립된 '노블 은행'과 제휴하여 추가로 30만 달러를 지원함으로써 수상자가 폴란드에서 차기작을 제작할 경우 상금을 포함하여 모두 7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첫회 영화제에서 수상한 미국감독은 폴란드에서의 차기작품 제작을 포기했지만 작년에 '나나, La Nana'로 대상과 함께 10만 달러를 받은 세바스찬 실바 칠레감독은 현재 칠레정부 지원 하의 영화제작을 끝낸 후 차기작을 폴란드에서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해 크라쿠프를 떠나면서 시먼 집행위원장과 '부산영화제특별전'을 열기로 합의한 후 시먼 집행위원장, 아나 체비아토프스카 공동위원장(프로그램 디렉터를 겸하고 있다), 루카스 홍보책임자가 같은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귀국한 후 그들은 많은 일을 추진했다. 야기엘로 대학과 협력하여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하고, 핸드 프린팅제도를 도입하고, 주재국 대사들과 협의하여 각국 대표단을 위한 리셉션도 유치했다. 초청영화의 편수를 늘리고 초청 게스트의 수준도 높였다.

올해 크라쿠프의 프로그램은 12편의 장편경쟁영화를 포함하여 선댄스 영화제의 프로그램 디렉터가 선정한 미국의 실험영화 특별전, 라틴 아메리카, 인도, 노르딕 영화 특별전, 제인 캠피온 감독의 회고전, 그리고 특히 부산국제영화제 15주년 특선 등 102편의 영화가 초청되었다. 부산영화제 15주년 특선에는 '똥파리'(양익준), '경계도시 2'(홍형숙), '허수아비들의 땅'(노경태), '나는 곤경에 처했다'(소상민), '약탈자들'(손영성) 등 한국영화 5편과 역대 뉴커런츠 수상작 중 '내가 여자가 된 날'(이란·마르지예 메쉬키니), '푸지안 블루'(중국·웡셔우밍), '킥 오프'(이라크·샤우캇 아민 코르키), '무방비'(일본·이치이 마사히데), '불견'(대만·리캉셍) 등 5편이 상영되었다. 이처럼 의욕적으로 준비해오던 제3회 영화제가 개막 직전에 폭격을 맞은 것이다.

대통령의 사망으로 많은 행사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되었고, 화산폭발에 따른 항공대란으로 주요 게스트들의 방문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5명의 심사위원 중 존 쿠퍼 선댄스 집행위원장, 미국 배우인 릴리 테일러 등 3명이 불참했고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타브 밧찬의 방문도 마지막 순간에 좌절되었다. 12명의 경쟁영화 감독 중에서도 6명이 불참했다. 행사를 진행시킬 하나 피셔도 오지 못했다. 필름의 수급에도 막대한 차질이 있었다. 102편의 영화 중 30편이 제 날짜에 못왔다. 제인 캠피온 감독만은 딸과 함께 로마에서 승용차로 20시간 만에 도착했다.

이런 극한상황에도 영화제의 대처능력은 탁월했다. 두 명의 심사위원은 교체를 했고, 존 쿠퍼 선댄스 집행위원장은 인공위성을 통해 심사했다. 경쟁영화를 송부한 후 인터넷으로 심사결과를 받은 것이다. 메인 극장인 키유센트럼을 비롯한 10개 상영관에는 디지털영화 상영이 가능할 수 있도록 HD 장비를 빌려 인공위성으로 파일을 받아 상영했다. 102편의 영화는 무사히 상영을 마쳤다. 여기에는 한국의 삼성그룹과 파나소닉의 전폭적인 협조가 뒷받침되었다.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크라쿠프영화제의 관계자들을 보면서 이들의 심장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수뇌부가 일시에 사망하는 국가적인 비상사태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통합의 전기로 삼은 폴란드 국민의 면모들은 곳곳에서 화제가 된다. 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위기를 극복해낸 귀중한 체험은 영화제가 성장하는데 주요한 원동력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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