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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세계 영화제 기행 <14> 15년 만에 다시 찾은 홍콩영화제

찬란했던 그시절 그 배우 그 영화들처럼 '화양연화'를 다시 꿈꾸는 홍콩영화제

PIFF보다 19년 전 1977년 영화제 창설, 도시의 매력과 함께 빠르게 성장

홍콩 중국 반환 뒤 독립적 운영 타격, 엑스포 행사에 편입…위상약화·규모 줄어

중국과 합작·교류 차츰 늘려가며 새로운 활로 모색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14 19:34:2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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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배우 한예슬(사진 중앙)이 홍콩의 VJ 안젤라 우, 리사 등과 함께 아시아영화상 사회를 보고 있다.
홍콩 도쿄 부산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다. 홍콩영화제는 부산영화제보다 19년 전인 1977년, 도쿄영화제는 11년 전인 1985년 출범했다. 1996년 사단법인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 직후, 가장 먼저 홍콩영화제를 찾았다. 영화제 전반에 걸친 벤치마킹도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영화제 창설을 알리고 주요 해외영화인들과 영화를 초청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홍콩영화제는 2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홍콩영화제는 3월 25일부터 4월 9일까지 16일간 열렸지만, 나는 4월 4일부터 나흘동안 머물다 왔다. 영화제 측은 20주년 기념행사로 홍콩영화회고전과 함께 '한국 고전의 발견'이란 주제로 '자유부인'(한형모) '하녀'(김기영) '마부'(강대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오발탄'(유현목) '김약국집 딸들'(유현목) '삼포로 가는 길'(이만희) '짝코'(임권택) '안개마을'(임권택) '바보선언'(이장호) '깊고 푸른 밤'(배창호) '티켓'(임권택) 등 12편의 한국영화를 특별 초청했고, '전후 한국영화'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일반 프로그램에서 상영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박광수 감독,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은 출품작 감독으로, 박기용 감독과 이효인 교수는 세미나 주제의 발표자로, 나는 참관자로 참석했다. 프로그래머 웡아인링이 기획한 한국영화에 관한 회고전과 세미나는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국제사회에 각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광수 감독과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산영화제 창설을 알리고 부산에 와 줄 것을 부탁했다.

   
홍콩필름마트 전경.
특히 베를린영화제의 '영 포럼' 책임자 울리히 그레고르에게 심사위원장을 부탁했으나 그는 선약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영화평론가인 부인 에리카 그레고르가 심사위원으로 부산에 왔다. 웡아인링은 1년 후 본토 상환을 앞둔 중국과의 마찰로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퇴임했고, 우리는 즉시 부산영화제 자문위원으로 그녀를 영입하여 창설과정에 자문역할을 맡게 하였다. 그해 6월 7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창설 관련 세미나에 그녀를 초청하기도 하였다. 현재 홍콩영화제에는 부산의 프로그래머와 마켓 실무자들이 매년 참석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별도로 홍콩에 가지는 않는다. 영화제 경비를 불필요하게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좀 특별했다. 지난 1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드높인 공로로 '디딤돌 상'을 받게 되었고, 부상으로 주어진 것이 공교롭게 서울-홍콩 간 왕복항공권이었다. 이런 핑계로 15년 만에 홍콩영화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홍콩영화제는 1977년 6월 27일 '세계영화계를 이끄는 홍콩영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홍콩시청과 오락위원회의 주도 아래 창설되었다. 출범 당시부터 홍콩영화제는 아시아영화에 포커스를 맞추는 비경쟁 영화제를 표방하였다. 홍콩영화제는 경쟁영화제의 화려한 외형보다는 비경쟁영화제의 내실을 추구하면서 착실하게 성장했고, 1984년 첸 카이거의 '황토지'를 소개하며 중국 5세대 영화의 탄생을 세계에 알렸다. 홍콩영화제가 사랑을 받은 데에는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도시 자체가 지닌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영화관이 있는 홍콩섬과 구룡 지역 사이를 오가는 페리의 낭만, 멋진 야경,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 언어소통의 용이함 등 여러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김동호(사진 왼쪽) 집행위원장이 쇼수웨이(가운데) 홍콩영화제 집행위원장, 윌프레드 왕 조직위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영화제의 독립적 운영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홍콩영화제가 지녔던 아시아영화 창구로서의 역할은 퇴색하기 시작하였다. 홍콩영화제는 아시아영화 섹션을 없애고, 부산영화제의 '뉴 커런츠'처럼 아시아의 디지털 영화 경쟁부문을 신설하는 등 변화를 꾀하였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영화제 측은 타개책을 모색하였지만 정작 대안은 정부 측에서 나왔다. 그것은 필름과 TV 마켓인 홍콩필름마트의 개최일정을 홍콩영화제와 맞추고, 아시아영화상을 신설하여 화려한 축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홍콩필름마트는 원래 무역발전국에서 개최하던 필름과 TV 마켓으로, 매년 6월 개최되었다. 홍콩정부는 영화, TV, 음악 산업 분야를 총괄하는 '엔터테인먼트 엑스포 홍콩'을 창설하면서 홍콩영화제 아시아영화상 홍콩필름마트를 '엔터테인먼트 엑스포 홍콩'의 한 행사로 편입시켰다.

올해 홍콩필름마트는 50여 개국에서 540여 개 업체가 참가함으로써 뚜렷한 성장세를 반영하였다. 홍콩필름마트의 이러한 성장세는 중국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의 영화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의 신생업체들이 대거 홍콩필름마트를 찾고 있으며,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는 해외 업체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영화상은 2007년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에서 영화제 측에 500만 홍콩달러의 운영비를 지원하며 아시아영화상의 출범을 독려하였다. 이는 2006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필름마켓 행사 중 하나인 '스타서밋 아시아'에 자극받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아시아영화상은 3월 22일 홍콩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주목의 대상은 단연 한국영화였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는 비단 올해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괴물'(2007년 1회) '밀양'(2008년 2회) 그리고 올해 '마더'까지 한국영화가 3번이나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다. 시상식 사회자 3명 중에는 한국의 한예슬 씨가 초빙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와 진행 실력을 과시하였다. 반면 아시아영화상의 전체적인 열기는 예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성룡 유덕화 여명 왕가위 조니토 등 홍콩을 대표하는 많은 스타 배우나 감독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1회 시상식 때에는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더군다나, 수상자인 봉준호 감독과 김혜자 씨마저 불참해 영화제 측은 매우 아쉬워하였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화제가 한정된 인력으로 대규모 행사인 아시아영화상의 운영까지 떠안다 보니, 정작 영화제에 대한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영화제는 예산 검열 등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겪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지난해 새로운 집행위원장을 영입하였다. 쇼수웨이가 바로 그이다. 그녀는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영화사 쇼브러더스의 창립자 런런쇼의 손녀딸로, 싱가포르 국적을 가지고 있고 주로 미디어와 배급 쪽 경력을 가지고 있다. 새롭게 집행위원장을 영입할 당시 국적과 젊은 나이 때문에 일부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올해 들어 베르사체 아우디 등 명품 브랜드 업체를 스폰서로 영입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홍콩영화제의 재정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영화제가 정작 필름마트와 아시아영화상에 가려 무게중심을 잃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홍콩영화제의 개막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제의 모습을 유지해 왔지만, 하루 차이로 열리는 아시아영화상과 대비되면서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과거에는 1500석 규모의 홍콩문화센터 대극장에서 개막작을 상영하였지만, 이제는 홍콩컨벤션 센터의 3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개막작을 상영한다. 올해는 이 300석 규모의 개막작 상영관도 좌석의 3분의 2 정도를 겨우 채웠다. 상영관 또한 홍콩 전역에 산재해 있어서 관객의 열기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영화제 기간도 17일로 상당히 긴 편인데, 평일 낮에는 관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상영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그 때문에 초청작품 편수가 240편임에도 불구하고(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는 9일간 355편 상영) 영화제 기간을 길게 잡고 있는 것이다. 홍콩영화제에서의 세계 최초 상영(월드 프리미어)의 이점도 이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올해 홍콩영화제의 월드, 인터내셔날 프리미어 숫자는 65편에 불과했다.(PIFF는 지난해 144편이었다)

홍콩영화제의 흥망성쇠는 홍콩영화 산업의 부침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8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는 곧 홍콩영화제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홍콩영화인들이 해외로 건너갔고 그 뒤를 이을 눈에 띄는 신인들이 그다지 많이 배출되지 못했다. 홍콩영화산업은 그렇게 하강기를 걸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광대한 중국시장이다. 홍콩은 중국과의 합작과 교류를 늘려가고 있고, 홍콩필름마트 역시 그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의 엄격한 검열제도와 제작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홍콩영화의 창의적 장점이 아직은 잘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영화제의 위상 역시 홍콩영화의 현황처럼 아직은 시계가 불안정한 변환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누구나가 기억하는 홍콩영화제의 낭만은 영화제의 위상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보존되어야 할 문화유산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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