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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11> 하늘 아래 첫 달동네, 안창마을

낡은 과거의 흔적 위로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동네

산복도로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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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골짜기 피란민촌 오리 키워 생계유지…한때 오리불고기집 마을내 60곳 넘기도
- 공공미술 프로젝트 '안·창·고' 통해 문화적 색채 입혀 전국적으로 명성
- 도심 연결로 없어 불편 느끼지만 재개발 바람 속 삶의 뿌리 흔들릴까 주민들 불안감 호소

'도심 속 오지' 안창마을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고 빨랐다. 부산도시철도 범내골역에서 내려 29번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시내버스는 범곡교차로를 통과해 망양로로 들어섰다. 성북고개 초입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리자 안창마을에 닿았다. 취재기자가 찾은 지난 3일 안창마을은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만발, 꽃마을로 변해 있었다. 눈을 사로잡은 29번 버스 종점 뒤쪽의 활짝 핀 백목련 네 그루. 네 그루의 백목련이 산동네를 환하게 밝히는 이때가 안창마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민들은 귀띔했다.


■'도심 속 오지' 800여 세대 공동체 형성

   
안창마을을 가장 살기 좋은 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열정을 가진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2007년 안창마을 입구에 지은 '안창고'.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지금 안창마을은 800여 세대, 2000여 명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안창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신발의 '안창'이라는 뜻처럼 본 동네와 뚝 떨어져 해발 200~300m 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마을이 고향인 이찬웅(51) 씨는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안창에 사는 사람이 30가구도 안됐다"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소와 돼지, 닭, 오리를 키우며 살았다"고 말했다. 지금 안창마을의 왕복 2차로 아스팔트 도로도 1976년께 마을주민들이 만들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전기는 1970년대 초반, 상수도는 1988년께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곳이 도심 속 오지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창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오리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오리불고기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때 오리불고기집은 60곳을 넘었다. 이 마을이 '오리마을'로 불리는 것도 이런 연유다. 현재 오리불고기집은 30여 곳. 주말이면 외지사람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붐빈다. 집은 허름하지만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오리불고기 '맛'을 찾아온 것이다.


■도심과 소통·부활을 꿈꾼다

안창마을에 가보면 부산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공간과 삶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21세기 부산 하늘 아래 19세기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안창이다. 안창마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범내교회 조재하(63) 장로는 "25년째 안창마을에서 살고 있지만 10평 안팎의 낡은 집, 좁은 골목, 가파른 계단 등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마을은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안창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숙원은 도심과의 도로 연결, 개발업자의 이익을 위한 재개발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개발이다. 50년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박효수(51) 씨는 "도로가 마을에서 끊어진 곳은 안창이 부산에서 유일하다. 도로가 막히면서 마을사람들의 삶도 막혀버렸다"면서 "동의대를 거쳐 가야 쪽으로, 안창에서 신암마을 쪽으로 하루빨리 도로를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창마을에도 개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미 재개발 계획의 인가가 난 상태다. 그러나 적잖은 마을주민들은 재개발이 개발업자의 배만 불리고 마을사람들은 약간의 보상비만 받고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좀 더 쾌적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현재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재개발을 원하고 있었다. 도심과의 도로 연결을 통한 소통, 마을공동체가 유지되는 재생과 부활을 꿈꾸는 이 마을 사람들의 바람은 언제쯤 실현될까.


■안창고, 문화의 향기로 마을을 품다

'안창마을을 가장 살기 좋은 문화마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달려든 젊은 예술인들, 바로 부산의 비영리 시각예술단체인 '오픈 스페이스 배'이다. '오픈 스페이스 배'는 2007년 2월부터 당시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안창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안·창·고'를 3년 동안 진행했다. '안·창·고'의 '안(雁)'은 안쪽(inside)과 안창마을의 첫 글자이자 공동체(기러기)와 비상을, '창(窓)'은 소통(창문)과 푸르름(蒼·청년정신)을, '고(庫)'는 마을의 역사와 삶을 저장하는 공간(창고)이자 재창조의 원천을 뜻한다. '안창토피아(안창마을+유토피아)'를 꿈꿨던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서상호 '오픈 스페이스 배' 대표는 "1년은 문화관광부 공모 사업으로 진행했지만 나머지 2년은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의 산물"이라며 "벽화라는 예술을 통해 이 마을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안·창·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3년 동안 주민들의 냉소와 패배주의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마을 주민들은 안창마을 출신인 김선일 씨가 2002년 6월 이라크 반군에 납치돼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 이후 안창마을을 전국적으로 널리 알린 것은 '안·창·고' 프로젝트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독일출신 '푸른 눈의 성녀', 아이를 품다

안창골 사람들은 안창골 어린이의 영원한 대모, 백강숙(63세가량 추정) 수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 백 수녀는 독일출신으로 27년 전 부산의 가장 가난한 산동네인 안창골에 정착했다. 백 수녀는 부모가 일터로 나가 혼자 남은 아이들, 가난으로 학원 갈 형편이 안되는 초등학생 중학생을 위한 '우리들의 집 공부방'을 열어 25년간 운영한 것이다. 이 마을의 어린이 가운데 백 수녀의 가르침과 돌봄을 받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 백 수녀는 안창마을 내 '성심의 집'에서 생활하며 2008년 말까지 안창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한 때 배우려는 아이들이 넘쳐나면서 공부방을 두 군데나 열기도 했다.

백 수녀는 지난해 5월 선교와 봉사활동을 위해 남태평양 도서국가인 '마샬군도'로 떠났다. 안창마을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안창을 더 사랑한 '푸른 눈의 성녀'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 안창마을 주민 손정호 씨

- 힘든 시절 껴안아 준 정든 이 마을에서 여생 보내고 싶은데…

   
부산 안창마을에는 사연 없는 집이 없다. 손정호(82·사진) 국제종합예술진흥회 명예회장 또한 마찬가지다.

옛 철도청에 근무하던 손 회장이 안창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은 15년 전. 1969년 고향인 경남 밀양을 떠나 부산 동구 수정동으로 이사와 살던 손 회장은 1996년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손 회장은 "당시 부산에서 가장 싼 방이 안창마을에 있었다"며 "아들은 서울로 보내고 방 한 칸 세를 내 부부가 살던 그때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안창마을에 이사 간 그는 처음에는 퇴직 후 운영하던 서예학원과 집만 왔다갔다했다. 그는 "그때는 차비가 없어 45분 거리에 있는 학원까지 걸어다녔다"며 "처음에는 이웃들이 생소하고 만나기도 싫어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냈지만 안창마을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이웃은 없다"고 말했다. 다들 산전수전 다 겪은 뒤 안창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담이 낮아도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없을 정도로 이웃 간 신뢰가 돈독하다.

손 회장은 공무원 생활 중 취미로 시작한 서예를 1984년 퇴직 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한국미술협회와 부산미술협회 원로 초대작가이자 부산서예비엔날레 고문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조용하고 공기가 좋으니 작품활동이 안 될 리 있겠느냐. 무엇보다 마음이 편한 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창마을 재개발 추진과 관련, "지주와 거주민이 다르다 보니 여러 의견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다"며 "거주민의 입장에서는 아파트단지보다는 서민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지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손 회장은 "안창마을에는 '울면서 안창마을로 들어오고, 울면서 안창마을을 떠난다'는 말이 있는데, 안 좋은 일로 안창마을로 이사오지만 떠날 때는 이웃 간의 정 때문에 아쉬워서 눈물짓는다는 뜻"이라며 "이제는 나도 가라고 해도 가기 싫고 여생을 여기서 보내고 싶다"고 마지막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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