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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95> 복효근 시인과 함께 한 남원

춘삼월 광한루원, 사랑말고 달리 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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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광한루원은 햇살과 물빛이 풍성하다. 이런 곳에서라면 누군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부산은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서울은 '하이 서울'(Hi! Seoul), 울산은 '울산 포 유'(Ulsan for You), 대구는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 인천은 '플라이 인천'(Fly Incheon), 대전은 '잇츠 대전'(It's Daejeon), 경남은 '필 경남'(Feel Gyeongnam)….

한국을 여행하다 보면 어김없이 지역을 상징하는 문구를 예쁜 글씨로 그려놓은 상징문구를 만난다. 대부분 영어로 돼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해당 지자체가 시민 의견을 모아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문구라는 점에서 그 고장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지역의 개성과 자랑거리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해외 여행에서 만나곤 했던 '아이 러브 뉴욕'(I ♥NY), '아이 러브 타이페이'(I ♥Taipei) 같은 로고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남원에서도 두리번거려봤다. 사실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시내 곳곳에서 그 상징문구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City of Love(사랑의 도시)였다. 사랑의 도시.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약간 멈칫했다. 이건 너무 평범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튀는 문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랑 없는 도시가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왔고, 뒤이어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 강렬한 낱말인 사랑을 맨앞에 내걸었나' 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그 궁금증을 풀어준 사람이 바로 남원 토박이 복효근 시인이었다.

■토박이 시인의 삶 고스란히 간직

춘향 테마파크를 찾은 복효근 시인과 문학기행일행.
복효근 시인은 남원 토박이다. 남원시내에는 만인의총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은 독기를 품고 칼을 북북 갈아 "전라도를 먼저 치지 않으면 조선을 점령할 수 없다"는 속셈으로 전라도 남원성을 덮쳤고, 남원의 군관민 1만여 명은 "올테면 와봐라"며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했다. 그때 숨진 남원사람들의 혼을 모셔놓은 곳이다. 남원시 향교동의 만인의총에 서자 복 시인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저기 보이는 하이츠아파트에 제가 10년 살았고요, 네시 방향에는 제가 나온 초등학교가 있죠. 이곳 만인의총과 저쪽 광한루원, 만복사지는 제가 청소년 시절에 그림 그리러 다닌 곳이고 저기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제가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금지중학교가 있어요. 금지는 '금지'의 금지가 아니라 황금연못이란 뜻이에요."

'1962년 전북 남원군 대산리 운교면 467번지에서 아버지와 닮지 않아도 좋을 것도 닮았으며 어머니와 더 닮아도 좋을 것을 닮지 못한 채 6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시인의 홈페이지 소개글) 복 시인은 1989년부터 한 3년 남원을 떠난 것 말고는 줄곧 남원에 살고 있다. 이번 문학기행 참가자는 80명에 달했다. 버스 한 대에는 어른들, 또 한 대는 청소년들이 주로 탔는데 청소년들이 복 시인을 친근하게 대했고 시인도 그들과 친하게 다녔다. 가만 듣고 있자니, 복 시인의 시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이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그를 친숙하게 여겼던가 보다.

남원 시골마을에서 본 '춘향택시' 광고문구.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 되나./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 대면/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둥근 표정./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토란잎이 물방울을 밀어 내기도 전에/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 되나.'(복효근 시인의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전문)

이번 문학기행을 준비하느라 그의 시집 '마늘촛불'(애지)을 읽었더니 소박한 말들, 들꽃과 나무와 풀들에 대한 관찰, 사람살이에서 스며나오는 좋고 고운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많다. 그렇게 여리고 작은 시들이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광한루원과 만복사지의 풍경은 서로 다르지만

광한루원에 그네를 뛰는 참가자.
"봄날 광한루원!" 이번 기행에서 인상 깊었던 곳을 묻는다면 여기를 먼저 꼽고 싶다. 기품 있되 위세 떨지 않는 조선의 건축양식과 고목의 푸른 잎들, 연못에서 반짝이는 물. 이런 장소라면 춘향이와 이도령이 여기 서서 사랑에 휩싸였을 때 향단이와 방자도 덩달아 눈이 맞았을 것만 같다. "달의 세계를 구현해놓은 것이 광한루원입니다. 광한루 누각 안에는 '달의 계수나무를 본다'는 뜻의 계관(桂觀)이라는 편액이 탐스럽고 '달을 감상한다'는 뜻의 완월정과 견우 직녀를 만나게 해준 오작교가 있다.

복 시인의 안내는 춘향테마파크와 만복사지로 이어졌다. 만복사지는 매월당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 무대다. 노총각 양생이 부처님과 저포놀이(윷놀이 비슷한 놀이)를 해서 이긴 뒤 "장가 좀 보내달라"고 하자 어느 달밤 아리따운 처녀가 찾아온다. "'만복사저포기'는 당시 조선 사회상과 대비해보면 지극히 발랄하고 혁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봐요. 양생은 부처님과 내기를 해서 이기고, 처녀 혼령과 함께 절에서(!) 사랑을 나누고, 끝엔 처녀 혼령에게 남성인 양생이 정절을 지키면서(여자가 남자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한다는 얘기거든요."

바로 이 대목 언저리였다. 남원은 한민족 만고의 고전이자 뜨거운 사랑 이야기인 춘향전의 본고장이고, 발랄하고도 고결한 사랑을 그린 '만복사저포기'가 탄생한 곳이다. "'변강쇠타령' 발상지도 남원인데 이 또한 끈적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 것이고요, '흥부전' 발상지가 또 남원인데 지극한 형제애가 담겼죠." 여기에 1만 명 남원군민이 스러진 만인의총이 결국 향토사랑과 조국애로 귀결된다고 보면, 남원은 유독 사랑 이야기가 넘쳐난 곳임에 틀림없다. 그래 맞다! City of Love, 사랑의 고장 남원.

인월 실상사를 들러 버스가 부산으로 향할 즈음 우리는 복 시인과 헤어져야 했다. "남원은 좋은 고장이죠? 남원에서 살고 있는 게 자랑스러워요. 그런 고장에 오시면서 변변치 못한 저 같은 시인을 부르신 게 오늘 여러분의 유일한 실책이 아닌가 해요. 그래도 나름 준비는 했습니다. 저렇게 달도 꽉 채워놓고 피지 않겠다는 수선화도 어서 피라 재촉하고…." 달을 봤다. 만월이다. 건전지를 새로 갈아끼우고 막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빛이 싱싱하다. 달빛 받으며 돌아오는 길 사랑을 생각했다.

'채석강 암벽 한 구석에/종석♡진영 왔다 간다/비뚤비뚤 새겨져 있다//옳다 눈이 참 밝구나/만 권의 서책이라 할지라도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사내가 맥가이버칼 끝으로 글자를 새기는 동안/그녀의 두 눈엔 바다가 가득 넘쳐났으리라//왔다 갔다는 것/자명한 것이 이밖에 더 있을까/한 생애 요약하면 이 한 문장이다//설령 그것이 마지막 묘비명이라 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이미 그 생애는 명편(名篇)인 것이다'('명편' 전문, 시집 '마늘촛불' 수록)


◇ 복효근 시인은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그림을 그리고자 했으나 집안 형편 탓에 포기했다. 그 즈음 허영자 시인의 시 '피리'를 읽은 것이 계기가 돼 시를 접했다.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의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마늘촛불' 등이 있고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을 냈다. www.boksiin.com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부산문화연구회(051)441-0485 동보서적 (051)803-8000
http://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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