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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6> 산복도로에 살다

초량 산복도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회색빛 산동네 화사한 갤러리로 변신시킨 미술의 힘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팀 4개월간 동네 곳곳 돌아다니며

천편일률적인 우편함에서 칙칙한 옹벽까지 개성 입혀

가가호호 방문에 반상회도 참석…불편해하던 주민들 호응 끌어내

  • 조민희 기자 chaser@kookje.co.kr
  •  |   입력 : 2010-03-01 20:13:39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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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부산 동구 초량6동 산복도로 옹벽에 그려진 대형 벽화 앞에서 마을주민들이 사물놀이를 하고 있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복도로에 흩어져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곳에서나 부산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부산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버려진 채 남아 있는 폐가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산복도로는 부산의 역사와 서민들의 진솔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소외된 서민들의 애달픈 목소리까지 오롯이 담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산복도로에 시간과 역사, 기억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초량 산복도로 일대인 동구 초량 1,2,6동(초원맨션~부산컴퓨터과학고 총 3㎞가량)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는 산복도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산복도로 1번지-도시에는 골목길이 있다'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산복도로, 상상력을 입다

   
부산 동구 초량6동 화신아파트 단지와 산복도로를 연결하는 가파른 108계단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풍선들. 이 풍선들은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산복도로를 따라가다 동구 초량1동 초원아파트 인근에 다다르면 공중전화부스 2개가 나란히 서 있다. 부스 바닥에는 귀를 쫑긋 세운 얼굴모양의 표지가 나타난다. 부스에 들어서면 부산항의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파도소리 등 부산항에서 나는 온갖 소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전화부스에서 산복도로 맞은편을 보면 푸른하늘에 창문(가로 90㎝×세로 140㎝)이 나 있다. 창문 너머 볼 수 있는 다른 세계는 이곳 산복도로와 밤낮이 반대다. 이곳이 낮일 때 창문 너머 세계는 깜깜한 밤이지만 이곳이 밤일 때 저쪽 세계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낮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창문을 통해 맑은 세계를 쳐다보면 가슴 한 켠이 확 뚫린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창문가로등에서 부산컴퓨터과학고 방향으로 100m가량 걸어가면 사람 2~3명만 올라가도 가득찰 것 같은 작은 전망대 구조가 눈에 띤다. 전망대 바로 앞 인도에는 이재호 작가가 철근을 이용해 만든 나무모양의 조형물을 구경할 수 있다. 보도블럭에는 작은 소년이 두 손에 노란꽃을 쥔 채 커다란 눈망울을 껌뻑거리는 모습이 나타난다.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는 부산항 바다에서 방금 올라온 것처럼 새빨간 꽃게 두 마리가 오랜시간 버스를 기다려 지친 승객들이 자신들 위에 앉아 쉬라는 듯 다리를 내놓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걸어가자 향기가 나는 것 같은 노란 국화들이 물탱크 위에 활짝 펴 있었다. 나비 한 마리가 국화 냄새에 취한 것일까, 꽃 위를 서성거리고 있다.

   
초량 6동 초량어린집에서 화신아파트 단지 안으로 통하는 가파른 108계단에는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하늘높이 날아오르고 있어 아이들을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서서 만난 김민석(10) 군은 "계단 중간에 서 있으면 마치 떠오르는 풍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컴퓨터과학고 근처를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교건물을 뛰어넘는 두 청년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익스트림스포츠인 '야마카시'를 즐기는 청년을 그래피티로 표현했다. 부산의 역동성과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초원맨션에서부터 부산컴퓨터과학고에 이르는 총 3㎞가량의 산복도로 일대에서 ▷벽화 4개를 비롯해 5개의 조형물 ▷버스정류장 6곳에 '사랑해요' 초량어린이집 꽃밭프로젝트 ▷80여가구의 우편함 리폼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닫힌 마음을 열다

   
산복도로 위 창문모양의 가로등.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30여 명으로 구성된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팀'이 4개월만에 산복도로 초량동 일대를 이렇게 탈바꿈시키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이 생경한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불쾌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에 다가가기 위해 프로젝트팀은 우선 주민설명회 개최, 반상회 참여 등으로 주민들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초량 6동 금수사 인근 120가구를 작가들이 직접 찾아다니며 문패나 우편함 다시 만들기, 주민들이 디자인을 선택하도록 하는 과정은 서로 마음을 여는 바탕이 됐다.

김대홍 현장감독은 "처음엔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지만 한 두집씩 호응해주기 시작했고 80여 가구가 우편함 리폼작업에 참여했다"며 "통장님들과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벽화 또한 주민들이 선호하는 공공미술의 하나. 특히 이 프로젝트에서는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상성'과 아이들의 상상력을 높일 수 있는 그림들이 많다. 금수사 아래쪽 산복도로 옹벽에는 야채를 팔러온 트럭과 아이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모습이 산복도로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언제나 주민들의 호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형물은 주민들의 항의와 반대가 가장 많은 영역. 벽화와 달리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분야인데다 대부분 인근 건물이 낡아 무거운 조형물을 건물에 올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설치 막바지에 이른 전망대의 경우도 인근 아파트주민들이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갑자기 반대하고 나서 다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허수빈 현장 감독은 "공공미술의 하나로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주민이 원하는 것과 예술의 영역이 충돌할 때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다"며 "반대에 부딪힐 때 작업의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공미술이 미술관을 넘어 지역주민과 소통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여기고 가능한 한 주민의 의견을 우선하게 된다"고 말했다.


# 서상호 프로젝트 총괄감독

- "공공미술작업 산복도로 가치 높일 것"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서상호(42·사진) 오픈스페이스 배 디렉터는 부산시에서 주최한 '2009 문화예술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돼 2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 감독은 안창고 프로젝트 등을 하면서 산복도로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서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는 산복도로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자 공공미술에 대한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산복도로 1번지라는 이름도 산복도로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담으려는 뜻에서 붙였다"고 말했다.

서 감독은 2006년 부산 동구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일대 작업인 '수정동 희망프로젝트'와 2007년부터 동구 범일동 일대 안창마을에서 '안·창·고 프로젝트' 등 부산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다.

그런 그도 이번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가 쉽지 않았다. 서 감독은 이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적어 아쉬움이 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과의 소통과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하는 '인문학'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공공미술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작은 관심과 믿음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산복도로는 공공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만큼 주민들만의 생각이 아닌 부산을 넘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시각과 평가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히려 사업이 다 끝난 뒤 주민들의 항의가 일어날 수 있지만 이견이 많다 하더라도 서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나간다면 성공한 것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까지 산복도로에 대한 부산시 차원의 종합적인 도시재생 계획이 나오지 않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일부 주민들과 시청 및 구청 담당공무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를 얻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는 4개월 한시적으로 진행되지만 '산복도로 1번지'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산복도로 공공미술작업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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