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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 가람각의 목조각상. |
불교의 삼보를 대표하는 사찰로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가 있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어 법보(法寶)사찰로, 송광사는 보조국사를 비롯한 열여섯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로 불린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했기 때문에 불보(佛寶)사찰로 불린다. 불보사찰로 한국정신문화의 성지인 이곳 통도사에 의혹이 가는 전각(殿閣)이 있다. 바로 가람각(伽藍閣)이다.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셔진 진신사리는 일본인들의 침탈에 의해 여러 번 수난을 겪는다. 첫 번째 침탈은 고려의 국력이 쇠약해진 고려말이다. 우왕 3년(1377년)에 왜구가 들어와 사리를 가져가려 하자 당시 통도사 주지였던 월송 스님은 사리를 가지고 산문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 1379년에는 왜구가 사리를 침탈하려고 하자 월송은 사리를 가지고 나와 서울까지 피신했다.
두 번째 침탈은 임진왜란 때이다. 왜란 중 왜구는 금강계단을 파괴하고 사리를 탈취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당시 왜구에게 잡혀있던 백옥(白玉) 거사가 사리를 가지고 탈출함으로써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11년 뒤인 선조 36년(1603)에 사명대사는 왜적의 침탈을 염려하여 사리를 두 개의 함에 넣어 금강산의 서산대사에게 보낸다. 이 중 하나의 함에 들어있던 사리는 갈반사(현 태백산 정암사로 추정)에 모셔지고, 다른 하나의 함에 모셔졌던 사리는 되돌아와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셔져 현재에 이른다.
일본과 이러한 인연을 가진 통도사에 일본인들에 의해 조각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각이 모셔진 전각이 있다. 바로 가람각이다. 가람각 하면 가람 전체를 수호한다는 의미도 있는데, 그러한 전각에 일본풍의 목조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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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신사에 있는 대흑천. |
가람각은 천왕문의 왼편에 있으며, 4면 단칸의 작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1706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후 건물은 원명 스님에 의해 신축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 건물에 모셔진 가람신은 1706년 이후에 모셔졌을 것이다. 그런데 가람신이 바로 일본의 칠복신의 하나라는데 의혹의 눈길이 보내진다.
먼저 가람신과 일본의 칠복신 사진을 비교해 보자.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탱화에 그려진 가람신 앞에 모셔진 조각상은 분명 칠복신의 하나인 대흑천(大黑天)이다. 칠복신은 일본사람들이 복을 가져온다고 믿는 일곱 신을 말한다. 그 중 대흑천은 인도의 힌두교 시바 신과 일본 고대의 오쿠니누시(大國主)가 습합된 신으로 식복과 재복을 관장한다.
이들 칠복신은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불교, 도교, 일본의 토착신앙이 섞여서 형성된 것으로 무로마치 시대(1336~1573) 말기부터 성행했다. 따라서 통도사 가람각에 모셔진 칠복신은 임진왜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반입된 것이 별 생각 없이 가람각에 모셔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필자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전통사찰 어디에서도 대흑천을 모시지 않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통도사 대흑천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반입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진신사리를 탈취하려 했던 일본인이 만든 대흑천이 가람각에 앉아서 통도사 가람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신앙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통도사 측이나 일반인 모두 모르고 있는 듯하다. 좀 더 면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