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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한반도까지 <21> 동아시아를 제패한 초원의 음식 '만두'

제갈량이 만두의 창시자? 초원민족 속터지는 얘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08 19:46:0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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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요나라때부터
- 초원민족이 아시아 제패 과정, 중국·한국에 퍼져
- 고려가요 '쌍화점', 충혜왕의 기록 등 만두 인기 방증
- 초원제국 성장하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초원, 이탈리아 음식 라비올리까지 명맥

요나라 무덤벽화에 그려진 식당 모습. 상 위에 만두를 찌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큰 찜통 모양의 요리기구가 있다.
요즘 만두 전문 중국음식점에 가면 만두가 제갈공명의 발명품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원나라 때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 제갈량이 현재의 중국 남서부 운남성과 미얀마 지역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억울하게 죽은 현지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 머리 모양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고 그 안에 고기를 채워넣어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만두는 중국에서 기원한 셈이다. 하지만 만두는 우리나라와 중국뿐 아니라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널리 퍼져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과연 삼국 중에서 가장 약체였던 촉나라를 이끌고 전략을 짜기도 바빴던 제갈량이 만두를 발명했다는 말은 믿을 수 있을까?

■쌍화점에 간 여인들과 회회아비

상 위에 만두 형태의 음식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전문학 속에서 만두에 대한 대표적인 기록은 고려가요 '쌍화점'이다. '쌍화점'은 "쌍화점(雙花店)에 쌍화(만두)를 사러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고려 여인이 회족의 만두집 주인과 정분이 나는 것을 자랑하니 또 다른 여인이 자기도 가보고 싶다며 부러워하는 내용이 다소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몽골의 침략 이후 국제화됐던 고려사회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만두가 당시 고려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었던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회회아비는 중국화된 무슬림인 회족(回族)을 말한다. 회족은 당나라 이래로 현재 중국 서북 지방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살고 있는 돌궐(투르크)계의 위구르 족을 말한다. 이들을 회(回)라고 쓰는 이유는 이슬람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본 딴 것이다. 현재도 회족은 중국 서북부에 남한보다 조금 더 큰 영토의 자치구를 이뤄 살고 있다. 현재 중국 안에서 살고 있는 회족은 형질적으로는 많이 한화(漢化)되었지만, 이슬람교와 종교사원(모스크·淸眞寺)을 중심으로 고유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다. 쌍화점의 회회아비도 당시 원나라의 한 축을 이뤘던 회족일 것이다. 국제화되었던 고려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문물과 함께 음식문화도 건너왔고, 회족이 경영하던 만두집도 인기였던 것 같다.

회족들이 중국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당나라 시절 양귀비를 사랑했고, 반란을 일으켰던 안록산(알렉산더의 중국식 표기)도 회족계였다. 특히 중국의 회족 중에는 마(馬)씨 성이 많은 편인데, 마호메드 또는 무하마드의 첫 자를 땄기 때문이다. 회족의 독특한 음식문화는 중국에 많은 영향을 미쳐 지금도 중국에 가면 사방에 '청진식(淸眞式)' 양고기·만두·국수를 파는 식당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듯 고려가요에 등장한 회족은 단순한 외국인 이주민이 아니라 동서문명의 발전을 주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고작 만두집 아저씨와 정분이 난 이야기가 유행하고, 조선시대까지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충혜왕, 만두 도둑을 참하다

고려시대에 만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고려사' 충혜왕 4년(1343년)의 기록에는 어떤 도둑이 궁정의 부엌으로 들어가 만두를 훔친 것이 발각되자 왕이 크게 노해 그를 죽이라 명령했다는 구절이 있다. 도대체 그 도둑은 얼마나 간이 컸기에 감히 왕이 먹는 만두를 훔칠 생각을 했으며, 또 일국의 왕이 고작 만두 몇 개로 사람을 죽였을까. 충혜왕이 사람을 죽인 이유는 단순히 음식을 훔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록에는 도둑이 그냥 음식을 훔친 것이 아니라, '만두'라고 절도품목(?)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만두 도둑도 궁정에 출입하던 사람이었을테니 단순히 배가 고파 훔쳐먹었을 리는 없다. 이 만두는 왕이 특별한 의식에서 먹었던 음식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실제로 '고려사'의 충렬왕 5년(1279) 기록을 보면 충렬왕이 새로 궁전을 짓자 회회사람들이 새 궁전에서 왕을 위한 연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요나라 때 벽화를 보면 만두는 잔치나 의식에 꼭 등장하는 음식이다. 실제로 '요사'와 '원사' 등의 기록을 보면 요나라 황실이 송나라 사신을 맞이한 연회에서도 만두가 등장하며, 원나라의 제사에도 만두가 등장한다. 만두는 초원에서 발원한 유목 국가들의 궁정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인 셈이다. 고려시대 잔치에도 회족들이 들여온 만두가 올라왔을 것이고, 만두 도난 사건은 단순 절도사건이 아니라 왕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만두 속에 담긴 초원과 정착의 만남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만두 제품의 포장지. 이 만두의 상표는 '빙하'이다. 만두가 겨울철에 러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온 대로 만두를 만든 사람은 제갈량이었을까? 여러 정황을 보면 이는 단순한 이야기에 그친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왜냐하면 만두에 대한 이야기는 원나라 때 지어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만 있을 뿐 정식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삼국지'에 만두 이야기가 적힌 시점은 중국 전역에 이미 만두가 퍼진 원나라 때 이후다. 아마도 만두라는 이름이 만두라는 음식의 발음이 '남쪽 오랑캐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와 비슷했기에 만들어진 이야기 같다.

만두가 언제 탄생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요나라 때부터 초원민족이 아시아를 제패하기 시작하면서, 초원에서 중국과 한국으로 퍼졌다는 점이다. 만두는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목민이 부족한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 곡물을 구해 같이 먹었던 방식이다. 만두는 중세시대에 초원제국의 성장과 함께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초원, 더 나아가 이탈리아 음식 라비올리로 이어지면서 유라시아를 제패했다.

실제로 투르크어로 만두는 '만띠'라 한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우리나라 만두 같은 음식은 파오즈(포자·包子) 또는 자오즈(교자·餃子)라 한다. 반면 현대 중국에서 만두(饅頭)는 속에 아무 것도 없는 밀가루 빵을 말한다. 바이칼호수 근처의 몽골계통 민족인 부리야트족은 반대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 '포즈'라는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러시아를 필두로 슬라브민족이 먹는 만두인 펠메니도 유명하다. 초원지역의 만두는 대체로 고기의 비율이 많고 양고기를 선호하는 반면, 다른 지역의 만두는 상대적으로 채소의 비율이 높다. 최근 러시아에서는 극동의 고려인이 개발한 뻿새라는 새로운 만두가 대유행이다. 뻿새는 만두소로 매운 양념과 채소를 많이 넣은 것으로 채소가 부족한 추운 지방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만두에 새해의 복을 담자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유라시아를 제패한 음식인 만두의 성공 비결은 어디 있을까?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활동의 주요 에너지인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골고루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만두를 싸는 만두피는 밀가루(한국의 옛 기록에는 메밀가루를 썼다고도 한다)이니 인간 활동의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공급하며, 만두소는 고기이니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원이 된다. 초원은 고기가 풍부한 반면 곡물은 부족했다. 반면에 농경민족인 중국이나 한국은 고기가 부족하니, 모두에게 적합한 음식이다.

또한 봄이 되면 새로 나온 과일·열매 등을 만두소로 활용해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기도 하니, 각 지역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만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또 만두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먹기는 간편하다. 만두는 만두피를 만들고 속을 다져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끓는 물에 넣거나 기름에 튀기면 곧바로 요리가 되는 패스트푸드여서 멀리 여행가는 사람들에게도 적합하다. 러시아에서도 전통적으로 추운 겨울에 가족이 먼길을 떠나면 어머니는 밤새 펠메니를 빚어주었다 한다. 만두는 사방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초원민들의 가족사랑이 숨어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살고 보니 만두를 빚는 가정도 별로 없고, 거리에 만두집도 많지 않다. 아마도 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해 만두를 빚어도 장기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만두보다는 국밥 문화가 발달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 쪽으로 가면 명절에 만두를 빚는 집이 꽤 많다. 만두가 우리나라 명절음식이 된 것은 애정이 듬뿍 담긴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곧 설날이다. 21세기 한국은 초원지역처럼 사방을 떠돌아 살게 되면서, 가족과 떨어질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어렵게 모인 가족들과 새해에 만둣국 한 그릇 하면서 가족 사랑과 우리음식 속의 초원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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