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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리포트 <3-1> 산복도로에 살다 : 나를 붙들어 맨 바다조망

쓸쓸한 삶 쓰다듬어주는 바다, 너 때문에 여기에 산다

  • 국제신문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0-01-25 21:24:25
  •  |  본지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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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에서 바라 본 부산항


- 가까운 부산항부터 저 멀리 대마도까지 가치 매길 수 없는 특권같은 조망 자랑
- 먹고 살기 팍팍해도 생활공간 불편해도 바다 볼 수 있기에 쉽게 떠나기 힘들어
- 부산 대표하는 문화·관광콘텐츠로 내세우기에도 충분

부산의 원도심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산복도로, 120만 명이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부산 중구 대청동 산복도로에서 대청 하늘주차장을 만든 윤순재(83) 씨. 1951년 1·4후퇴 때 고향 평안남도 안주에서 월남해 59년째 산복도로에 살고 있다. 동구 초량6동에서 46년째 '희망사' 시계점을 운영하는 최용철(72) 씨. 하루에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어 공치는 날이 늘어간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산복도로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산복도로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 조망의 특권'이 이들의 발길을 붙들어 맨 것이다.

■산복도로, 바다조망의 특등석

   
25일 일출 직전 부산 중구 영주동의 산복도로 풍경. 부산의 산복도로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바다조망의 특권을 누린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지난 23일 오후 2시, 범냇골 버스정류장에서 '망양로' 산복도로를 달리는 86번 시내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성북고개를 넘어 수정산 산복도로에 접어들자 달리는 왼쪽 차창으로 펼쳐지는 경사면의 산동네와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지만 바다 조망은 끝없이 이어졌다. 중앙로를 따라 높이 솟은 고층건물에 가렸다 나타났다 반복하는 부산항. 망양로 산복도로에서 한동안 평지가 유지되는 부산 동구 초량6동 부산디지털과학고 주차장에서 내렸다. 본격적인 바다 조망을 위해서다.

옥상을 주차장으로 만든 하늘주차장 12곳이 퍼레이드하듯 늘어선 이곳에서는 컨테이너를 실어나르는 갠트리 크레인 등 활기찬 부산항의 전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오륙도와 해운대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곳에서 지음 하늘주차장을 운영하는 김춘상(54·동구 초량6동) 씨는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 좋아요. 이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한동안 부산항을 내려다보거나 사진을 촬영하는 광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산복도로 시인'이자 부산 동구 초량6동 산복도로에서 43년째 살고 있는 강영환 시인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성격이 한번 눌러앉으면 잘 옮기지 않는 말뚝성향도 있지만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집이 있기에 지금까지 떠날 수 없었습니다. 맑은 날은 수평선 너머로 멀리 대마도가 거뭇하게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다는 것도 산복도로 조망의 특징이죠."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일터에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달과 별을 벗삼아 산복도로 골목길과 계단을 오르며 모진 삶의 무게에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이 가장은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추고 돌아서서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고 위로받지 않았을까. 산복도로는 고단한 삶과 시원한 전망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산복도로에선 고개만 돌려도, 한 발짝만 옮겨도 바다를 볼 수 있다.

겨울비치고는 제법 많이 내린 지난 20일 밤 9시. 영도 청학동 산복도로를 거쳐 민주공원 옥상을 찾았다. 취재기자와 동행한 김한근 부산불교역사연구소장은 "민주공원 옥상에서 바라본 부산의 야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무한가치 조망권 문화·관광 콘텐츠로

산복도로 조망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 근거로 삼을 만한 법원 판결을 통해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9월 서울고법은 고층 아파트 건설로 한강조망권이 침해됐다며 대기업 L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에게 1인당 100만 원에서 최고 6000만 원까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주택의 장소적 가치가 조망이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조망이 침해될 땐 아파트 시가가 하락하기에 건설사가 배상책임을 져야한다고 본 것이다.

부산 앞바다에 비교하면 실개천에 불과한 한강 조망권과 산복도로 조망권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서울고법의 판결을 미뤄볼 때 산복도로 조망권의 가치는 최소한 1억 원은 넘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조망에 환호한다. 특히 부산의 산복도로에서 누릴 수 있는 '풍경의 광활함'은 세상을 다 가진 것같은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강영조 동아대 교수(조경학)는 "항구 특성상 부산 앞바다는 세계와 연결돼 있다. 산복도로 조망권은 부산을 넘어 세계를 내려다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부산사람이 '뒤끝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도 세상사에 시달려도 바다를 한 번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털어버리는 산복도로 조망권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부산의 이미지를 가장 잘 간직한 항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산복도로다.

부산 중구 종합사회복지관 김혜련 관장은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자에게 털어놨다. 이달 초순께 두 사람이 찾아와 조망권이 빼어난 복지관 5층 옥상에 고성능 망원경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더라는 것이다. 김 관장은 "옥상에 유료로 고성능 망원경을 설치하려는 의도였지만 사회복지관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한근 소장은 "산복도로 조망권은 산복도로만의 매력과 가치를 넘어섰다. 이제 부산의 문화·관광 콘텐츠로 키우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고 강조했다.


# 강영조 교수가 추천하는 뷰포인트

- 부산 바다의 진수 보고 싶다면 그 곳에 가라
- 부산항이 한눈에 쏙… 천마산조각공원
- 광활한 풍광 원하면 중앙공원 충혼탑
- 접근성 고려한다면 민주공원 입구

   
산복도로의 가치와 매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빼어난 조망권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경관공학자인 강영조 동아대 교수(조경학·사진)가 추천하는 '산복도로의 조망 특등석' 3곳은 어디일까.

강 교수가 첫 손가락으로 꼽은 지역은 부산 서구 초장동 천마산조각공원 입구. 이곳에 서면 천마산을 가로질러 말굽모양인 U자의 아랫부분인 부산남항부터 신선대부부 용호동 오륙도는 물론 일출의 장관도 한 눈에 들어온다. 부산항을 가장 깊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천마산조각공원과 거의 같은 조망권이 확보되는 곳은 서구 남부민1동 대원사 앞 마당이다.
두번째는 중구 중앙공원 충혼탑이다. 충혼탑에 서면 오른쪽으로는 영도와 사하구에서부터, 가운데는 중구, 왼쪽으로는 동구 남구 수영구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천마산조각공원 입구가 부산항을 가장 깊게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은 부산항을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세번째는 산복도로 망양로를 따라 가다 보면 민주공원 입구의 삼거리와 마주친다. 현재 부산시가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하늘전망대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접근성과 조망권을 모두 갖췄다.

산복도로의 빼어난 조망권을 즐길 수 있는 지역으로 3곳만 추천하기가 아쉬웠던 것일까. 강 교수는 고정된 한 지점에 서서 바로보는 정적인 조망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산복도로 조망권을 향유할 수 있는 방법 한가지를 추가했다. 보수동과 중구종합사회복지관, 혜광고교를 거쳐 민주공원까지 운행하는 부산 중구 마을버스 1번을 타고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연이어 펼쳐지는 부산항을 한번 감상할 것을 권했다.


# 산복도로변 세탁소 주인장 김희준 씨

- 안방서 해돋이 보는 즐거움 느껴보셨어?

   
"생활환경이 낙후된 산복도로 지역이지만 부산항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랑이자 특권이죠."

고향(경북 청도)을 떠나 40년째 부산 서구 초장동 남부민 산복도로 해돋이길에 살며 수정양복점과 수정세탁소를 운영하는 김희준(62·사진) 씨는 취재기자에게 몇번이고 자신의 일터인 세탁소 겸 양복점에서 바라다보는 부산항 조망을 자랑했다.

김 씨의 권유대로 세탁소에서 부산항을 내려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입이 쩍 벌어졌다. 바로 발 아래 자갈치시장과 부산남항 영도다리가 펼쳐지고 멀리 오륙도가 손에 잡힐 듯 하다. 지나가는 배들의 엔진음과 남항을 떼지어 선회하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리면 용두산 공원과 민주공원 충혼탑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영도와 남항대교, 묘박지에 점점이 자리잡은 배들….

김 씨는 1982년 지금의 3층 건물을 샀다. 초장동 산복도로 아랫쪽에서 하던 양복점이 도로 부지에 편입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세탁소까지 겸했다. 1층은 일터로, 2, 3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맑은 날은 맑은대로, 비가 오거나 태풍이 치면 또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떠나면서 양복을 맞추는 사람도 세탁물도 줄었지만 제가 남부민동 산복도로를 떠날 수 없는 것은 탁 트인 바다 조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특히 일출의 장관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3층 안방에서 바로 해돋이를 볼 수 있습니다. 서광이 바로 우리집으로 쏟아진다고 할 수 있죠. 아마 부산에서도 이런 좋은 조망권을 누리는 집은 몇 채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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