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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92> 김동리·박목월의 고장 경주

천년고도 넉넉함으로 小說·詩 두 거목을 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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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한 목월과 대범했던 동리에게 황성 터·무덤·절… 경주 구석구석은 문학적 영감의 텃밭
- '나그네' '무녀도' 등 작품 속에서 빛나
- 두 거목 함께 기린 동리목월문학관은 문학도 키워내는 젖줄 자리매김

노래로 시작해보자.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2절도 기억하실 것이다. '한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내친 김에 마지막 3절까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음악가 김성태가 붙인 곡도 좋지만, 이 가곡의 가사 구실을 하는 박목월(1916~1978)의 시가 깊고 깊다.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다. '울어대는'이 아닌 '울어예는'으로 쓴, 글자 한 자의 차이는 참 크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난 27일 경주 동리·목월 문학기행을 독자 40여 명과 함께 다녀왔다. 동리·목월이 있는 경주와 동리·목월을 만나지 못했던 그 동안의 경주. 겨우 사람 두 명이 있고 없는 이 작은 차이가 참 크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참 드문 문학관, 동리목월문학관

   
新문학기행 참가자들이 김동리와 박목월의 문학적 자취가 묻어 있는 경주 진평왕릉을 둘러보고 있다.
보문관광단지 가까운 곳 불국사 근처 경주시 진현동에 동리목월문학관이 있다. 2006년 3월 문을 연 이 문학관에는 동리관, 목월관이 따로 있다. "우리 문학관이 운영하는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은 목월반(시)과 동리반(소설)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창작대학은 1년 과정인데 2010년에 제4기 수강생을 받습니다. 그동안 재학생과 졸업생 중 49명이 여러 경로로 등단했고 올해만 4개 신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를 냈어요." 장윤익 동리목월문학관장의 인삿말에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경주 출신의 문학평론가인 그는 인천대와 경주대 총장을 지냈다.

"특히 특강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데 김주영 박범신 유안진 허영자 신달자 정목일 선생 등이 이미 다녀가셨고 내년 특강진도 쟁쟁합니다.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의 후원을 받아 저희가 시행하는 동리문학상과 목월문학상은 상금이 각각 5000만 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인데 올해 목월문학상은 부산의 허만하 시인께서 받으셨죠. 조만간 상금을 7000만 원으로 올리고자 합니다."

동리목월문학관이 꽤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확인하고 보니 놀랍다. 크지 않은 도시 경주에서 이 정도로 문학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킨 것도 그렇고,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박목월 시인이라는 산맥들을 한 문학관에 모실 수 있는 이 고장의 풍부한 자산과 후진들의 헤아림도 그렇다. 동리목월문학관은 알차게 속을 꾸려놓아 돌아보고 나니 뭔가 단단하게 공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추웠다. 천년고도의 겨울바람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경주 벌판을 "문학기행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가보지 못했을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닌 것 같다"는 참가자의 반응이 나올 정도로 돌아다녔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불평이 없었다. "재미있다" "몰랐다"는 반응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건 전적으로 이날 문학기행의 '스타 안내자' 시인 손진은(경주대) 교수 덕이었다. 그의 안내와 설명은 효자손 같았다.

■황성옛터는 월색만 고요하지 않았다

   
김동리가 4세 때부터 거주했던 경북 경주시 성건동 자택 주변 풍경.
황성동에 황성공원이 있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하더라는 노래 '황성옛터'의 무대다. "김동리 선생은 1913년 성건동에서 나셨습니다. 3년 뒤 건천읍 모량에서 박목월 선생이 나셨죠. 젊은 시절 두 분은 친했습니다." 동리는 목월에게 '3~4년 뒤면 우리가 문단의 주역이 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대범했고 목월은 생계를 위해 금융조합에 취업해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독하게 시만 생각했던 자발적 외톨이였다. "그렇게 달랐던 동리와 목월 모두가 작품을 구상하고 문학을 생각하며 자주 거닐었던 곳이 바로 이 황성공원입니다."
황성공원는 목월의 '얼룩 송아지' 노래비와 동리의 문학비 등이 있어 예술의 정취가 있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온 국민의 동요 '얼룩 송아지' 노랫말은 목월 작품이다. 놀라운 이야기를 손 교수는 들려줬다. "목월은 1933년 '어린이'라는 잡지에 동시를 발표하면서 동시인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때 그를 추천하고 이끌어 준 분이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 선생이십니다."

신시(新詩) 60주년이 되던 1968년 한국 문단은 문학비 두 개를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황성공원에 선 목월의 '얼룩 송아지' 노래비다. "이 노래비 건립을 주도한 분이 바로 윤석중 선생이십니다." 당시 57세였던 스승이자 선배 문인이 52세가 된 제자이자 후배 문인의 노래비를 세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는 이야기.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화다. 제대로 된 후배와 문학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 그에겐 있었던 것이다. 옛날이 더 좋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목월은 종종 황성공원을 찾아 노래비에 큰 절을 하며 '큰 선배'께 감사드렸다 한다.

성건동 근처로 가까이 갈수록 동리의 향기는 짙어졌다. "김동리의 형 김범부는 당시 한국 최고 석학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동리의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줬지요. 동리는 '형은 나의 신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김범부가 동생에게 지어준 필명이 '동리'입니다. 동쪽 마을이라는 뜻이죠." 동리는 형이 지어준 필명을 받아든 순간 "머리 속이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성건동 동리 생가에서 1㎞ 떨어진 곳에 경주의 북천 서천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이 있다. 바람 찬 강가에 일행은 섰다. "저기 보이는 강이 무녀도의 모화가 아들을 죽게 한 뒤 걸어들어가 생을 마감한 장소입니다. 동리는 용감했어요. 생전 저희와 함께 여기 오셨을 때도 다이빙을 즐겼죠."

■ 품 넓은 고도에서 산이 솟다

   
박목월 흉상.
성건동 일대는 예부터 경주의 점집촌, 무당촌이었다고 한다. 동리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동리는 어릴 때 개구장이였어요. 동네 여자아이들의 팔을 물어뜯는 게 주특기였는데 이웃에 한살 많은 소녀 선이가 살았어요. 그런데 선이는 동리가 물어뜯으며 괴롭혀도 전혀 대들지 않고 깊은 눈으로 동리를 이해한다는 듯 쳐다만 봤다 합니다." 어느 날 아침 꼬마 동리는 선이 아버지가 밤새 갑자기 죽어버린 선이를 지게에 싣고 서천을 건너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여섯 살이던 동리는 그때 큰 충격을 받고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했습니다. 저 당산나무가 바로 동리가 어릴 적 오르내리며 뛰놀던 그 나무입니다."

동리와 목월 모두 작품 속에 경주 시절, 경주 풍경을 짙게 반영했다. 동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는 1982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무녀도' '을화' '사반의 십자가' '역마' '등신불'…주옥들을 남겼다. 동리는 1940년대 참여문학론에 맞서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대논쟁을 주도한 우익 계열의 예술인이었다. 하지만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온 집안이 온통 좌파'인 작가 이문구가 문하로 들어오자 그에게 닥친 감시와 간섭을 적극 막아주고 보호한 일화 등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품이 컸다.

목월은 어떤가. "우리가 즐겨 부르면서도 그 노래의 가사가 목월의 시임을 모르는 가곡이 무척 많습니다." 장윤익 동리목월문학관장은 말했다. "목월의 시세계는 3기로 나뉘는데 그 시기마다 높다란 성취를 이뤘다는 점에서 참으로 큰 시인"이라고 손진은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국민 시인이다.

천년고도는 가는 곳마다 오래된 무덤, 절, 궁궐터가 있었다. 여기서 사색하면서 산 사람이라면 옹졸해질 리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경주의 품이 새삼스레 부러웠다. 또 한 가지. 목월과 동리를 모른 채 다녔던 경주는 동리와 목월을 만나면서 완연히 새롭게 다가웠다. 2009년 마지막 문학기행은 소득이 컸다.

신문학기행 참가 문의= 부산문화연구회(051)441-0485 동보서적 803-8000 http://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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