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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한반도까지 <13> 고구려, 초원을 탐하다

"지두우를 정벌하라" 고구려와 유연의 약속, 한-몽골 동맹 최초 사례

5~6세기 '지두우 진압 작전'…두 나라의 전략적 상생 외교술

당시 양국 라이벌 북위 견제하고 중앙아시아 초원 루트도 보존

남제서 등 역사기록에도 연합군의 거란 공격 상황 언급

당시 주무대 동몽골 등 발굴하면 고구려 계통 유물 쏟아질 수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2-14 20:03:31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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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지난 1000년간의 최고 영웅으로 뽑은 칭기즈칸은 우리에게는 고려시대의 침략자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심지어 1980년대를 풍미했던 디스코 그룹 징기스칸의 노래 '징기스칸'은 제5공화국 시절에 금지곡이었다. 하지만 지금 몽골은 동아시아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방이 되고 있다. 외모에서 풍기는 유사성뿐 아니라 대국적인 기질이며 성정이 우리에게 참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유목국가인 몽골에서 느껴지는 친연감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역사상 최초 한-몽 동맹관계의 구체적 증거는 서기 5~6세기 고구려와 몽골에 웅거한 초원제국 유연 사이의 우호관계다. 두 나라는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중국 세력을 견제했다. 두 나라의 동맹관계는 서기 475년 몽골과 고구려 사이에서 거주했던 부족인 지두우를 공격해 분할하는 작전으로 구체화됐다.

■고구려, '원조'(元祖) 한-몽 동맹관계를 열다

고구려 장수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장군총.
고구려는 광활한 영토를 장악한 제국답게 중국뿐 아니라 초원과 연해주의 여러 부족들과 겨루며 서북쪽으로 고막해, 지두우, 거란 등의 초원민족과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흑룡강성 서북쪽의 호룬뻘평원에서 시작해 자바이칼, 동몽골에 이르는 춥고 황량한 초원지대에서 살던 유목민족이었다. 이 지역은 좋은 말이 나기로 유명했지만, 농사가 불가능했던 탓에 지속적으로 주변 국가와 교역하여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두우와 거란이 고른 교역 파트너는 당시 고구려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북위였다. 북위는 흉노에서 갈려나온 선비족의 일파인 탁발선비가 세운 나라였지만 빠르게 중국화하여 중원으로 진출했다. 북위는 서기 4~5세기에 중국 북방에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지두우는 북위와 변경에서 국경시장인 교시(交市)를 열어서 서로의 이익을 얻고 있었다.

'지두우 분할 작전'은 고구려 장수왕 때 시작됐다.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기름진 남쪽의 땅을 차지하느라 바빴을 고구려가 굳이 황량하고 추운 반 사막지대의 땅을 탐할 이유가 있었을까. 강력한 기마부대를 유지했던 고구려로서는 지두우가 기르던 우수한 말이 탐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고구려에 적대적인 북위세력이 지두우와 친해진다면 고구려가 몽골 초원으로 나아가는 루트가 막히는 결과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당시 몽골 초원에서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맺은 유연제국은 흉노의 뒤를 이어 5~6세기에 몽골에서 크게 발흥한 유목 제국이었다. 유연과 고구려는 공동의 적인 북위에 대항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다. 고구려는 유연에게 양질의 철제 개마(鎧馬·갑옷을 입혀 무장시킨 말 또는 그러한 용도의 갑옷) 무기를 제공했고, 유연은 고구려에게 양질의 말을 제공했다. 또한 유연은 광활한 초원지역을 점했던 탓에 고구려가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러니 두 나라 사이에 있던 지두우가 북위에 부의한다는 것은 고구려로서는 초원의 길이 끊기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고구려가 단독으로 지두우를 정벌하기에는 국내외 정세가 여의치 않았을 테니 유연과 합동작전을 모색한 것이다.

■미스터리의 초원제국 유연

고구려와 대치했던 북위의 전사를 새긴 조각상. 중국 요령성박물관 소장.
초원지역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유연제국은 영원한 미스테리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유연은 4~6세기에 몽골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초원을 통일한 거대한 제국이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유연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거의 없다. 초원을 200년 넘게 지배한 제국의 고고학적 유물이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몽골초원을 연구한 미국의 역사가 바필드는 유연을 '실패한 유목국가'라고도 했다. 고고학적 유물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사기록에 나오는 유연은 가공할 만한 거대 제국이었다. 아마 유연의 수도나 성터가 아직도 몽골 사막 어딘가에 숨겨져 있거나, 유연의 뒤를 이은 돌궐제국의 유적과 섞여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유연은 고구려의 영원한 동맹국이기도 했다. 고구려와 초원지역을 기록한 모든 사서들은 공통적으로 둘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는 유연에게 대량의 선진문물을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만약 앞으로 구체적인 유연의 유적이 몽골에서 발견된다면 고구려와 관련이 매우 깊은 유물들도 반드시 출토될 것이다. 나에게 몽골 조사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연의 유적을 꼭 조사해보고 싶다.

광개토대왕 시절에 중국을 장악한 북위의 팽창은 고구려에게도 위기였다. 특히 고구려와 북위 사이에 있던 북연이 멸망하면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북위의 북방에서 초원제국을 이루고 있던 유연도 북위와 군사적 갈등이 심각했다. 이 상황에서 이루어진 지두우 분할작전에 대한 기록은 매우 짧아서 '위서-거란전'에 달랑 1줄만 나와 있다. "고구려는 몰래 유연과 공모하여 지두우를 나누려고 했다. 거란은 그 침략을 두려워하여…1만여 명을 이끌고 백랑수로 갔다." 이 말만 보면 애매하다. 지두우를 분할하려고 계획했다는 내용만 있지,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바로 그 다음 문장은 엉뚱하게 그 옆에 있었던 거란이 몽골 동부에서 몇 백 킬로미터를 남하해서 대릉하(백랑수)지역으로 도망갔다는 기록이다.

■지두우 분할작전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것

요나라 고분벽화에 그려진 거란인.
아마도 지두우 분할작전은 지두우뿐 아니라 거란을 비롯한 모든 친북위세력들을 위협할 만한 원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란족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해서 머나먼 대릉하 유역까지 도망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두우 작전의 기록이 '거란전'에 실리게 된 것도 자연히 이해가 된다. 실제로 '남제서'(南齊書)에는 서기 480년 고구려가 다시 유연과 연합해서 거란을 공격했다고 되어 있다.

지두우 작전은 결국 북위가 고구려와 화친을 맺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북위는 당시 사신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고구려의 순위를 제(齊)나라 다음인 두 번째로 했고, 491년에 장수왕이 죽자 북위의 효문제가 직접 상복을 입고 추모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이렇듯 역사상 최초의 한-몽 합동작전은 북위의 기세를 꺾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렇다면 고구려인들은 지두우를 실제로 고구려의 영토로 만들었을까. 이 부분은 역사 기록이 적으니 고고학이 나서서 해결해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두우가 있었던 호룬뻘평원과 동몽골은 중국과 몽골 고고학에서 가장 조사가 덜 된 지역이다. 게다가 고구려가 노린 것은 지두우의 세력 약화이지 영토 점령은 아니었으니 고고학적인 자료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고구려가 군사작전을 취하면서 성지 같은 것을 만들었다면 고구려 계통의 무기와 마구들도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최근 중국의 팽창주의는 주변의 모든 국가로부터 우려감을 불러일으킨다. 주변 지역의 역사를 자국사로 바꾸는 것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작금의 중국은 주변지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한국이 몽골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고구려가 유연과 밀접한 동맹관계를 맺고 거대한 북위에 맞섰던 시절과 많이 유사하다. 서로 너무나 상반된 국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몽골이 서로의 장점을 취한다면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의 첨단 기술과 몽골의 광활한 자연자원을 결합시키는 '한-몽 연방제'라는 다소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고구려의 지두우 분할작전은 이미 1500년 전 초원과 한민족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 여파 때문에 고구려와 한국과의 관련성에만 관심이 많다. 하지만 고구려가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초원지역과 다양한 교류'라는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두우 분할작전에는 척박한 환경과 첨예한 국제관계에서 고구려가 진정한 승자로 우뚝 서게 한 지혜가 숨겨져 있다.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지금의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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