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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한반도까지 <9>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 신라로 오다

알타이 초원의 황금기술, 흉노 거쳐 신라 황금문화로

알타이의 강 주변 사금 채취 파지릭인들, 황금으로 만든 `그리핀` 장식 등 발달

흉노인들이 황금 만드는 기술 배워 선비, 오환, 고구려 등지로 전파

신라와 가야에서 찬란한 황금문화 재탄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16 19:28:1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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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발견된 그리핀 장식.
요즘 금값이 폭등하면서 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금의 금에 대한 애호는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인한 전세계의 경제위기에서 시작된 것이니 장롱속에 모아두었던 아이들 돌반지와 금가락지 숫자를 세어보면서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 예부터 금은 인류가 가장 애호하는 금속임에 틀림없다. 한국사람이 금을 좋아하게 된 역사는 평양에 위치했던 낙랑에서 시작됐으니 그 역사가 2000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귀금속은 옥으로, 신석기시대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황금이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사랑을 받은 때는 신라와 가야시대이다. 오죽했으면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 할 정도였다. 금관 귀걸이 팔찌 등 당시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에는 수많은 황금이 묻혔고, 심지어 청동에 금도금을 한 '비용절감형' 유물도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은 정확했다

파지릭 고분에서 출토된 고깔모자. 나무로 만든 조각에 금을 입힌 독수리 모양의 그리핀 장식인데 주로 말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초원의 민족들도 황금을 좋아했다. 특히 알타이에 살던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황금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타이'라는 말 자체가 황금을 뜻하는 투르크어 '알틴'에서 나왔으며, 한문으로는 황금의 산을 뜻하는 '金山'(금산)이라고도 썼을 정도다. 실제 알타이에 가보니 만년설이 덮인 산들은 석양이 질 때면 주변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그 아름다움을 형언할 수 없었다. 알타이가 황금의 산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알타이는 현재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4개국에 걸쳐 있는 사얀-알타이 산맥 일대를 말한다. 지금도 알타이족은 목축을 하며 이 4개 나라에 나뉘어 살고 있다.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 단어로 인해 알타이를 막연히 우리의 기원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와는 수 천 ㎞ 떨어졌기 때문에 알타이가 실제로 한민족의 고향인 증거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기원전 8~3세기 이 지역에 존재했던 파지릭인들의 문화는 황금을 숭상하던 흉노를 거쳐 한반도의 신라로 파급되었다.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면 알타이의 파지릭문화는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의 나라다. 그리핀 또는 그리포스라고 하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다. 이는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환상의 동물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동쪽 멀리 괴수인 아리마스페이가 사는 곳보다도 더 먼 곳엔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 살면서 황금을 훔치는 것을 막는다고 기록했다. 헤로도투스의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은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중국의 산해경처럼 주변 민족들을 환상의 동물로 표현한 것임이 20세기 이후 알타이지역 파지릭문화의 발굴로 밝혀졌다.

스키타이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
실제로 파지릭문화의 고분을 발굴하니 독수리 모양을 한 그리핀 장식이 다수 출토되었다. 나무로 만든 조각에 금을 입힌 것인데, 주로 말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또 무덤 내의 시신 머리 위에서도 발견되었다. 유물을 자세히 연구해보니 그리핀은 파지릭인들이 썼던 고깔모자의 끝장식이었다. 고깔모자를 쓰면 모자 끝이 새머리처럼 뾰족하게 나오고 그 위에는 그리핀의 장식이 얹혀진다. 아마 멀리서 본다면 사람 얼굴 대신 거대한 새가 머리에 앉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당시 파지릭 사람들은 알타이의 강 주변에서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곳곳에 전사들로 하여금 경비를 서게 하여 감시했을 것이다. 황금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노출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도 6~7시간은 족히 가야 할 거리의 알타이에 대한 헤로도투스의 묘사가 완벽히 들어맞는 셈이다.

■'표트르 대제 컬렉션'의 탄생

신라금관
파지릭문화는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시베리아의 옛 고분에서 황금유물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고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다른 유물은 그냥 깨부수거나 버리고 오로지 황금만을 찾았는데, 이러는 과정에서 많은 값진 유물들이 녹여져서 그 무게로만 값이 매겨졌다. 무식한 코사크인들은 이 황금을 녹여서 금화를 만들어서 팔았다고 한다.

다행히 표트르 대제가 서구에서 오래 생활한 덕에 이 유물들의 골동품적 가치를 파악하고 명령을 내려서 함부로 없애지 말고 사들여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내게 했다. 바로 그 유명한 '표트르 대제 컬렉션'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표트르대제는 황금만 챙기지말고 고분의 위치나 출토 상황도 같이 보고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황금유물이 알타이에서 출토된 것이 밝혀졌다.

20세기 초에 고고학조사대는 황금유물이 출토되던 알타이지역의 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선정한 고분 근처에 '파지릭'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따서 파지릭 고분군이라고 명명되었고, 이후 알타이의 황금문화는 파지릭문화라고 불리게 되었다. 파지릭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영산(靈山)으로 추앙받는 알타이산의 가장 높은 지역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 고분내에서는 페르시아산 양탄자를 비롯해 주변지역에서 헌납해 온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흉노가 썼던 금제장식. 뒷면에 한자로 무게가 적혀 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일본을 '지팡구'라고 하며 지천에 황금이 넘친다고 기록해 서양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하지만 '황금의 나라'의 원조는 신라였다. '일본서기'에는 신라는 황금으로 넘쳐난다며 부러워한 기록이 있다. 신라의 황금을 만드는 기술은 어디에서 왔을까? 알타이의 파지릭인이 직접 신라로 왔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황금문화는 동아시아로 빠르게 전해졌다. 옛 중국 기록을 살펴보면, 알타이의 파지릭문화는 '월지(月氏)'라고 판단된다(학자에 따라 다소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월지는 한무제가 흉노 정벌을 위해 서역으로 보낸 장건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 타이의 황금, 신라를 매혹시키다

신라와 알타이 사이에 존재했던 흉노의 금관. 중국 내몽고에서 출토.
당시 장건이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월지에 다다르니 월지는 이미 중앙아시아로 도망쳐서 평온하게 나라를 꾸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실제로 파지릭문화는 기원전 2세기~1세기경 흉노문화가 팽창하자 그 세력을 못 견디고 중앙아시아로 도망간 사람들이 형성한 것이다. 이 와중에 알타이의 황금기술은 흉노와 중앙아시아로도 전파되었다. 그러므로 알타이의 황금기술이 어떻게 신라까지 전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신라와 알타이 사이에 위치해 기원전 4세기~서기 1세기에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흉노를 보면 해소된다. 흉노인들도 초원의 황금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여러 장식을 만들었다. 흉노의 황금은 이후 선비, 오환, 그리고 고구려로 전해졌다.

알타이의 사람들은 강에서 모래를 채취해서 얻은 사금으로 황금을 만들어냈다. 요즘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이 없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강 주변에서 사금을 채취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신라의 황금도 대부분 형산강 유역에서 채취한 것이다. 사금을 채취하고 황금을 얻어내는 방법까지 일치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알타이의 황금은 시베리아를 정복한 러시아의 코사크인들에 의해 무참히 도굴되고 녹여져 금화로 변해버렸다. 신라의 황금유물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발굴돼 일본인들이 경쟁적으로 한반도의 고분을 도굴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1921년에 발굴된 경주의 금관총은 당시 전 세계의 고고학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였다. 일본의 고고학자들은 금관총과 여러 신라 고분에 대한 보고서를 최고 호화판으로 만들어서 당시 식민지 한국을 방문한 서구의 여러 인사들에게 증정했다. 자신들의 식민지사업을 자화자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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