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는 배추와 양배추의 교배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는 유채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종은 달라도 속이 같으면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다. 사진은 우장춘 박사가 원예시험장 온실 안에서 시험재배하는 작물을 살펴보는 모습

'COF₁-I 의 F₂ 후대 중에서 체세포 염색체 수가 38인 임성(稔性·수정 과정을 통하여 싹틀 수 있는 씨를 이루는 식물체의 능력)의 개체들이 나왔는데 이들은 소포자 형성 과정의 제1감수분열중기에서 변함없이 19개의 2가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B. napus(유채)의 실험적 합성은 F₁에서 체세포배가(COF₁-Ⅳ)와 배우자 배가에 의한 2가지 방법으로 성공된 것 같다'.

우장춘 박사를 세계적으로 알린 '브라시카속에 있어서 유채의 실험적 합성 및 특유의 수정양식과 관련한 게놈 분석', 흔히 '종의 합성' 또는 '우장춘의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박사학위 논문의 결론 중 맨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서 C는 campestris(배추)의 암꽃, O는 oleracea(양배추)의 수꽃을 말하고 F₁과 F₂는 잡종으로 탄생한 1세대와 2세대이다. 이 논문은 배추속 식물의 게놈 분석에 대한 것으로 당시 같은 종끼리만 교배할 수 있다는 육종학계의 고정관념을 깨고 같은 속(屬)의 다른 종(種), 즉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 유채와 같은 기존에 존재하는 다른 식물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우 박사는 이 논문으로 1936년 도쿄제국대학 농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좌절 딛고 선 졸업 17년 만의 박사논문

1919년 도쿄제국대학 농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여름 농무성 농사시험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우 박사는 10년에 걸쳐 나팔꽃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팔꽃 품종의 특성에 대한 연구로 그의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나팔꽃과 관련한 몇 편의 논문을 더 내놓았다. 그는 나팔꽃의 유전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으나, 1930년 가을 도쿄제국대학에 제출하려던 하루 전날 시험장의 화제로 논문과 관련 자료가 모두 불탔다.

염색체 배가 과정을 보여주는모식도

이 사건 이후 그는 유채종자에 대한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 유채씨앗연구실장으로 있던 그는 두 명의 연구원과 함께 유채의 교배와 염색체 구조 분석 등 일본유채의 품질 개량 작업을 시작했다. 연구는 성장 기간은 짧지만 병에 약하고 수확량이 적은 일본 유채 종자와 성장 기간이 길지만 수확량이 많은 서양 유채 종자를 교배해 일찍 수확할 수 있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이 연구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가 된다.

4년의 세월이 흘러 1935년 가을 우 박사는 학위논문을 동경제국대학 농학부에 제출하고 이듬해 5월 4일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는 농학박사 학위를 받는 이가 극히 드물던 시절로, 그의 학위 수여 사실이 NHK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논문은 유채의 일종인 '브라시카 나프스'가 염색체 구성이나 식물 형태의 비교상을 볼 때 재래종 배추인 '브라시카 캄페스트리스'와 양배추 '브라시카 오레라시아'의 인공적인 합성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냈다. 우 박사의 논문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팔꽃을 주제로 한 논문이 불타버린 좌절을 딛고 시작한 연구가 그를 유명인으로 만든 것이다.

우 박사의 연구성과는 그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1927년에 이미 구 소련의 학자인 카페센코가 십자화과 식물의 종간 교잡을 시도했다. 십자화과는 브라시카류, 우리말로 요즘엔 대표 종을 내세워 배추과로 부른다. 일본에서도 1920년대 후반부터 종간잡종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우 박사가 이런 연구 결과를 접했었기에 종간 합성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유채를 이용한 종의 합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두 연구원의 도움이 컸다. 나가마츠 츠츠미는 종자의 유전자분석에 필요한 잡종 교배작업을 맡았고 미즈시마 우사부로는 현미경으로 염색체의 구조를 조사하는 세포학적 연구를 담당했다. 이 두 사람은 훗날 규슈대학과 도호쿠대학의 육종학 담당 교수가 된다.


■우장춘의 삼각형

우 박사는 배추(B. campestris, 염색체 수 n=10)와 양배추(B. oleracea, 염색체 수 n=9) 씨앗을 교배해 새로운 식물을 만들었다. 새로운 식물의 염색체 수는 19개이고 이는 배추의 10개와 양배추의 9개를 더한 것과 같다. 결국 이 새로운 식물은 기존에 존재하던 유채(B. napus)와 같은 식물이었다. 즉 A라는 식물과 B라는 식물을 교배해 C라는 새로운 식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 합성된 새로운 식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식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식물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우장춘 박사는 이 식물이 염색체 수 19인 유채와 세포학적으로 일치한 것을 밝히는 한편 유채, 배추, 양배추 등 세 가지 식물의 세포학적 관계를 밝히는 염색체 분석에 성공했다. 즉 배추와 양배추의 합성으로 이미 존재하는 유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해 종간 잡종과 종의 합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함을 보였다.

양배추와 배추를 교배하면 유채가 나오듯이, 염색체 수 10인 배추와 염색체 수 8인 흑겨자를 교배하면 염색체 수 18인 갓이 만들어지고 흑겨자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염색체 수 17인 에디오피아겨자가 만들어진다. 이를 '우장춘의 삼각형'이라 부른다. 그는 이를 통해 속이 같고 종이 다른 식물이 유전적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종의 기원을 보충하다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유채

다윈의 진화론은 서로 다른 종이 각자 환경에 적응해 개별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우 박사의 종의 합성 이론은 서로 다른 종이 교배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종의 합성은 두 식물이 가진 염색체의 2배체, 즉 2n의 각각의 n이 서로 모여 다른 식물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배추, 흑겨자, 양배추 등 세 개의 종 사이에 자연적인 교배가 일어나 유채와 같은 새로운 종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진화론의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된다'는 내용을 보충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배추와 배추를 교배하면 염색체 수 19인 종자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콜히친이라는 약품을 처리해 2배체(염색체 수가 2배, 2n)를 만들어 키우니 유채가 나온 것이다. 우 박사는 이 관계를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처음 증명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조용섭 박사는 "종의 합성 이론을 통해 식물의 진화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며 "우 박사는 현미경 관찰 결과 기존 유채와 인공적으로 합성한 유채의 염색체가 같다는 것을 보여 '종의 합성' 이론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논문에도 나와있듯 양배추와 재래종 배추의 1대 잡종의 감수분열 과정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한 것이 종의 합성의 결정적 증거가 된 것이다.

'종의 합성' 논문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논문이 실린 '일본식물학저널'은 전 세계 식물학계에서 널리 읽혔다.특히 스웨덴은 '종의 합성'에 따라 양배추류와 다른 야채류를 교배해 여러 품종을 만들어 식생활에 큰 도움을 얻었기에 우장춘 박사의 이름과 논문도 스웨덴에서 유명세를 탔다. '종의 합성'에 대한 내용은 유전학 관련 교재에 빠짐없이 실릴 정도가 됐다.

조용섭 박사는 "우 박사의 연구 이후 밀과 호밀을 대상으로 한 교잡종 합성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브라시카속에서 '종의 합성'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며 "그러나 아직 우 박사에 필적할 만한 세계적 연구성과가 나온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에 대한 연구는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 이 기사는 부산과학기술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