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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84> 최두석 시인과 함께 거닌 전남 담양

대나무는 그들의 삶이고 느티나무는 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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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시인은 "고향을 떠나 산지 오래됐고 부모님도 고향에 안 계시니 이번 담양문학기행은 내게도 관광인 셈"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고향 담양의 명소 소쇄원엔 꽃이 피고 있었고 봄은 전차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 가슴에서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한 주부 이희숙 씨도, 시 쓰는 서경원 씨도, 국토기행의 백전노장 우주호 국토와 환경연구소장도 잠깐 말을 잃는 듯했다. 주부 참가자들은 "기(氣)를 받아보자"며 둥치에 손을 얹었고 일행 중 한 명은 조용히 조용히 나무에 얼굴을 갖다대고 한참 그러고 있었다.

담양군 대전면 한재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일행은 그렇게 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84호)를 만났다. 느티나무는 크고 아름다웠다. 우주에 닿을 것 같았다. 옛 사람들이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이유, 그런 나무를 우주를 깃든 우주수(宇宙樹)로 모셨던 까닭이 비로소 뚜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경이로웠다.

단순히 관광을 위해 '우리끼리' 담양에 왔다면 기필코 못보고 지나치고 말았을 이 느티나무로 우리를 안내해준 최두석 시인은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담양군 대전면은 내 고향입니다. 저는 바로 이 한재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 느티나무가 우리들의 놀이터였죠."

그는 이 느티나무를 이렇게 시로 썼다.

'새 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며/나무가 내쉬는 숨을/가슴 깊숙이 들이마신다/그네를 뛰고 공을 차던 아이가/반백이 되어 돌아와 행하는/봄맞이 의식이다//이조의 태조 이성계가/기우제를 지냈다는 나무/방방곡곡 제법 돌아다녀본 뒤에 보아도/이 땅에서 가장 웅숭깊은 그늘을 거느린 나무/그 그늘 아래서 글을 익힌 게/은근히 자랑스러운 나무//오물오물 움질움질/새 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며/나무의 숨결이/나의 숨결이 될 때를 기다린다/나무의 마음이/나의 마음이 될 때를 기다린다'('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 전문)

"나무의 둘레를 재보자." 문학기행 일행이 손을 잡고 나무 둘레를 감싸 안았다. 아홉 명이 둘러서고서야 겨우 모두의 손이 이어졌다. 추정 나이 600살. 담양이 그런 것처럼, 이 느티나무는 시인 최두석의 마음 속에 깊이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살아가면서나 시를 쓰면서 어지간해선 최상급 표현은 쓸 것 같지 않아 보일 만큼 조용하고 소탈했던 최 시인이 '가장 웅숭깊은 그늘'이라고 쓴 것이 그 증거다.


■ 느티나무와 대나무들의 봄 합창

담양문학기행의 주인공으로 초대된 최두석 시인을 좀 낯설게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정은 이번 문학기행 일행을 태운 버스 안에서도 비슷했다. 그래서 최 시인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했는데, 뜻밖의(?) 인물이 그 점을 해결해줬다. 손택수 시인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시를 쓰는 손택수'라는 호칭에서는 기린아의 느낌이 미묘하게 묻어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그의 시집 제목인 '목련전차'라는 낱말만 떠올려도 전기가 흐른 듯 가벼운 전율이 느껴진다. 시인의 의도대로 이 시집 제목을 목련'전차'(電車)로 이해해도 빼어나지만, 이 낱말을 목련'전차'(戰車)로 바꿔보면 송이송이 뚜벅뚜벅 봄기운을 몰고 짓쳐오는 목련꽃의 느낌에 가볍게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1970년 생으로 부산에서 오래 살면서 시인이 됐고 몇해 전 서울로 올라가 저명한 문예지 '실천문학'의 주간을 맡고 있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시의 원형을 형성한 고향이 바로 담양이다. 역시 담양 출신이면서 지금은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서울에 살고 있는 최두석 시인은 '고향 까마구' 손택수 시인과 함께 담양으로 내려왔다.

"고향의 선배이기도 한 최두석 시인은 시인으로서도 그러하지만 시론(詩論)에서도 무척 중요한 몫을 감당해왔습니다. 한국문학사에서 리얼리즘시론을 정립하고 마땅한 비중으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학사는 소월 영랑 미당 등으로 이어지는 서정성의 계보와 이상 김수영에 뿌리를 둔 모더니즘 계보가 주축이었는데 70년대 이후 현실에 민감하고 시인의 사회적 책임을 받아안는 일군의 참여형 시문학이 활기를 띠게 된다. 그 흐름은 임화 이용악 신경림 김지하 박노해 등으로 연결됐다. 반독재민주화운동, 사랍답게 살기 위한 운동이 우리 사회에 펼쳐졌을 때 이 쪽의 시들도 크게 활발해졌지만 막상 이것을 미학과 문학사의 관점에서 정립하는 시론가는 드물었다.

최두석 시인이 감당해낸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참여시, 민중시 등으로 규정되며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이 같은 흐름을 리얼리즘시론으로 정리해내고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전통이자 자양분으로 자리매김한 주역이라는 것이다. 손택수 시인이 말을 이었다. "시 창작에서도 그는 노래/이야기, 예술성/사상성, 형식/내용의 긴장관계 또는 길항관계를 중시하며 나름의 경지를 개척했다"고 설명했다. 손 시인이 "하지만 워낙 조용하고 소탈해서 홀로 시 쓰고 공부하지 좀체 나서는 일이 없는 분이어서 비중만큼 조명되지 못한 편"이라 말할 때 '고향후배'로서 묘한 자부심 같은 것도 느껴졌다.


■ 상쾌하게 담양의 봄길을 걷고 또 걷다
서로를 아끼는 '고향 까마구' 선후배 시인과 부산에서 달려간 문학기행 일행을 태운 버스가 담양에서 그린 궤적은 그대로 봄맞이 여행길이었다. 논밭의 흙에는 물이 올랐고 담양의 자랑, 대나무들은 기운이 싱그러웠다. 천연기념물 제366호이자 '한국의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기도 했던 담양 명물 관방제림(官防堤林)을 최두석 시인은 앞장 서서 걸었다. 죽녹원 산책은 이른 봄의 푸르름 속에서 목욕을 하고난 듯 상쾌한 걷기였다. 면앙정을 걸어서 올랐고 소쇄원도 거닐었다.

최두석 시인은 이 멋진 봄길 산책을 안내하며 '고향과 시' 이야기를 슬쩍슬쩍 들려주었다. 문학기행 주최 측인 동보서적 박현주 팀장이 "그동안 한 달에 한 번씩 80번 넘게 문학기행을 다녔는데 이다지도 점잖고 겸손하고 맑은 캐릭터는 참 오랜만"이라고 할 정도로 최 시인은 과묵한 쪽이었다. 그런데 그런 최 시인은 "깊이 생각해보아도 내 고향 담양에는 내 시의 뿌리가 묻혀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가 일행을 안내하면서 한번씩 말을 할 때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면앙정 송순이 조선시대에 지은 정자 면앙정에서였다. "빈농의 집안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농사를 지으셨고 농한기엔 대나무로 죽물을 엮어 팔러 다니면서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저는 철이 들 무렵 '이 세상에서 뜻있는 삶이 뭔가'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시인의 길을 택했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시의 길로 간다고 해서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도 했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가 바로 이곳 면앙정을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땅을 굽어보고(俛) 하늘을 우러러보아도(仰)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법을 고민했던 송순 선생의 흔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점이 참 좋습니다."

논바닥 가운데 점잖게 우뚝 솟아있는 담양읍오층석탑이 좋았던 것은 이런 점과 관련이 있었다. 탑은 결국 높은 곳을 향한 지향과 정신성을 상징할 수밖에 없는데 이 탑은 옛 절터였던 지금의 논 한가운데 서있다. 논은 최 시인 고향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 '현실'에 발을 딛고도 높은 정신성과 미학의 세계를 꿈꾸는 최 시인의 리얼리즘시론 그리고 그의 시들과 이 석탑은 어딘지 닮았다.

바깥 사람들에겐 담양의 상징이 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도 가보았고 '워낙 중국제품의 범람이 거세' 담양 토산 죽물만 한곳에 모아 놓은 담양죽물박물관과 그 앞 상가에서 쇼핑도 했다. 죽녹원 푸른 바람 속에서 대꽃과 대나무 땅속줄기의 슬프게 아름다운 사연도 접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여정이 진득하게 서로를 아껴주는 고향의 선후배 시인 최두석과 손택수 그리고 재잘재잘 또는 전차처럼 성큼성큼 다가오던 봄 기운과 함께 해서 기분이 좋은 여행길이었다. 한재초등학교 느티나무도 그런 일행을 굽어보고 있었겠지.


◆ 최두석 시인은

   
600살 느티나무 앞 최두석 시인(왼쪽)과 손택수 시인.
195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담양 한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전학가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사대 국어과와 대학원 국문과를 나왔다. 1980년 '심상'에 '김통정'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꽃' '임진강'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다'가 있고 올해 하반기 새 시집을 낼 계획이다. 시집 제목에서 보이듯 유난히 '꽃'에 관심이 깊다. "살면서 의미가 맺히고 발현되는 순간이 꽃이 아닌가. 동학농민전쟁이나 광주항쟁처럼 역사가 의미를 구현하는 장면도 꽃으로 다가온다. 또 어떻게 보면 시를 쓴다는 게 꽃을 피운다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엔 실제의 꽃과 나무들에도 관심이 더 많아졌다." 최 시인의 꽃 이야기다.

신문학기행 참가문의 = 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803-8000 www.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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