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48> 고조선에 미친 러시아사람

한국인들, 우리역사 공부하는 외국인 얕보는 경향 있어

배척풍토로 한국학 '우물안 개구리'

동구권 연구자 지원 등 이뤄져야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3-05 19:58:56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유리 미하일로비치 부찐이 근무했던 시베리아과학원 고고민족학연구소와 경제학 연구소. 필자가 유학한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 남한에서는 고조선의 실체에 회의를 품는 사람도 많았고, 변변한 전공자 하나 없었다. 고조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학계의 영향을 받은 강단사학과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구체적인 증거없이 고조선의 실체를 주장하려는 재야사학계가 소모적인 논쟁만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이때에 고조선에 미쳐서 북한, 중국의 고고학 자료와 역사 자료를 두루 섭렵한 러시아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유리 미하일로비치 부찐이다. 그는 동방학하면 중국이나 일본을 생각하던 당시에 놀랍게도 한국의 고대사를 전공했고, 그 중에서도 고조선에 미친 사람이었다. 부찐이 한국사를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출생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그는 당시 그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그 과정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문을 습득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학교에서 배운 불어마저도 능통했다고 한다.

그는 원래 경제학 전공이었는데, 그의 탁월한 언어적 능력을 알게 된 고고민족학 연구소의 오클라드니코프 소장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고고학 자료를 여러 언어로 번역을 부탁했고, 이것이 점차 고조선의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봤자 북쪽은 소련의, 남쪽은 미국의 위성국가이며 그 문화도 대략 중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일거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기원전 7~2세기에 중국과는 별도의 문화와 국가가 만주~한반도에 존재했었다는 그의 연구가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부찐의 연구는 지금 보아도 놀랍다. 고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설이나 독창적인 내용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고조선의 국경, 수도의 위치 등 한국사람이 읽어도 잘 이해가 안 갈 법한 내용들에 대한 거의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는 1982년에 '고조선'을, 그리고 1985년에 '삼국시대'라는 책을 내고는 아쉽게도 고고학계에서 사라졌다. 1980년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고고학을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모양이다. 이후 그는 이르쿠츠크로 이사해 본업인 경제학을 다시 전공, 대학의 경제학부장까지 맡는 등 경제학자로 성공했다.

우리는 외국 사람이 우리 역사를 한다면 뭐 얼마나 알겠는가 하고 얕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한 한국학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훈민정음을 연구하던 러시아의 노학자의 발표에 대해서 한 한국인 교수가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기겁한 적이 있었다. 그 한국인 교수는 왜 '음양(陰陽)'을 '인양'으로 하는가, 한문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학을 할 수 있는가 따지듯이 묻는 게 아닌가. 척박한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심으려고 평생을 노력한 그 러시아 교수님은 기가 막혀서 떠듬떠듬 한국말로 답변을 했지만 제대로 전달은 안되었다. '음양'을 '인양'으로 한 것은 러시아어 표준어가 '인양'이기 때문이었다. '풍수'도 러시아어 표준어로는 '펀슈이'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학술대회 내내 러시아 학자들을 아랫사람이나 대학원생 대하듯 하는 한국 학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외국에서 한국학 전공자가 너무 적은 이유 중 하나가 외국 학자의 연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풍토에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서양사 학회에 유럽 사람이 와서 유럽을 알고나 하시는 소리입니까 하던 적이 있던가? 한국학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 식이었나를 보여주는 예였다. 특히 소비에트 시절 한국 같은 약소국을 연구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평생 자기 나라에서 대접 제대로 못 받고 한국에서도 지원이 거의 없으니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만 연구한다. 요즘 한국 정부의 지원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한국학에 대한 역사가 유럽에서 제일 깊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가 대학교 때에 부찐의 '고조선'을 감명깊게 읽었던 터라, 꼭 뵙고 싶었다. 하지만 필자가 유학한 노보시비르스크의 고고학연구소에서도 그가 옛날에 연구소를 그만두어서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뒤늦게 그가 이르쿠츠크에 산다는 것을 알았지만, 쉽게 갈 기회는 없었고 결국 그는 2002년에 세상을 떴다. 통탄할 일이다. 2007년 필자는 한 연구회에서 부찐의 고조선에 대해 발표하면서 다시 그의 연구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부찐은 북한뿐 아니라 남한의 연구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무엇보다도 고조선은 확고하게 한국의 역사로 보았다. 그는 사서에서 중국에 대항하는 위만조선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의 책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한국고대사를 대표하는 저작이 되었고, 고조선은 한국의 역사라는 것을 러시아사람들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도 결국 부찐의 저작 덕분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부울경 오후까지 흐리고 비…낮 최고 22∼24도
  3. 3부하 직원 상습 성추행한 60대 임원 징역형 집유
  4. 4[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5. 5이란, 美에 호르무즈 개방 ‘7일 계획’ 전달…“선택은 美에 달려”
  6. 6추석 연휴 셋째날 부산→서울 7시간…귀성길 정체 풀려
  7. 7트럼프, 이란 ‘7일 계획’ 제안 거부…선거 후 폭격 가능성
  8. 8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9. 9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10. 10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1. 1李대통령 “한·멕시코 무역협정 논의 조속 재개해야”
  2. 2국힘, DMZ 지뢰사고 공세 지속…“증거유실 기다리나”
  3. 3[속보] 이 대통령, 유시민 겨냥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하다 독소조항 삭제 못해"
  4. 4[속보] 靑, DMZ 지뢰 사고 조사 “철저히 규명할 것”
  5. 5우크라 “북한군 포로 한국행, 韓과 직접 대화…비밀이송은 이상했을 것”
  6. 6조국 "조희대, 이 대통령 인정 안해" 장동혁 "조희대 탄핵하면 李 탄핵"
  7. 7[속보] 이 대통령, 임기 관련 "2030년 6월 2일 넘기는 일 절대 없어"
  8. 8靑 "우크라 '北포로 송환' 발표 전 한국에 알려와" (종합)
  9. 9장동혁 “한동훈 ‘당원게시판’ 사건 수사 중…복당 언급 부적절”
  10. 10합참의장, DMZ 지뢰 폭발 부대 방문해 현장조사 준비 점검
  1. 1음주로 목숨 잃은 여성 10년새 증가…50대 유독 늘어
  2. 2빠르게 느는 '10대 마약밀수범'…올해 적발인원, 작년 넘어서
  3. 3집세 받는 미성년 집주인?…올해 20세 미만이 산 주택 115건
  4. 4세금 안 낸 '억대 유튜버' 작년만 총 17명…당국, 239억원 추징
  5. 5[차호중의 재테크 칼럼] 통화량과 물가
  6. 6다대소각장 개발 다시 원점…부산시, 부지매각 해지 결정
  7. 7HJ重 올해 8척 ‘릴레이 수주’…대형선 경쟁력 입증
  8. 8가덕신공항 부지공사 기본설계 정부심의 통과
  9. 9북항 핫플만든 인싸 상어 '부캉이', "인기 덕 좀 봅시다" 마케팅 열풍
  10. 10[한 손 뉴스] 국산 전투기로 영공 수호…KF-21 공군 1호기 배치
  1. 1추석 연휴 70대 노모 살해한 50대 딸 검거
  2. 2부울경 오후까지 흐리고 비…낮 최고 22∼24도
  3. 3부하 직원 상습 성추행한 60대 임원 징역형 집유
  4. 4[날씨칼럼] 가을 태풍, ‘설마’하는 안일함보다 ‘미리’ 대비해야
  5. 5추석 연휴 셋째날 부산→서울 7시간…귀성길 정체 풀려
  6. 6부산 울산 경남 흐리고 밤부터 가끔 비
  7. 7귀성·귀경 행렬로 고속도로 정체…서울→부산 8시간 40분
  8. 8귀성·귀경길 정체 지속…부산→서울 8시간10분
  9. 9민형배 전남광주시장 “제주항공 유족 위해 특별팀 다시 꾸릴 것”
  10. 10호주 시드니 총격 사건 세 번째 용의자 체포…한국계 20대 남성
  1. 1[속보] ‘평균대 유망주’ 황서현,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금메달
  2. 2한국 여자 축구, 우즈벡에 6-3 승리로 준결승행
  3. 3류지현호, 일본에 0-5 영봉패
  4. 4이민성호, 베트남 4-0 완파하고 준결승 진출
  5. 5[속보] 한국 3대3 남자 농구,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
  6. 63경기 1실점 철벽 마운드 韓, 조1위 슈퍼라운드행
  7. 7父 여홍철과 어깨 나란히…여서정, 8년 만에 도마 금메달
  8. 8여서정·안세영·우상혁…‘금빛낭보’ 기대
  9. 92전 전승 한국축구, 조 선두로 8강 진출
  10. 10송세라, 항저우 한 풀었다…AG 첫 ‘금빛찌르기’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