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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문학기행 <83> 봄맞이 `三多의 섬` 제주도(상)제주도 속살을 보았다

슬픈 역사의 섬에 아름다운 풍경의 역설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09-03-03 20:15:09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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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서적, 부산문화연구회가 주최하고 국제신문이 특별후원하는 신문학기행은 제83회 행사로 지난 2월 27~3월 1일 제주도를 다녀왔다. 2박3일에 걸친 이 문학기행을 상, 하 2회로 나눠 4일자와 5일자 각각 싣는다.


성산 일출봉의 사연을 들려주는 한기팔 시인.
멀리 다랑쉬오름이 보였다. 한라산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제주도 문학기행 일행을 안내하던 토박이 김수열 시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주도에선 한라산이 가장 잘 보이는 마을에서 미녀가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제주도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서 본 대로만 한라산 모습을 이야기하지요."

한라산은 제주도 어디서나 잘 보인다. 그래서 이 섬 사람들은 자기 마을에서 보이는 모습대로 한라산을 느낀단다. 이렇게 되면 어디서 보는 한라산이 가장 아름다운지 합의하기 어려울 것은 뻔하다. 제주도가 작은 섬이라면 모를까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고 인구는 60만에 가까우며 수많은 관광객이 들고 나기 때문이다. '그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그들 각자의 한라산'이 가장 아름다울 뿐이다.

2박3일 일정의 제주도 문학기행에는 참 다양한 독자들이 참여했다. 문학기행 둘쨋날 우리를 안내해 준 사람은 제주도에서 신망이 두터운 한기팔 시인이었다. 성산 일출봉을 나설 때 한 시인이 해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제주도 사투리에는 몽골 말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바람이 세고 기후가 혹독한 몽골에선 말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울림소리 그러니까 이응, 리을, 미음 같은 유성음으로 끝나는 말이 발달했어요. 제주 사투리도 그렇습니다.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같은 말이 그렇지요. 그러면 '강방왕?', 이러면 무슨 뜻일까요?"

강방왕? '가서 보고 왔냐?'는 뜻이란다. 에어부산을 타고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을 오갈 땐 '한 배 탄' 일행이었지만, 부산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제각각 삶터로 돌아간 문학기행 일행에게 누군가 '강방왕?' 하고 묻는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나올 것 같다. "우리들 각자의 제주도를, 제주도의 속살을 보고 왔지요."


■ 정뜨르비행장에선 발을 살짝 드세요

'정뜨르비행장'이 훤히 보이는 도두봉에서 함께 시를 읽고 있는 나기철(앞줄 왼쪽) 시인과 김수열(오른쪽) 시인.
지금껏 가장 감격스런 바다풍경이라면 내심 울진의 바닷가 봉수대를 최고로 치고 있었다. 군 관리지역이어서 관광객이 잘 가지 않던 그 바닷가 봉우리는 '맨눈으로 보는 축복'만이 허용되는 풍경이었다. 카메라로는 도저히 그 툭 터지는 청량감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첫날 우리를 맞이해 준 제주도의 나기철 김수열 시인은 문학기행 일행을 도두봉으로 데려갔다. 도두봉은 바닷가에 바싹 붙어 솟아오른 오름이었다. 걸어 5분 남짓 걸린 정상엔 도원봉수대 자리가 있었다. 울진의 봉수대 경치가 머릿 속에서 후다닥 후퇴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고였다. 도두봉 바로 아래는 제주국제공항이 있었다. 익룡 같은 비행기들이 끝없이 달리고 또 날았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이 신비했다.

나 시인, 김 시인이 입을 모았다. "복이 많으시네요. 여기서 한라산이 훤히 보이는 날은 1년 중 3분의 1뿐입니다. 오늘은 구름이 끼었는데도 잘 보이네요." 경치에 놀란 가슴을 추스리며 시인들에게 물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가요?" 아니란다.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이란다. 데려다 줘 고마웠다.

표선면 가시리에서 서재철갤러리 자연사랑을 운영하는 서재철 사진가.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발 아래 보이는 제주국제공항의 옛 이름은 정뜨르비행장이었다. '뜨르'는 들판이란 뜻의 제주 사투리. 넓디 넓은 저 들판은 지금 공항이지만 50여년 전 들판을 다른 쓸모로 쓴 사건이 있었다. 집단학살의 장소라는 용도였다. "1948년 제주 4·3 항쟁 때 정뜨르비행장 활주로 일대는 미군정과 남한 군경이 제주 사람들을 학살하던 장소였습니다.…많게는 한꺼번에 200명도 죽었고, 몇년 전까지 땅을 파면 유골이 나왔습니다."

김수열 시인이 그 자리에서 읽어준 자신의 시 '정뜨르비행장'은 이 비행장 활주로 밑엔 수많은 원혼이 묻혀 있으니 육중한 비행기를 타고 이 공항에 내릴 땐 앉은 자리에서 발이라도 살짝 들어올리자는 내용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으로나마 억울한 원혼들을 짓누를 무게를 덜어주자는 것이다. 세상에 시인이 꼭 필요한 이유는 이런 '시인의 마음' 때문이다. 일행은 숙연해졌다.


■ 아름다움과 슬픔

마음씨 좋은 토박이가 안내해주는 여행은 복받은 여행이다. 제주기행은 첫날 나기철 김수열, 둘쨋날 한기팔 시인이 보살펴주었다. 모두 제주 시단의 이름 높은 문인들이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이 길잡이 해주면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해주는 안내는 나쁘다. 이건 밥 먹으면 배부르고 굶으면 배고픈 것처럼 명백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다. 30여 명의 문학기행 일행이 봄을 먼저 맞으려 제주도를 찾은 이번 문학기행에서 우리는 제주도 시인들의 끈끈한 제주도 사랑을 오래 느꼈다. 그 덕에 많이도 다녔다. 여기서 여정을 다 밝힐 수 없을 정도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제주항에 가시거든 나기철 시인의 시집 '뭉게구름을 뭉개고'를 들고 가시고 비자림에 가실 땐 꼭 숲 한가운데 있는 '비자림 속 모든 비자나무들의 어머니 나무', 새 천년 비자나무를 보셔요. 나 시인의 '겨울 비자림에서'를 읽으셔도 좋고요. 비자림을 들고 날 땐 주변 돌담이 제주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돌담들임을 잊지 마시고 밭 둘레 돌담은 '밭담', 무덤 둘레 돌담은 '산담'이라 한다는 걸 기억해주셔요. 절물휴양림 삼나무 숲길에 가셨다면 약수를 맛보시고, 그 곁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가거들랑 전시관 입구의 '백비'(白碑)를 지나치지 마셔요. 김수열 시인과 제주도 예술인들이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장 입구에 아무런 글자도 새기지 않은 백비를 눕혀놨답니다. 채 밝혀지지 않은 제주 4·3항쟁의 진상이 모두 밝혀지는 날 그 비석이 일어설 것이고 그때야 비로소 후손들이 백비에 그 사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백비를 눕혀놓은 것이랍니다'.

제주도에선 누워 있는 비석을 많이 보았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초등학교는 제주4·3항쟁 당시 끔찍한 학살이 벌어진 현장이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4·3항쟁을 최초로 탁월하게 그려낸 소설 '순이삼촌'을 쓴 곳도 여기다. 지난해 이 일대에 순이삼촌 문학공원 등 위령시설이 완성됐는데 이곳 조형물도 대부분 누워있었다. 당시 희생된 양민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기행지는 대부분 이렇게 아름다웠고 슬펐다. 아름다웠던 곳엔 꼭 미군정과 정부군경이 제주 양민 3만여 명을 학살한 4·3항쟁의 아픔과 일제시대의 참혹한 기억이 함께 서려 있었다.


■ 그래도 아름답고 아름다운 섬

그리고 성산 일출봉. 둘쨋날인 28일 아침 한기팔 시인과 성산 일출봉을 찾았다. 1990년대 대학가 술집 벽에는 '그리운 성산포'나 '성산 일출봉에서' 같은 시가 걸려 있었다. 술에 취하면 성산포가 어른거리던 시절이었다. 다시 찾은 성산 일출봉은 '달라진 나'를 확인하게 해줬다.

육지의 모든 산은 아무리 높아도 서서히 높아져가는 특유의 상승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산 일출봉은 다르다. 바다에서 갑자기 욱일승천해 떡 버티고 선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바닷속에서 분출한 화산지형이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왔을 땐 낭만적 문학명소였던 성산포가 이번엔 놀라운 자연미로 다가왔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서 제주도의 중심지도 바로 성산 일출봉이다.

제주도는 신비롭고 슬픈 역사의 섬이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아름다운 자연일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의 속살을 보려면 그 둘을 다 만나야 했다. 그런 점에서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서재철갤러리 자연사랑은 제주 예술인들이추천하는 명소였다. 외지 사람은 잘 모르지만 제주 사람들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못지 않게 또는 그곳보다 더 사랑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제주 문인들은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주 언론의 사진기자로 오래 일한 사진가 서재철 씨의 갤러리 자연사랑에는 제주의 역사와 자연이 고스란했다. 제주도 문학기행이 제주도 예술기행으로 넓어지는 장소였고 제주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신문학기행 참가문의 부산문화연구회 (051)441-0485 동보서적 (051)803-8000 www.문학기행.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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