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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44> 시베리아의 이발사, 그리고 율 브리너

100여년 전 러 극동 개발한 두 가문, 동·서양 만나는 연해주 상징

서유럽 사업가 얀콥스키 가족

우리나라 이민와 일제강점기 자료 남겨

동양인 피 섞인 러시아 출신 율브리너

인종차별 스킨헤드 떠올라 아이러니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2-05 20:16:31
  •  |   본지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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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나'의 율 브리너.
1998년에 러시아에서 나온 '시베리아의 이발사'라는 영화가 있다. 필자가 러시아에 있을 때 호화 캐스팅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내용이 홍보되어서 전 러시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지만 그리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지나치게 러시아적인 내용이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생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치며 폭소를 하거나 가슴을 치며 애통해 할 장면이 많이 있다. 원제인 시베리아의 이발사(Сибирский цирюлик)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시베리아의 나무를 베는 벌목기계의 이름이다. 외자에 의해 하나씩 점령당해가는 시베리아에 대한 역설적 풍자인 셈이다.

어쨌든 19세기 말 '시베리아의 이발사'들은 우랄산맥 동쪽 곳곳에 퍼져가고 있었다. 시베리아와 극동의 각지에 삼림 모피 광물 등을 찾아온 서유럽 출신의 사업가, 인텔리들이 등장했고, 막대한 부를 쌓은 부호들도 등장했다. 이들 인텔리들은 시베리아와 극동 각지의 땅을 빠르게 러시아의 영토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각 지역의 향토학을 연구하고 극동 각 지역의 근대문화를 수입하는 데도 일조했다.

지난 번에 언급한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고고학발굴은 연해주의 마르가리토프라는 학자가 발굴한 얀콥스키 패총이다. 이 발굴을 지원해준 사람은 율 브리네르(1849~1918)라는 스위스 출신의 사업가로 연해주에서 큰 돈을 번 사람이다. 율 브리네르는 바로 헐리우드에서 성격파 배우로 유명한 율 브리너(Yul Brynner)의 할아버지이다. 율 브리너하면 대머리에 눈매가 날카로운 악역전문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옛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왕과 나'에서 'et cetera, et cetera(기타 등등)'을 반복하던 왕으로, 또 황야의 7인이나 냉전시대 주로 소련의 스파이같은 역을 맡은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의 강렬한 인상은 시베리아 원주민 계통의 피를 이어받은 탓이다. 율 브리너의 가문은 스위스 출신인데, 유독 율브리너의 얼굴만이 동양적이다. 기록에 따르면 율 브리너의 아버지가 몽골계 혼혈이라고 되어 있다. 율 브리너의 할아버지가 연해주로 와서 현지의 원주민과 인연을 맺은 때문이다. 이 당시 러시아에서 혼혈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같은 자식이라도 유독 몽골로이드의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대표적인 예이다. 레닌은 각종 선전매체에서는 유럽인과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작고 다부진 체구에 몽골로이드에 가깝다. 레닌의 실제 모습은 더더욱 전형적인 몽골로이드에 가까웠다고 한다. 레닌의 외할머니가 따따르인(우랄산맥 근처의 몽골로이드 계통 민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레닌의 형은 잘 생긴 러시아계통의 사람이어서 레닌은 평소에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강했다고 한다.

율 브리너는 10월혁명이 일어나자 중국 하얼빈(당시 러시아령)으로 이주했다가 이후 파리로,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배우가 되었다. 여러나라를 걸쳐서 살아왔던 그의 이력은 이후 개성파 연기를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고, 러시아 출신이라는 이력도 소련 스파이역을 하는 데 일조했다.

율 브리너가 할아버지 이름을 딴 이유는 러시아 사람들은 자식의 이름을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따라서 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고, 브리너는 브리네르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여기 또 다른 연해주에 살았던 부자가 있다. 그는 율 브레네르와 친한 친구였던 스웨덴 출신의 광산기사인 얀콥스키이다. 우리나라가 고인돌을 만들어 쓰던 기원전 8~3세기에 연해주의 바닷가에서 풍부한 바다와 육상의 자원으로 풍족하게 살던 사람이 있었으니, 이를 얀콥스키문화라고 한다. 바로 얀콥스키의 이름을 딴 문화이다. 러시아가 10월혁명으로 내전에 휩싸이자 얀콥스키 가족은 한국으로 이민해서 살았다. 얀콥스키 집안의 두 아들은 호랑이사냥꾼으로 한국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한국에 대한 여러 기록을 남겨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대한 귀한 자료로 꼽힌다.

100여년 전 연해주를 개발한 두 거부 얀콥스키와 브리너 가문은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도 많았다. 근대에 들어서 연해주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으로 바뀌어 갔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모습을 같이 가진 율 브리너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시원한 삭발머리인데, 지금은 동양인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인 스킨헤드의 상징이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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