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미국 시카고 메이폴 마을에서 진행된 커뮤니티 아트 '메이폴 정원과 벽화 프로젝트' 현장에서 시카고 예술대 학생들이 작업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는 공공예술의 본산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원이나 공공건물 앞에 설치된 공공 조형물들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며, 1960년대 벽화운동에서 발전돼 공공예술의 의미를 확장시킨 커뮤니티 아트(공공예술)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시카고 현지에서 계속 진화하고 있는 공공예술을 만났다.


공동체 속으로 들어간 예술

미국 시카고 서쪽에 위치한 메이폴 마을. 흑인 비율이 97% 이상을 차지하는 시카고의 대표적 빈민가다. 지난달 31일 오후 이 곳에서는 시카고 예술대(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학생들이 마을의 한 2층 건물에 주민들의 이야기를 벽화로 그리는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시카고 예술대 예술(미술)교육과 드레아 호웬슈타인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인 커스틴 라르슨(현재 졸업생)과 브렌든 허드슨이 이 동네에서 '메이폴 정원과 벽화 프로젝트'라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지난해와 올해 여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라르슨과 허드슨 팀은 지난 여름방학 6주간 이 지역의 고등학생들과 벽화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했다. 워크숍을 벌여 고교생들과 벽화 디자인을 논의했고, 교회에서 학생들이 낸 디자인안을 전시해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최종작을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된 인물 사진을 벽화로 그리는 작업이 이날 처음으로 벌어졌다. 라르슨과 허드슨 팀은 2주 내 벽화 그리기를 끝내고 교회에서 파티도 열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벽화 건물 바로 앞의 빈 터에서 정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지역 청소년들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을 설치, 정원을 만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인기가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앨드리나 칼슨(55) 할머니는 "학생들이 처음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마웠다. 작업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동의한다. 벽화가 그려지는 이곳이 '희망의 벽'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술이라고 하기에 이 곳 벽화와 초상화는 전통적 미학과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12명의 작가가 참여했지만 디자인 결정권은 마을 주민들에 있었다. 허드슨은 "작가로서 '이건 내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작품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것이며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철거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들의 선택이다"고 밝혔다. 라르슨도 같은 생각이었다. "커뮤니티 아트에서 90%는 과정이고 10%가 결과물이다. 커뮤니티 아트를 진행하면서 작품과 공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뮤니티 아트를 기존 예술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교육현장으로도 확장된 커뮤니티 아트

커뮤니티 아트의 현장과 활동의 범위는 무한히 확장된다. 라르슨과 허드슨 팀처럼 마을 공동체로 들어가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학교 현장에서 교육을 통해 커뮤니티 아트가 구현되기도 한다. 주로 주제는 생태문제와 연결돼 있다.

에반스톤 호수 주변 마스터 플랜 등 시카고 시청이 주도한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해 12년간 생태도시를 만드는 작업을 해온 유명 생태건축가 카르멘 비달 알레는 최근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인 '인터 아메리칸 마그넷 스쿨'에서 생태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전교생의 50%가 저소득층이고 대부분이 남미계 학생들로 구성된 이 학교에서 비달은 5학년 학생들과 함께 '빗물 정원'을 만들었다.

"브라질의 생태도시 구리치바를 보고 와서 시작한 작업으로, 빗물 정원을 만들려면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빗물은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을 활용해 직접 계산하게 했다. 인근 공사장에서 나오는 폐자재로 정원을 만들고 어떤 식물을 심을지 등을 아이들과 의논해서 결정했다. 특히 (남미) 아즈텍 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곡물 옥수수 호박 콩 등을 심었다. 봄이 되면 아이들이 직접 나가서 기르고, 겨울에는 종자를 보관하는 방법까지 알게 해 전 과정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카고의 대표적 생태 빌딩인 CCGT(Chicago Center for Green Technology)는 학생들의 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삶의 질 개선을 시도하는 모든 '행동주의적 예술'이 공공예술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회화 조각 등 결과물을 보고 예술이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은 시카고에서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 드레아 호웬슈타인 교수 인터뷰

- '행동하는 문화'에서 시민을 품는 비소비적 예술로

시카고 예술대 드레아 호웬슈타인(사진) 예술(미술)교육과 교수는 시카고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아트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현재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뮤니티 아트 교육에 열중하고 있는 그로부터 시카고 공공예술의 현재와 과제를 들었다. 호웬슈타인 교수는 시카고에서 공공예술이 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 역사부터 설명했다.

"시카고는 유럽과 남미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특히 많은 도시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다문화 도시다. 점차 부를 축적하면서 시를 아름답게 꾸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초기 공공예술은 도시계획과 함께 진행돼 왔다. 그러나 여전히 계급과 인종 대립은 있어 왔고, 공공예술이 (갈등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공공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설명하면서 그는 1967년 흑인 윌리엄 워커의 '존중의 벽' 사례를 꼽았다. 시민권과 인종 및 남녀평등 등 문제를 다룬 벽화로 2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 흑인 리더들을 그려넣는 작업을 통해 흑인 정체성을 고양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흑인중심의 벽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는 1993년 메리 제인 제이콥의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 등 공공예술에서의 전 세계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시카고 공공예술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시 지원기관인 공공예술위원회가 없어지는 등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안공간이 활성화되고 작품 활동도 미술관이나 문화센터를 떠나 비소비적 예술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작가가 거름을 만들어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짐을 싣는 자전거를 제작하는 등 소비적 문화와 테크놀로지를 거부하고 슬로푸드 운동과 결합하는 형식의 예술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예술을 대하는 작가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조언을 던졌다. "(커뮤니티 아트에서) 작가와 대중이 원하는 것 간의 충돌 및 단절이 계속 있어 왔다. 작가는 자기 생각을 담으려 애쓰고, 이는 대중의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커뮤니티 아트에서 미학적 가치보다는 커뮤니티와 작가간 대화와 상호작용이 더 중요하다. 미학적 가치를 따지는 결과가 과정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들은 내가 마을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변했다는 말을 한다. 이 것이 가장 핵심이다."

호웬슈타인 교수는 페트리샤 필립스라는 큐레이터의 표현을 빌려 이 시대 공공예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공공예술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영감을 주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