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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8> 잃어버린 사료들

'환단고기' 속 치우천왕이 동북공정 허구 벗긴다면…

황제와 치우 전쟁 中사서보다 설득력

'오성취루' 현상도 현대과학으로 증명

주류 사학계는 조작된 책이라지만

무작정 배척 말고 취할 것은 취하는 열린자세 절실

  • 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08-10-07 22:30:25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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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시대인 기원전 4세기께에 제작된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국보 141호)이다. 지름 21㎝가 안 되는 원내에 깊이 0.7㎜, 폭 0.22㎜로 구성된 1만3300개의 원과 직선을 새겨 넣으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했을까. 이 청동 잔무늬거울은 "한국이 중국보다 문명 수준이 낮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구한말의 민족사학자 단재 신채호(申采浩)는 그 누구보다 역사의 단절을 애통해했다. "…우리에겐 어느 민족보다 볼만한 역사서가 많았다. 북부여의 '진서(晋書)', 고구려 '유기' 100권, 백제 고흥박사가 쓴 '서기'와 고구려 이문진 박사의 '신집(新集)', 신라 거칠부의 '신라 고사'…. 그러나 오늘날 그 한마디 말이나 글자도 남아 있는 것이 없으니 이는 천하만국에 없는 일이다.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릴 것이다."('조선상고사' 총론 중)

5000년 한민족사에서 가장 처참한 부분이 바로 사료 멸실일 테다. 우리의 많은 사료들은 전란 와중에 불에 탔거나, 조선 초기 임금들의 수서령(收書令)에 사라졌다. 가까스로 남은 것마저 일제 강점기에 대량 멸실됐다. 우리 역사가 뿌리없는 부초처럼 헤매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원로 사학자인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지난 2일 부산에서 열린 '단군조선을 찾는다' 세미나에서 "만일 주요한 사서가 남아 있었더라면 멀리 중국까지 가서 땅을 파고 발굴하지 않아도 단군조선의 역사는 그냥 드러났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5사'의 그늘과 빛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상고사 관련 사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가 고작이다. 이들 역사서는 고조선과 단군을 매개로 한국 민족의 서사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고조선 후예 의식도 이때 생겨난다. 그러나 이 사서들은 12~13세기에 정리된데다 기록의 형식이 느슨해 실체적 고조선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중국은 사료가 풍부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부터 명나라 '명사(明史)'에 이르기까지 정사 기록만 25사(二十五史)다. 전한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원전 90년에 완성한 '사기'는 전설상의 삼황오제로부터 한무제까지 3000년 간의 시공을 넘나들면서 한족(漢族) 이데올로기(황제의 혈통, 농경 문명)를 정립한다.

이와 비교되는 우리의 현존 최고 사서는 '삼국사기'다. 편찬 연대는 1145년. 그러나 대상이 삼국이어서 고조선까지 눈길이 미치지 못한다. 130여 년이 더 지나 일연스님이 '삼국 그 나머지의 일'(삼국유사)을 찬술하면서 '고조선사'는 비로소 얼굴을 내민다. 그것도 신화라는 장치에 실려서다. 그후 1287년 역사시 형태의 '제왕운기'가 나왔으나 고조선의 비밀을 풀어주진 못하고 있다.


위서 논란에 묻힌 사료들

'우리에게도 웅혼한 상고 사료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리?" 하겠지만, 그런 책들이 있긴 있다. '단기고사(壇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환단고기(桓檀古記)' 등 근대에 나타난 이른바 재야 사료들이다. 하지만 이들 사료는 안타깝게도 첨예한 위서(僞書) 논란에 휩싸여 있다.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갖고 비슷하게 만든 가짜 책이 아니냐는 거다.

이 책들은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주류 역사학계는 위서라고 규정, 사료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재야 학계는 상고사의 진심을 전하는 '바이블' 같은 존재로 받든다. 위서로 보는 쪽은 ▷출처가 불명확하고 ▷근대적 용어들이 나타나며 ▷발견 및 공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 등을 문제로 꼽는다.

위서라는 견해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려 한 대표적 학자는 경희대 조인성(사학과) 교수다. 그가 쓴 것이 '재야 사서 위서론'(1999년)이다. 이메일로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답이 왔다. "당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규원사화'의 경우도 1920년대 전후의 사학적 자료는 될 수 있으나 고조선사를 이해하는 사료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고조선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단국대 윤내현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냉정한 중립성을 견지한다(그 역시 '환단고기'를 사료로 직접 인용하진 않는다). 시인 김지하 씨는 '규원사화'는 사서로서 근거가 있다고 보면서도, '단기고사'와 '환단고기'는 위서라는 입장이다. 북한 학계의 견해도 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위서'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가 싶던 1990년대 중반, 매우 주목되는 과학적 검증 작업이 이뤄졌다. '환단고기'에는 13대 단군 홀달 50년(기원전 1733년)에 오성취루(五星聚婁: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등 5개 별이 한 자리에 모이는 천문현상)가 있었다고 나오는데, 이를 고등과학원 박창범(전 서울대) 교수팀이 슈퍼 컴퓨터로 분석해 입증해낸 것이다. 자연현상을 아무렇게나 조작해서 써 넣었을 것이란 가설은 확률상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면 '환단고기'가 마냥 위서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환단고기' 등에 실려 전하는 가림토 문자. 한글의 원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놀랍고 충격적인 기록들

'환단고기'는 작자와 저작 연대가 다른 네 개의 사서, 즉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檀君世記), 북부여기(北夫餘記), 태백일사(太白一史)를 하나로 묶어 이름한 책이다. 1911년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했다고 하나,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9년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의해서다. 편찬 및 공개 과정이 석연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규원사화'는 조선 숙종 2년(1675년)에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었다는 역사책으로, 저작 연대가 비교적 선명하다.

이 책들이 전하는 내용은 놀랍고 충격적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5000년이 아니라 1만년에 달하고, 4000년 전에 이미 문자를 사용했으며, 우리 조상인 치우천왕이 중국의 시조 황제와 싸워 이겼다는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게다가 단군을 호칭으로 보고 47명의 단군 실명까지 열거한다. 한국사의 기존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내용이다.

여기에 등장한 문자 또한 관심거리다. '환단고기' 같은 사서가 존재하려면 먼저 문자가 있어서 기록이 가능해야 하므로 중요한 쟁점일 수 있다. 전해지는 문자는 크게 부도문(符圖文)과 가림토(加臨土 또는 加臨多)다. "한민족은 고유문자로 부도문을 가졌고, 긍지가 대단해서 천부(天符), 천부왕인, 천부각경 등으로 불렀다"고 책은 전한다. 가림토는 정음 38자로 세로선, 가로선, 점 하나, 점 두 개로 묘사돼 있다.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는 녹도문(鹿圖文)도 나온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태백일사'에는 '환웅이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천부경을 녹도문으로 적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책 속에는 은문(갑골문·한자의 기원)이 부도문에서 발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들 문자를 훈민정음과 연결시키는 연구자도 있다. 한글의 원시적 형태가 아니냐는 것이다. 한글은 1443년 조선 세종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으니 '환단고기' 등에 전하는 다양한 문자가 기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학계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환단고기' 새로 읽기

치고받기식의 논쟁이 한풀 꺾인 요즘, 이들 사서에 대한 연구는 한층 세분화되어 진행되는 양상이다. '위서다' '아니다'는 차원이 아니라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 분석하는 식이다. 지난 7월 출간된 '고조선을 딛고서-포스트 고조선으로'(박병섭 지음·창과거울)는 '환단고기'에 나타난 상고사의 쟁점을 비교·분석하고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사를 투시한다. 다시 말해 역사 재해석의 관점에서 '환단고기'가 숨긴 복선장치를 해명한다. 이 과정에서 잃어버린 사서라는 '유기' 100권을 복원,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성과다.

철학박사로서 단군학회 이사인 저자는 "'환(한)단고기'는 한족(漢族)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혈통과 언어를 초월한 '한단 민족'이란 새로운 민족관과 다문화주의를 제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깨는 논리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파헤친 첫 번째 쟁점은, 중국의 공동시조로 묘사되는 황제(皇帝·일명 헌원)와 치우(蚩尤)간 전쟁의 전말. 이 전쟁은 농경 문명과 유목 문명의 대립 상황으로 해석되는데 승자가 엇갈린다. 중국 사서인 '사기'와 '산해경'은 황제의 승리로 기록했지만, '환단고기'에는 치우의 승리로 나타난다.

판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보면, 환웅과 풍백(風伯)·운사(雲師)·우사(雨師가) 나온다. 열쇠는 운사가 쥐고 있다. '산해경'에는 치우가 풍백과 우사를 부린다고 돼 있고, '춘추좌전'에 따르면 치우와 싸우는 황제가 운사로 등장한다. 전후 상황으로 보면 황제 헌원이 곧 운사가 된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는 '치우는 자오지 환웅의 별명이고 황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이때 죽은 자는 치우의 형제 중 하나인 치우비였다'고 적고 있다. 결국 중국 사서들이 치우와 황제의 신분을 몰랐거나 후에 조작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적 논리를 '환단고기'가 벗기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다각적 연구 계속돼야

'환단고기'등 재야 사서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취하고 버릴 부분이 있음에도,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로 보았다는 말이다. 한 두 가지 사서를 참고해서 조작할 수는 있겠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여러 사서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를 창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중심 내용이 맞다면 후세의 부분 가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잘못된 기록이 많다고 하지만, 오성취루 현상의 증명처럼 사실로 확인된 부분은 어떻게 볼 것인지, 또 믿을만한 사실이 있음에도 사소한 부분의 오류가 나타나면 위서로 봐야 하는지, 나아가 바람직한 위서 연구는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 따위에 대한 학계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재야 연구자들이 경계해야 할 연구 태도는 위서든 아니든 '영광의 민족사'를 다룬 것이므로 일단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위서에서 찾아낸 민족사나 민족 정신은 도리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재야 사서를 무조건 백안시해서는 안된다. 우리 역사의 빈 공간을 채운다는 차원에서 의문을 캐고 과학적 진실성을 좇는 자세가 중요하다. 따라서 진위 논쟁은 더욱 장려, 확산돼야 한다. 귀를 열고 상대의 주장을 듣고 비판하는 가운데 새로운 검증 기준이 마련된다면, 멸실된 사료의 한 부분이 보충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상고사는 지금 어두운 터널을 밝힐 '불빛' 하나가 아쉽다.


충남 천안시 목천읍 흑성산 자락에 조성된 한민족역사문화공원. 높이 15m의 '국조단군왕검입상'이 세워져 있다.
■ 단군의 흔적 '한민족 역사공원'

- 나라도 외면한 단군의 개천정신

"한국인들은 왜 개천절과 단군(檀君)를 챙기지 않는가요?" 외국인들이 가끔씩 품는 의문이라고 한다. 민족·자주의식이 강한 것으로 소문 난 한국인들이 개천절을 '노는 날' 정도로 여기는 태도에도 놀란다고 한다.

'나라가 열린 날' 행사를 형편없이 치르는 나라. 그러면서도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한다면 이건 분명 문제다. 세계 선진국들이 국경일을 경축일답게 치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단군(檀君)이 홀대받는 것은 이제 큰 얘깃거리도 안 된다. 교과서와 사회 일반에서 국조(國祖)라고 하면서도, 국조로 떠받들지 않는 이상한 풍토는 국가나 교육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탓이다.

국내에는 단군기념관이나 단군신화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다. 국조 단군에 대한 제사도 대부분 민간에서 지낸다. 민간단체들이 지자체의 조용한 지원 아래 서울 사직공원의 단군성전에서 대제를 지내거나 태백산 천제단과 강원도 마니산의 참성단 등에서 천제를 올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단군 홀대 풍토 속에서 사단법인 국학원(설립자 이승헌·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이 지난 3일 단군의 개천정신을 기리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이하 한민족공원)을 국내 최초로 개장해 화제다. 공원이 들어선 곳은 독립기념관이 있는 충남 천안시 목천읍 흑성산 자락. 부지는 약 20만㎡(6만 여평)로 넓지 않지만 ▷개국 ▷역사 위인 ▷광복 ▷선도 등 테마별 마당을 만든데다, 인류 평화의 기원을 담아 예수, 부처 등 세계 5대 성인상도 세워놓았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공원의 상단 중심부에 세워진 '국조단군왕검입상'. 높이 15m(받침과 기단을 합하면 33m)로 국내 최대 크기라고 한다. 흑성산을 배경으로 한 손에 지구를 들고 서 있는 단군상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국학원측은 "단군의 인간사랑·지구사랑의 정신인 홍익철학을 21세기에 새롭게 되살린다는 염원을 입상에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민족공원은 정부의 지원없이 전액 민간 모금으로 건립됐다. 이번에 완료된 1단계는 25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으며, 향후 2012년까지 2, 3단계로 나눠 교육관, 전시관, 국궁장 등을 세우게 된다. 국가에서 맡아야 할 역사공원사업을 민간이 추진한 것에 대해 국학원측은 "이것이 숨길 수 없는 단군 인식의 현주소"라면서 "역사 의식 고취를 위해 추진된 사업이므로 조성이 완료되면 국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취재 지원 = (사)부산국학원·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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