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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24> 연해주에 윤관의 9성이 남아 있었을까

한-러 접경 우스리스크성이 '9성' 중 하나일 수도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09-04 20:35:1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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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북방 변경을 괴롭혔던 여진족의 유물들.
필자는 유학시절에 동양 고고학의 대가인 V.E. 라리체프(Larichev) 선생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그)대학의 역사학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선생은 중국은 물론 티베트, 몽골, 한국의 고고학·고대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이었다. 언젠가 연해주 지역에 대해 라리체프 선생과 토론을 하던 중 한마디가 귀에 들어왔다.

"윤관 9성중 하나가 연해주 우스리스크시에 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학자도 있는데, 한국은 관심이 있는가?"

그때까지 필자는 전공도 선사시대 고고학인 탓에 고려시대 북방사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 채 막연하게 함흥근처에 윤관 9성이 있었다고만 생각했다. 러시아의 한국학자인 미하일 보로비요프는 현재의 우스리스크시 근처에 있는 유즈노-우스리스크 성과 끄라스노야로프스꼬예성을 윤관 9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했던 공험진(公險鎭)으로 보았다. 물론, 실제 발굴을 한 것이 아니고 역사기록에 근거하여 추정했을 뿐이었다.

한국학자들은 대체로 윤관 9성이 함흥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고학적 문화와 역사기록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 다소 애매모호한 지명의 고증에 의거한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한-러 국경에 접한 지역을 언급하면서 고려 대장(大將) 윤관(尹瓘)이 세운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이 있다고 했다. 또 선춘현(先春峴) 에서 수빈강(愁濱江)(현재의 수이푼하 또는 라즈돌나야 강)을 건너면 옛 성터가 있고, 더 북쪽에 공험진이 있다고 되어 있다.

그 외에도 두만강 건너편에 수많은 성과 마을들을 언급하는데, 남연해주 일대에 산재한 발해-여진계통의 성을 말하는 것 같다. 수빈강 건너편의 옛 성터는 바로 우스리스크시의 성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에 연해주 남부 지역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려시대에 연해주 남부와 만주 일대에는 발해가 망한 이후에 번성한 거란과 여진문화가 넓게 분포했다. 이들 민족은 고구려·발해로부터 물려받은 축성법, 무기제작기술 등 강력한 군사력과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진과 거란의 유물들은 한눈에 보아도 쉽게 구분이 될 정도로 뚜렷하게 달라 보인다. 그런데 함흥지역 일대에서는 일제침략기 자료건 북한자료이건 간에 여진의 성이나 유물들은 전혀 볼 수가 없다.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던 여진족인지라 그들이 엄청난 세력을 이루고, 윤관이 토벌한 자리라면 분명히 여진족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든지 있어야할 것이다. 그러니 세종실록의 기록을 참고할 때 윤관 9성이 함흥보다 북쪽인 두만강 건너편까지도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그렇다면 연해주에 수백 개가 발견된 여진시기의 유적들을 샅샅이 조사한다면 정말 윤관 9성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을까? 윤관의 9성은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만 있었으니 실제 고고학적 발굴로 나올 가능성이 그리 많지는 않아보인다. 하지만 고려와 치열하게 투쟁한 여진족들의 유적을 조사한다면 고려와의 관계를 증명할 구체적인 고고학적 유물도 나올 것이니 고려시대 북방사를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여진시대 고고학은 러시아 연해주의 고고학에서도 가장 발달된 분야 중 하나이다. 한국사의 연구에 너무나도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학자들은 오로지 발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 유학시절에 현재의 국경을 초월해서 역사와 고고학적인 성과를 다양하게 연구하는 라리체프 선생을 비롯한 여러 중국 고고학자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라리체프 선생님은 2001년과 2006년에 만주어로 기록된 금사(金史)와 요사(遼史)를 노어로 번역한 원고를 출판했고, 나는 그 서문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같이 실었다. 처음에는 유학시절의 학은을 돕자는 뜻에서 별 생각없이 맡았지만 중국어, 여진어 지명이 노어로 음차된 표기를 한국어로 바꾸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결국 번역이 그렇게 잘 된것 같지는 않아 죄송하게 되었다. 1970대 중반의 라리체프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정력적인 연구활동을 지속하시고 있다니 멀리서나마 건필을 기원한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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