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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4> 바라바시의 철기 제작장

중국보다 몇 백년 앞서 쇠도끼 사용했던 바라바시 사람들

한·러 국경지대서 기원전 5~6세기 철기 발견

흑연 섞어 만든 수준높은 제련기술 입증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8-06-26 20:31:42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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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바라바시 유적에서 필자(왼쪽)과 러시아 발굴단원 싸샤가 발굴하고 있다.
2007년 여름 부경대 사학과의 한·러 국경조사팀은 러시아 연해주 한·러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라바시라는 지역의 조그만 주거지 유적 위에서 고민 중이었다. 강가의 언덕 위에서 약 9개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시간과 인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과연 어느 주거지를 선정할 것인가? 주변환경, 인력, 기존 연구 등을 검토해서 결정해야하겠지만, 실제로는 고고학자들은 '감'으로 선정한다. 예측 불가능한 땅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라 그런지 학자들답지 않게 징크스나 직감을 많이 믿는다. 러시아측 발굴단장 끌류예프씨가 "저 주거지가 맛있어 보이는군"하며 한 주거지를 가리켰다. 난 솔직히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의 육감을 믿었고, 그의 육감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발굴을 하니 예상대로 얀꼽스끼문화(기원전 9~3세기)의 전형적인 주거지였다. 토기편 돌칼 어망추 등 일반인들은 봐도 모르겠지만, 고고학자들로서는 아주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처음에는 좋은 유물이 나와 모든 발굴단원이 옹기종기 모여서 신기해했지만 그런 유물들이 많아지니 정말 귀한 물건이 나와도 귀찮아하는 기현상도 생겼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다. 석기는 수백 점 나오는데 정작 돌도끼는 한 점도 없는 것이다. 발굴이 종반으로 넘어갈 때 그 원인이 밝혀졌다. 바라바시의 사람들, 철도끼를 이미 쓰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철기 편이 1점 나왔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었다. 설마 기원전 5~6세기대에 철기라니. 하루가 지난 후 주거지 바닥을 파내려가던, 부산대를 졸업하고 극동과학원에 유학 중인 김재윤 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철도끼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는 동안에 필자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발굴을 잘못 했을 리는 절대 없다. 그렇다면 책에 나온 것 처럼 중국보다 이른 시기의 철기가 정말 극동지역에서 존재했다는 것인가.

그날 밤 캠프는 감춰두었던 보드카에 코냑을 펼쳐놓고 파티를 벌였다. 오가는 술잔 속에서도 내 머릿속은 앞으로 유적을 발굴하고 학계에 보고해야하는 생각에 복잡했지만 말이다. 결국 필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필자의 제자 고영민에게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가가린'이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었다. 이유인즉, 술 먹다가 컴컴한 밤에 그는 안경을 강에 빠뜨렸고, 급하게 이를 건지러 강물로 뛰어가니, 러시아 동료들은 제대로 말도 안 통하는 상태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를 뜯어말렸다고 한다. 그 때 고영민이 강가로 뛰어가는 모습이 로켓 같았다고 해서 가가린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단다. 결국 안경은 아침에 찾았고, 고영민은 이소연 씨보다도 먼저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이후 철기는 7점이 더 발견되어서 모두 8점이 확인되었다. 이전에 얀꼽스끼문화에서 발견된 철기가 20점인데, 단 1개의 주거지에서 8점이나 나온 것은 처음이다. 또, 철기가 발견된 지점은 주거지 내에서도 불을 많이 먹은 모룻돌 같은 것도 발견되어서 철기를 제작했던 장소로 추정됐다.

바라바시에서 발견된 철기를 한국으로 가져와서 금속기술연구소에 분석을 맡겼다. 분석결과 회주철 계통으로 밝혀졌다. 회주철은 제련한 철에 흑연을 넣은 것으로 중국은 기원전 1세기대가 되어서야 발견된다. 그런데 바라바시 유적은 연대가 유물로 보나 절대연대로 보나 기원전 5세기이다. 이 극동의 변방에서 중국보다 몇 백 년 앞서서 고도의 제철기술이 나왔다는 소리인가? 앞으로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연해주에서는 1950년대 말에 발굴된 뻬스찬느이 패총의 얀꼽스끼문화 철도끼도 회주철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가 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쨌든 바라바시의 현장에서 철도끼가 발견되는 순간 그 긴장을 참지 못하고 2년간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게 되었다. 올해 발굴에서 또 철기가 나오면 그 시점으로 다시 끊어볼 생각이다. 표범이 출몰하는 산속에서 엄청난 모기와 싸우며 텐트치고 야영하며 잘 견뎌준 우리 발굴단원들 덕분에 모든 일이 잘 끝났다. 비라도 오면 습기 찬 텐트 안에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가도 발굴시즌만 되면 현장이 그리워 몸이 근질대니 난 어쩔 수 없는 고고학자인가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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