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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찾아서 <26> 윤재웅 한국무예촌 촌장

"만주벌판 달리던 기마민족 혼을 되살린다"

'무예도보통지'에 근거해 잊힌 마상 6기 복원에 노력

"한국인 심장에는 말발굽 소리가 같이 뛰고 있을 것"

  • 국제신문
  •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8-04-17 16:31:1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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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말 구루마'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씩 모습을 감춘 뒤 말이란 동물은 잊고 산 지 오래였다. 필요성이 없는 만큼 그리워할 리도 만무. 가끔씩 텔레비전을 통해 승마경기나 경마를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 튼실한 말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중무장한 무사를 태운 채 거친 광야를 질주할 수 있는 말이.

마상갑주(馬上甲胄)를 입은 청년이 말 한 필을 끌고 나왔다. 거세된 일곱 살짜리 검은색 국산마. 몸에는 마갑(馬甲) 을 둘렀다. 모습이 당당하다. 그리고 잘생겼다. 윤기 나는 털이 자태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아마 만주대륙을 질주하던 고구려의 말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청년이 말에 올랐다. 편곤(鞭棍·일종의 도리깨)을 들었다. 숨을 한 번 돌린 뒤 박차를 가하자 말은 쏜살같이 뛰어 나간다. 두어 바퀴를 돌아 어느 정도 말과 사람이 호흡을 맞췄을까. 청년이 편곤을 허공에다 몇 번 휘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섬광이 인다. 순간 세워두웠던 볏짚이 무 잘리듯 나가떨어진다. 이번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칼. 한 번의 움직임으로 베기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대나무를 단 번에 두 동강 낸다. 활은 또 어떤가. 말 위에서 잽싸게 화살을 메기는가 했는데 어느새 과녁에 꽂힌 살은 부르르 몸을 떤다. 길이가 긴 창 역시 한치의 빗나감도 없이 과녁을 궤뚫는다.

가쁜 숨을 삼키며 말에서 내리는 청년. 뒤로 길게 묶은 머리가 이채로운 그는 올해 서른 다섯. 한국무예촌을 이끄는 윤재웅 촌장이다.


   
윤재웅 한국무예촌 촌장이 마상무예를 시연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마상 활쏘기 모습.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민족의 얼을 찾는다

아는 사람은 익히 알듯이 말을 다룬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일반인이라면 혼자서 말 위에 올라타기 조차 힘들다. 그런 말 위에 올라 병장기를 휘두른다는 것은 엄청난 수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게 무술. 그런데 왜 하필 이 청년은 마상무예를 택했을까. 솔직히 그냥 좋아서 하는 정도가 아닐까라고 예상했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우리 민족은 기마민족 아닙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 심장이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발굽소리가 가슴에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기마민족의 후예임에도 주위에서 말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죠. 최소한 말에 올라 탈 줄은 알아야 기마민족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윤 촌장은 마상무예에 대한 예찬을 늘어 놓는다. 마상갑주 안에 입는 흰옷은 백의민족을 가리키는 것이고 활은 동의민족을 일컫는 것이요, 말은 곧 기마민족을 상징하니 마상무예야말로 세 가지 우리민족의 정신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어 "잃어버린 기마민족의 혼을 살린다는 건 참 매력있는 일"이라며 "누구나 말을 탈 수 있다면 차라리 소를 타겠다"고 마상무예에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윤 촌장도 처음에는 지상무술을 수련했다. 어릴 때 몸이 왜소해 합기도에 입문한 뒤 프로킥복싱과 해동검도 등을 거쳤다. 그러다가 자신의 말마따나 '가슴에서 뛰는 말발굽 소리' 때문에 마상무예에 빠져 들게 된다.

근데 말이 좋아 마상무예지 칼과 말을 사용하던 시대가 지나면서 이 무술은 존재조차 없어져 버렸다. 고작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기록 몇 가지뿐. 조선 정조 때 편찬된 이 책에는 당시의 군사들이 익히던 열여덟 가지의 지상무예와 여섯 가지의 마상무예가 그림과 함께 남아 있다. 이를 합해 '무예 24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기록은 남아 있다해도 실제로 이를 전수받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명맥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 우리나라 대부분의 마상무예가가 그렇듯 윤 촌장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이를 근거로 복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서너 군데의 마상무예 연구단체에서 다수가 수련을 하고 있다. 문제는 옛 문서에 의존하다 보니 완전한 복원에 한계가 있다는 것. 무예도보통지만 해도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동작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힘들다. 한문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고유의 뜻이 있는 반면 번역이 되면 그걸 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무술동작이야 알 수 있다지만 설명이 되지 않은 승마기술 등은 온전히 복원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몸으로 익히고 찾아내는 수밖에 없지요. 그러려면 문헌을 토대로 과연 그때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말을 탔고 무슨 병장기를 사용했을까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어려움은 또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누가 마상무예의 정통을 잇고 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해서 마상무예 연구가들은 앞으로 이런 단체 간의 지속적인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그래야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되도록 원조에 가까운 마상무예를 복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문헌부족으로 단정을 하지는 못하지만 윤 촌장은 옛날의 전쟁에서는 기마병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병장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칼 수련을 해본 결과 갑주로 무장한 적 기마병을 단칼에 제압하기란 힘들다는 것. 요즘의 사극드라마에서 보듯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적의 목을 단번에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대신 지금도 흔히 쓰이는 '쳐 죽인다'는 말처럼 칼이나 긴 창 등으로 적을 낙마시킨 뒤 제압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말과 호흡을 같이해야 한다

말에 올라탈 때 윤 촌장이 입는 마상갑주는 옛날 선조 기마병들이 입었던 무사복. 역시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해 고증을 거쳐 직접 만든 것이다. 비늘 하나까지 일일이 바느질을 했다. 여기에다 활집인 궁대, 화살을 담은 시복, 병장기를 지참하면 그 무게만 수십 ㎏에 이른다. 당연히 말도 훈련이 되지 않으면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한다.

국궁을 들어봤다. 이까짓 것 하는 생각에 기자가 활시위를 힘껏 뒤로 당겼다. 그런데 웬걸 활시위는 반도 따라오지 않는다. 검도 마찬가지. 한 손으로 제대로 들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 이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또 활을 쏠 때는 달리는 말 위에서 두 손을 다 놓아야 한다. 그건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때는 엉덩이 부분을 약간 들어주면서 중심을 잡는데 아무래도 말에 붙어있을 수 있는 힘이 가장 필요하죠. 매일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이건 불가능합니다."

윤 촌장은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마상6기를 모두 구사한다. 마상기창(騎槍), 마상쌍검(雙劍), 마상편곤(鞭棍), 마상월도(月刀), 마상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다. 활을 쏘는 마상기사(騎射)는 기마병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이어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마상6기는 지상18기를 완벽하게 소화해야만 할 수 있는 고급무술이다.

마상무예의 핵심은 얼마나 말을 잘 타느냐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야 한다.

"말은 아주 예민한 짐승입니다. 최대한 진정시키면서 정확한 목표지점에 갈 수 있도록 반복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상무예는 병장기만 잘 다룬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죠. 말과 사람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인마일체라고나 할까요 ".

윤 촌장이 머물고 있는 경남 밀양의 한국무예촌에는 모두 아홉 필의 말이 있다. 이 가운데 마상무예를 할 수 있는 말은 여섯 필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도 겁이 없어야 마상무예를 할 수 있다. 윤 촌장은 말을 고를 때 말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본다. 십중팔구는 뒷걸음질을 한다. 하지만 가끔 당돌하게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말이 있다. 이러면 마상무예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말 관리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매일 세심한 보살핌은 물론이고 2개월에 한 번씩은 편자도 갈아줘야 한다. 혹시 말이 피곤해 할까봐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나누기도 한다.

말에 아무리 익숙해졌다지만 혹시 낙마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종종 뉴스에서 보듯 승마 및 경마선수의 질주 중 낙마는 대개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지기 일쑤.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낙마를 걱정한다면 마상무예는 하지 못합니다".

마상무예에 대한 애착이 큰 윤 촌장은 그래서 현재의 무술 풍토가 마땅찮다. 전통 마상무예는 거의 명맥이 끊어져 버린 판에 우리사회가 유럽식 승마를 말에 관한 최고의 기술로 평가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무예촌을 일반인에게 개방한 것도 이런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꿔보자는 이유에서다. 이곳은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승마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칼이나 활, 표창을 쓰는 방법을 포함한 마상무예도 가르친다. 한편으로 윤 촌장은 30여 명으로 꾸려진 시범단으로 전국의 여러 행사에서 마상무예 홍보와 보급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와 같이 정부 차원에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방송매체의 사극드라마 전쟁모습 촬영 등에도 출연요청을 많이 받는다는 윤 촌장이 갑자기 우스갯소리를 툭 던진다.

"말을 잘 타면 이때 무조건 장군으로 출연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제 아무리 잘생겨도 말 뒤에서 걷는 졸병밖에 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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