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괘의 기호

곤(困)은 형(亨)하니 정(貞)하여 대인(大人)이라서 길(吉)하고 무구(无咎)하나 유언(有言)이면 불신(不信)하리라(곤은 형통하다. 바르고 곧아 대인이라서 길하고, 허물이 없으나 말이 있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初六·초육 둔곤우주목(臀困于株木)이라. 입우유곡(入于幽谷)하여 삼세(三歲)라도 부적(不覿)이로다(볼기가 그루터기 나무에 곤함이다. 어두운 골짜기에 들어가서 세 해라도 보지 못한다).

九二·구이 곤우주식(困于酒食)이나 주불(朱祓)이 방래(方來)하리니 리용향사(利用享祀)니 정(征)이면 흉(凶)하여 무구(无咎)니라(술·밥에 곤하나 주불이 바야흐로 오리니 이로써 제사를 올림이 이롭고 가면 흉하여 허물할 데가 없다).

六三·육삼 곤우석(困于石)하며 거우질려(據于蒺藜)라 입우기궁(入于其宮)이라도 불견기처(不見其妻)니 흉(凶)하도다(돌에 곤하며 납가새 덤불에 의지함이다.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

九四·구사 래서서(來徐徐)는 곤우금거(困于金車)일세니 린(吝)하나 유종(有終)이리라(오는 것이 더딘 것은 쇠수레에 곤하기 때문이니 부끄러움이 있더라도 마침은 있을 것이다).

九五·구오 의월(劓刖)이니 곤우적불(困于赤祓)하나 내서유열(乃徐有說, 여기서 說=悅)하리니 리용제사(利用祭祀)니라(코 베이고 발꿈치 베이니 적불에 곤하나 이에 천천히 기쁨이 있을 것이니 이로써 제사를 올림이 이롭다).

上六·상육 곤우갈류(困于葛)와 우얼올(于)이니 왈동회(曰動悔)라하여 유회(有悔)면 정(征)하여 길(吉)하리라(칡덩굴과 위태로움에 곤함이니, 움직이면 곧 뉘우치게 되더라 하면서 뉘우침을 두면 가서 길할 것이다).

곤괘(困卦)는 마흔일곱 번째 괘로서 위는 못, 아래는 물이다(澤水困). '곤(困)'은 '막혀 고달픔'이다. 마치 길을 가다 그 길은 막히고 힘은 다한 것과 같다. 못 아래 물이 있으니 곧 못에 생명의 원천인 물이 말라 주위 생물이 곤궁하게 된 것이다. 앞의 승괘(升卦)는 승승장구 발전하여 올라가는 것인데, 만물은 극에 이르면 돌아가게 됨(物極必反)이 세상의 이치여서 발전이 극에 이르러 다시 몰락함이 이 곤괘이다. 승괘의 발전상황에서는 항상 토대의 취약함을 무시하지 않는지 공명정대하지 못한 일처리는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 곤괘와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곤괘는 생명에 필요한 물이 부족함이다. 경제운용에 있어서 그 물은 금융자본인 돈이다. 경제에 있어서 곤괘는 그 돈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결제수단으로서의 외환부족이다. 우리는 국민적 분투노력으로 내전의 잿더미 속에서 단기간에 큰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무리가 있었고 그로 인한 국가 구성원 간의 갈등이 있었다. 즉 승괘(升卦)에서 주의하는 바를 제대로 경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못에 물이 부족한 것처럼 외화가 부족한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환란 즉,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이것이다. 그런데도 곤괘의 괘사에 '곤(困)'을 '형통함(亨)'으로 묘사하는 역설이 있다. 이것은 위기 속에 그에 대한 극복의지가 있으면 전화위복으로 형통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다만 실천 없이 말한 앞세우는 것을 경계한다(有言不信).

초육은 외환위기로 고통을 겪으면서 벗어나지 못함이 세 해(三歲)에 이름이다(1997년 12월3일~ 2000년 12월일). 구이는 먹고 살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困于酒食) 국민들이 지도층이 솔선수범할 것(朱祓方來)을 바라며 제사 올리듯 성실함으로 난관을 극복하려 함이다. 육삼은 IMF 시대의 어려움이 단단한 돌이나 납가새 덤불에 고통받듯 함이다(困于石,據于蒺藜). 밖에서 곤란을 겪어서 집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이다(入于其宮,不見其妻). 구사는 경제위기 해결이 무거운 수레 끌듯 지지부진함이다(來徐徐,困于金車). 그러나 해결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有終). 구오는 지도자가 위기를 극복하려 하나 아랫사람(赤祓)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강경책을 써(劓刖) 민심이 이반된다. 만일 제사 올리듯 정성으로 정치를 하면 서서히 풀릴 것이다(乃徐有說,利用祭祀). 상육은 곤괘의 끝, 여전히 어려운데다(困于葛,于) 일마다 풀리지 않지만(曰動悔), 외환위기의 원인을 반성하듯 처신하면 결국 좋아질 것이다(有悔,征吉). 부산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