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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찾아서 <19> 대한특공무술협회 장수옥 총재

독자적인 유파 창시한 무술계 살아 있는 전설

엄청난 위력 가진 북한군 '격술' 대처 위해 특공무술 개발

청와대 경호실 · 대테러부대 등에 최강의 실전술기 지도

  • 국제신문
  •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  |  입력 : 2008-01-03 19:31:4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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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30여년 전. 북한의 특수부대가 대통령 시해를 목적으로 청와대 인근까지 잠입할만큼 살벌했던 시기. 당시 남파됐다가 전향한 북한 특수요원들은 우리 측 요원들과 종종 대련을 벌이곤 했다. 북측 군인들은 어떤 무술을 수련하며 그 수준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함이 목적. 근데 승리는 판판이 그들의 몫이었다. 우리 측이 수련하던 그 어떤 무술도 상대를 누르지 못했다. 북한 특수요원들이 익힌 것은 '격술'. 살상을 목적으로 급소만을 골라 한 번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히도록 만들어진 무서운 것이었다. 군 수뇌부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일대일로 맞붙어야 하는 백병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그건 곧 전군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 격술에 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줄이 시험대에 올랐다. 방송에 출연해 실력을 뽐낸 무술인들의 이름도 빠짐없이 목록에 기록됐다. 하지만 좀처럼 격술을 능가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기존 무술은 격술과의 몇 차례의 대결에서 이미 열세가 확인된 터. 이제 남은 것은 전혀 새로운 무술의 등장뿐이었다. 하루하루 피 말리던 시간이 지나가던 1978년, 마침내 북한의 격술을 제압할 수 있는 신무기가 개발된다. '특공무술'. 창시자는 장수옥이라는 30대 초반의 젊은 무도인이었다.


   
북한의 격술을 박살내라

'청와대 경호실의 영원한 사부' '장풍을 쓰는 무도인'. 장수옥(60) 대한특공무술협회 총재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 그만큼 장 총재는 자타가 인정하는 무술계의 실력자다.

젊은 시절부터 무도인 사이에 이름이 회자되고 있던 장 총재는 1978년 외제차를 탄 군인들에 의해 모처로 모셔진다. 도착한 곳은 대통령 경호실 예하의 '606 부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긴 대테러부대였다. 거기에는 하나같이 눈에 살기가 번득이는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무술시범을 보인 장 총재는 실력을 인정받아 다음날부터 촉탁사범으로 근무한다. 장 총재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원을 가르치는 한편 북한군의 격술을 능가하는 무술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새로운 동작과 형(形) 개발에 들어간다. 특공무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특공무술은 각종 무술의 장점만을 뽑아서 만든 것입니다. 전쟁에서 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실전용으로 개발됐고요. 그렇다고 해서 형을 짜면서 주먹구구식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론과 실기가 다 같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죠. 특공무술의 동작은 동물이 싸우는 것에서 가져왔습니다. 동작 하나하나는 실제로 해보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뒤 실용성이 있는 것만을 채택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특공무술은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특전사를 비롯해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수련해야 하는 실전무술로 자리잡았다. 일반인 수련자의 숫자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특공무술이 이처럼 빨리 자리를 잡은 데는 물론 장 총재의 비범한 실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 그러나 뜻하지 않은 행운도 뒤따랐다.

"그 해 가을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 직접 무술을 보고 싶다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전 부대원들을 이끌고 청와대 연무관으로 가서 시범을 했죠. 행사가 끝난 뒤 차 실장이 아주 만족해하더니 대통령을 모시고 한 번 더 무술시범을 하자더군요. 이름이 마땅치 않으면 특공무술이라고 명명하자면서요. 그래서 이듬해인 1979년 6월에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부대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무술을 선보였습니다."

청와대 시범 뒤 장 총재는 특공무술을 전군에 보급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경호실 무술사범으로 특채한다는 언약까지 얻는다. 그러나 10·26사건으로 이 약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장 총재는 606부대를 떠났고 이 부대는 얼마 뒤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

사장 위기에 처했던 특공무술이 부활의 기회를 잡은 것은 이듬해인 1980년. 당시 전두환 국가보안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의 경호를 맡은 606부대 출신 대원들의 실력을 눈여겨 살피던 전 위원장이 특공무술을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 1980년 가을 청와대에서 다시 특공무술 시범을 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 총재는 보류됐던 경호실 무술사범으로 특채되는 겹경사를 누리게 된다. 이후 장 총재는 2002년 퇴직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청와대 경호요원들의 무술을 책임졌다. 그가 '청와대 경호실의 영원한 사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내공이 없는 무술은 반쪽 무술

무술계에서 장 총재는 족기술의 달인으로 알려져있다. 한때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3.7m를 뛰어 올라 송판을 격파하기도 했다. 지금도 족기술은 국내 최고로 자부하고 하단뒤돌려차기에 걸리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더 무시무시한 기술은 무협지에서나 듣던 장풍, 이른바 '평수법(平手法)'이다. 한 번 동작으로 상대가 수 m나 나가 떨어진다.

"손바닥을 펴 상대를 가격하는 평수법은 살상법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맞는 순간 속이 울렁거리는 등 빈혈증세가 오죠. 병원에 가 진찰을 해도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약해지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대련을 할 때는 꼭 호구를 두 개 이상씩 입도록 합니다."

근데 상대에게 직접 가격을 하지 않고도 내상을 입히는 이런 기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건 특공무술이 내공과 외공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장 총재의 부인인 김단화(59) 씨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김 씨 역시 무술계에 널리 알려진 고수. '철선녀(鐵扇女)'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젊은 시절에 우연히 주간지를 봤는데 바위를 부수고 차를 끌고 작두로 배를 쳐도 끄떡이 없다는 여자 무도인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아니 무슨 여자가 그렇게 센가 싶어 한 수 배울 요량으로 서울 단성사 근처의 도장엘 찾아 갔습니다. 근데 그 때는 못 만났고, 얼마 뒤 외국 파견 무술인 선발대회에 응모해 뽑혔는데 그 철선녀라는 사람도 포함됐더군요."

철선녀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두께가 7㎝나 되는 송판도 이마로 단번에 부쉈다. 하지만 장 총재는 그렇게 자신있다는 돌려차기로도 격파하지 못했다. 자존심 상하지만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일. 그 때 돌아온 대답이 "모든 힘은 아랫배에 있다"는 것이었다. 공기가 맑은 새벽에 수련을 할 때마다 사람의 힘이 무한정함을 느꼈던 장 총재는 그제서야 내공의 힘을 깨닫는다. 그 때부터 장 총재는 고정물은 잘 깨지만 유동체 격파에는 약한 철선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해주자며 접근(?), 데이트를 즐기다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면서 장 총재는 부인에게서 내공법을 배운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지체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물체에 마음이 가면 손과 발이 간다는 뜻인데 이게 바로 내공법입니다. 평수법은 팔의 힘이 아니라 허리 힘에서 나오죠. 결국은 상대에게 얼마만큼 힘이 빠르게 가해지는가에 달렸습니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장 총재는 부인에 대한 애틋한 정을 숨기지 않았다. "특공무술이 궤도에 오르는데 내조를 한 진정한 스승"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도 그럴 것이 부인 김 씨는 특공무술이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장 총재가 청와대 시범을 할 때에도 늘 동행, 같이 시범을 보였고 특공무술협회가 사단법인화됐을 때는 공직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협회를 이끄는 등 분신처럼 뒤를 돌봤다. 또 부인은 행여 장 총재의 실력이 줄까봐 잠자리에서까지 발차기를 시킬만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도록 독려도 했다.

현대사회에서 같이 어우러져야 고수

문득 궁금한 점이 몇 개 생겼다. 장 총재와 부인인 철선녀가 일합을 겨룬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또 고수 부모를 둔 자녀들은 얼마나 무술에 능할까.

답은 싱거웠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장 총재는 "자식도 부모를 버리는 세대니 둘이 오래 살자라고 서로 이야기한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아들은 현재 특공무술협회 전무로 일한다. 그러나 아버지 눈에는 영 차지 않는 모양. "나만큼 못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배가 고파 송진을 먹기도 한 부모세대와는 달리 꽃밭에서 영글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공직을 그만 둔 장 총재는 오히려 지금이 더 바쁘다. 전국의 여러 대학에 경호관련 학과가 생기면서 오랫동안 경호실을 지켜온 장 총재의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한 까닭이다. 한편으로 장 총재는 특공무술의 세계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 등 각국에 보급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청와대를 나온 것에는 좀 더 젊었을 때 특공무술을 활성화시켜보자는 의미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장 총재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림원 설립이다.

"많은 무도계 선배들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도 나는 최고라는 자존심 때문에 어디에 손을 벌리지도 못합니다. 무도인들이 모여 기술연구도 하고 바둑 장기도 두면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곳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죽기 전에 꼭 무림원을 세웠으면 좋겠네요."

내로라하는 무도인들이 존재하지만 자신만의 혼이 담긴 새로운 무술을 창시해 내는 사람은 극소수. 개인의 실력뿐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 그런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특공무술을 만든 장 총재는 우리 무술계에 우뚝 선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런 장 총재도 최근 범람하는 특공무술 도장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심정을 내비쳤다. 특공무술을 배우던 사람들이 독립한 뒤 유사 협회를 만들어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특공무술을 만든 사람으로서 제자들이 마냥 가짜라고 말할 수만도 없는 것이 스승의 고민. 그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행위임을 아는 이유에서다.

"고수란 현대사회에서 같이 어우러지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제 주변에도 산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게 하다 죽으면 과연 그 무술을 어디에다 쓸 수 있습니까. 절 같은 곳을 찾아가 수련한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현실도피입니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충분히 전수해야만 진정한 무도인이 아닐까요."


# 특공무술이란

- 각종 무술 장점 추려내 집대성

장수옥 대한특공무술 총재가 대테러부대 창설을 계기로 특수임무에 걸맞은 술기 개발 필요성의 대두에 따라 1978년 창안한 실전무술.

태권도 유도 합기도 쿵푸 태극권 당랑권 타이복싱 레슬링 권투 격술 군무술 소림무술 격투기 등의 장점 만을 추려 집대성한 것이 특징이다. 유사시에 실전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특수요원들의 감각도 고려했다.

당초 군사용으로 보급되던 특공무술은 높은 효율성으로 인해 일반인에게도 쉽게 전파됐다. 이에 따라 협회는 1986년 사회단체로 인가를 받았으며 1988년에는 사답법인 대한특공무술협회로 공식 출범했다. 현재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 100여 개의 도장이 설립되어 있다.

또 해외에서 특공무술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에 힘입어 특공무술협회는 상호기술교류 및 만남의 장 마련 등을 통해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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