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제 동아대 석좌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고법 상고부 설치 등 법조계 현황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곽재훈 기자kwakjh@kookje.co.kr

'청빈법관' '딸깍발이 판사' 등으로 불리면서 후배 판사들의 사표가 돼왔던 조무제(66) 전 대법관이 법원을 떠나 모교 동아대학교의 석좌교수로 부임한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평소 자신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꺼려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한번도 응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정해년 새해 후배 법관으로 12년 넘게 부산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황익(61)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의 방문을 받고 모처럼 근황과 함께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조 전 대법관은 특히 "부산 법조계만 해도 원로 선배님들이 많으시고 아직 원로라는 소리를 듣기에 일천하고 미흡해 대담 요청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상고부 재판을 포함해 37년간 재판업무를 해온 경험을 얘기해보자는 의미에서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

황익 회장=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약속을 정하고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웃음). 전에는 '법원장님' '대법관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래도 현직이 교수님이시니 교수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우선 오랜만에 고향 부산에 돌아오신 느낌이 어떠신지요.

조무제 교수=2004년 9월 퇴임해 돌아왔으니 2년이 지났네요. 부산지역 사회 전반에 대한 소회를 말할 자격은 없고 법조계를 중심으로 얘기해 보면 지방 법조계의 하나로서 부산법조가 발전을 계속해왔고 지금은 규모나 실질 면에서 재경 법조에 이은 법조사회로서는 대단한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입법안이 나와있는 대로 상고부가 부산법원에 생긴다면 발전의 속도가 더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황=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한 해를 표현한 고사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선택했습니다. 어느 사회나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최근의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심각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지나친 사회적 갈등은 결국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한대요. 교수님 의견은 어떠십니까.

조=법조인으로서 대답할 성질을 넘어선 문제인 듯합니다만 어쨌든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대체로 공통된 의견인 것 같습니다. 갈등은 이해관계 또는 의견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사회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갈등의 해법은 우선 소박하게 생각한다면 결국 원칙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법 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각자가 자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의견이 옳다고 확신되는 데도 다수 의견이 못됐다면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도록 하려면 법적 절차에 의해 인정받도록 노력해야지, 폭력이나 물리력으로 소수 의견을 관철하려는 것은 곤란합니다. 소수 의견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관철되도록 하고 다수 의견자들도 언제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이 소수가 될지 모르니 소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양보할 수 있는 여유를 보여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황=검찰과 법원의 최근 갈등 양상이 심각해지면서 국민들로부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올바른 사법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우리 사법부가 갖춰야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조=국가기관 간에는 업무수행상 마찰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형사사법을 분담하고 있는 법원과 검찰이 마찰을 빚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쌍방이 깊이 반성해 봐야 합니다. 만약 검찰이 공소유지를 하고 인권옹호를 위해 진력하고, 법원이 신속하고 적정한 재판을 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미 법에 의해 테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기관간 마찰이 있다면 법적 절차 내에서 해결해야지 법 절차 밖에서 마찰을 빚는다면 이는 결코 현명한 해결 방법이 못될 것입니다. 현재 제도가 잘못된 탓이라면 제도개선에 힘써야지 그 외의 방법으로는 마찰의 해소방법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봐요.

황=사법부가 뛰어넘어야할 가장 큰 장애물은 불신과 압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신임 대법관들은 한결같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법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불신의 기저에는 '유전무죄' '전관예우' 같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데요. 언론에서도 전관예우 문제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사건의뢰인이 성실하고 충실한 변론을 하는 것보다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선입견이 있으니 전관 변호사를 찾는 것 같습니다. 이를 근거로 한 통계자료나 보도를 믿고 사건 의뢰인이 전관변호사를 찾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 해소할 방도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지요.

조=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선 사법부 구성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금 회장님 말씀처럼 일부 국민들의 오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제는 국민들이 일반인에 대한 기대치보다 법원에 대한 기대가 훨씬 높기 때문에 자연히 그 기대가 쉽게 무너지게 되고 오늘날 불신의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법부 구성원 각자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언행을 계속하고 그게 쌓여서 자연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언행을 한다는 것은 의심을 받을 만한 외형을 만들지 않는 것도 포함됩니다. 물론 본인들이 업무를 깨끗하게 처리 해야 하지만 적정하지 않거나 공평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는 행위도 없어야 합니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말라)'이라고 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받는 고도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야할 노력은 그만큼 커야 합니다.

조무제 동아대 석좌교수와 황익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이 대담이 끝난 뒤 동아대 부민동 캠퍼스 뜰에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곽재훈 기자

황=지난해 고등법원의 상고부 설치 문제와 관련해 당초 전국 고등법원에 설치하려던 정부안이 국회 법사위에서 서울고법에만 설치하는 것으로 바뀌려다 지역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하려는 계획이 상고심을 대법원에서 받게 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고법 상고부 설치 문제는 대법원의 상고심 업무를 경감하면서 국민의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매년 급증하고 있는 대법원의 상고사건을 줄여서 고법 상고부에서 충분히 심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전국적인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는 사건은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하는 쪽으로 길을 모색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산 법원에 상고부가 설치되는 것은 필요하고도 적정하다고 생각합니다.

황=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수년째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력도 위축되고 있을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도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국민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이 있을까요.

조=요즘 여론을 전하는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들어봐도 지금 우리사회는 모든 가치를 재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의 보람과 가치는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인간 정신력의 고양으로 창조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해낸 결과물 자체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정작 그것을 창조한 자신을 등한시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고 원칙에 어긋난 것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물질문명을 창조한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경시하게 되면 거위도 죽이고 황금알도 얻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제일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 근검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것만이 삶의 보람을 잃지 않는 것이라 믿습니다.



# 약력

◇조무제

1941년 경남 진주 출생. 제4회 사법시험 합격, 법학박사 학위 수위(동아대), 부산지방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동아대 법학부 교수 역임, 현 동아대 법학부 석좌교수

◇황익

1946년 경남 하동 출생. 제16회 사법시험합격, 부산지방법원 판사, 부산고등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역임. 현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