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Shakespeare Company:RSC)
사회나 개인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것이 돈이 되느냐'고 최종적으로 묻는 것은 자본주의다.
'그것이 문화적으로 어떠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 그것이 '문화의 시대'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란 말 뜻은 이것이다. 문제는 결국 문화예술교육이다. 미래 세대와 기성세대가 예술과 문화를 더 가깝게 느끼고 즐기며, 그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자 국민 기본권이며 이를 위한 첫걸음은 사회적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주5일제 노동과 학교생활이 정착하면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뜨겁다.
이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회적 노력을 먼저 시작하고 지금은 그 효과를 누리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현장을 찾아 그 현황과 교훈을 매주 한 차례씩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달 말 영국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에이본 강가에 있는 스트랫포드'라는 뜻의 이 작은 마을은 활기가 완연했다.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여행객과 연극인들이 넘쳐났고 'No Vacancies'(빈 방 없음)라는 표지를 내건 호텔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자가용이 없다면 런던에서 북쪽으로 열차로 2시간 이상, 버스로 3시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도시. 인구는 고작 2만3000여 명밖에 안돼, 온 마을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이 고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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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에 있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 전경.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해마다 50만명 이상의 관객이 이곳을 찾는다. |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러닝 프로그램은 '전방위+총력전'=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 RSC)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영국 왕실과 정부의 인정과 지원 아래, 이 극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무대에 올린다.
'왕립'을 뜻하는 로열이라는 호칭이 말해주듯 RSC는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연극단체이다. 이 RSC의 본거지가 있는 고장이 바로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셰익스피어가 나고 자랐으며 만년을 보내다 눈을 감은 곳이다. 8월 말의 이 도시에 떠들썩한 활기가 돌고 있었던 데는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 개최 등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RSC가 매년 여름 주최하는 여름학교(RSC Summer School)였다.
올해로 59회째를 맞는 유서 깊은 RSC 여름학교는 지난달 11~19일까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에서 열렸다. 이 학교에 참가한 280 여명의 연극애호가 청소년 교사 연극인 등 수강생들은 오전에 셰익스피어 권위자들의 강연과 토론, 오후에 RSC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규모와 명성, 공신력을 두루 갖춘 RSC가 운영하고 있는 전체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에 비하면 여름학교는 그야말로 대형 할인매장에서 여름에만 '반짝'하고 지나가는 계절상품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RSC가 실시한 러닝(Learninng)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은 5만6000여 명입니다." RSC의 문화예술교육 담당부서(Learning Department) 가레스 콜린스 팀장은 "섬머스쿨은 러닝 프로그램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고급 코스'의 성격이 강하며 일부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RSC의 작품을 관람한 관객은 모두 55만8001명으로 런던 공연 관객을 제외하면 전체의 85% 이상인 50만여 명이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까지 와서 연극을 관람한 것"이라며 "전방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RSC의 러닝 프로그램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부산의 큼직한 동(洞)보다 작은, 인구 2만3000명의 마을에 연극관객 50만여 명이 1년 내내 들끓게 하는 작은 기적의 배경에는 RSC가 자랑하는 막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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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운영하는 러닝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대본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은 관객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역할까지 한다. |
#"관객과 극단, 예술이 모두 사는 길"= RSC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역사가 길다. 1950년대 배우들을 위한 목소리 교육프로그램이 설치됐는데 그즈음 일반인을 위한 교육도 병행했다. 기자는 지난 17일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의 코트야드 극장에서 RSC의 '헨리 6세'를 관람했다. 그때 접한 RSC 배우들의 발성과 발음은 과연 명품이고 진품이었다. 1980년대 들어 '목소리팀'과 '지역사회팀'을 하나로 통합해 교육부서(Education Department)를 만들면서 RSC의 문화예술교육은 본격화됐다.
"3년 전부터 'Education Department'라는 이름을 버리고 'Learning Department'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운다는 뜻이고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분들이 주인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죠." 콜린스 팀장의 설명이다.
상임연출자 3명과 배우 70여 명으로 구성된 RSC의 러닝 프로그램은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을 중심으로 1년 내내 교육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고 보면 틀림 없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학생 대상의 경우 RSC의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고 토론하고 작품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주중워크숍, RSC배우들이 각 지역의 학교 현장을 방문해 공연하는 영 피플스 셰익스피어, 무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몸소 체험하며 심신의 반응을 알아보는 플레이백,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자유토론 등이 있다. 영어 교사와 연극 교사 등 교사를 대상으로 RSC의 배우와 연출자들이 교육과 토론을 실시하는 프로그램들도 10가지에 달한다. 이와 함께 온 가족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람하고 RSC극단과 친밀도를 높이는 RSC 패밀리 위크 등 가족 행사들도 꾸준히 마련된다.
지난 17일 '헨리 6세'가 공연된 코트야드 극장에서 올해 8주 동안의 연극 연습과 공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는 레베카 존슨(17) 양 가족을 만났다. 아버지 존슨 씨는 "내성적이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던 딸이 연극 연습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밝아지고 작품 속의 캐릭터를 나름대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흐뭇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단체에게는 두터운 관객층을 형성시켜주고 개인에게는 예술적 감수성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관객도 살고 예술단체도 사는 지름길인 것이다.
RSC의 비키 헤이우드 대표는 "지난해 5000명 이상의 청소년 관객을 새로 창출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러닝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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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 하우스 |
# 셰익스피어의 고향
-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 런던 북쪽 150㎞ 인구 2만3000여명 곳곳 대문호 체취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Stratford-upon-Avon)은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150㎞ 거리에 있다. 런던 마릴본 역에서 열차로 2시간 20분이면 간다. 인구는 2만3000여 명. 이 도시는 '살살 걸어 다니면' 명소와 중요한 장소를 모두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소담하고 고풍스럽다.
하지만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은 영국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여행 책자에 주요 여행지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셰익스피어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며 그가 만년을 보내다 타계한 곳인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은 도시 전체가 온통 셰익스피어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의 본거지이며 이 극단이 운영하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 스완극장, 코트야드극장이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와 문학관을 잘 꾸며놨고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더웨이의 집, 손녀가 살았고 셰익스피어도 만년에 살았던 내시 하우스 등 셰익스피어의 흔적이 넘친다. 거리의 간판도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것이 많다. 해마다 55만 명 이상의 관객이 RSC의 작품을 보는데 그 중 80%는 이 작은 도시로 찾아오는 관객이다. 나머지는 외지 순회공연 관객.
죽은 셰익스피어가 산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www.shakespeare-country.co.uk
영국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본 = 조봉권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