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의료계는 무풍지대였다. 병·의원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의사라는 직업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이 무더기로 배출되고, 병·의원의 개설이 잇따르고, 지리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교통의 발달과 정보화사회의 도래로 의료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진 의료계의 풍속도를 그려본다.


'○○의대 외래교수' '△△의대 외래교수'

동네 병·의원 진료실이나 환자 대기실에서 외래교수 임명장을 보는 것은 낯설지 않다.

외래교수는 실무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초빙, 예비 의사들에게 실무경험을 쌓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

따라서 의대생이나 대학병원 소속 인턴과 레지던트를 지도할 때 본래 의미의 외래교수라고 할 수 있다.

각 대학들은 교수가 개업하거나 그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했을 때, 또는 그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했을 경우 외래교수 직함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외래교수는 이름뿐인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여러개의 임명장을 훈장처럼 주렁주렁 부착해 놓은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전보다 메리트는 줄었지만 여전히 의사들이 목을 매다시피 외래교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환자들은 외래교수라는 간판을 보면 실력있는 의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학병원에 가서 강의도 하고 진료도 하는 모양이구나. 실력 있는 의사인 것 같네'. 이처럼 종이 한장이 환자에게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의학박사라는 자긍심도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외래교수 간판을 2, 3개씩 있는 대로 죄다 걸어둔다. 다시말해 '좋은 의사를 많이 배출시킨 대학', '대학에서 강의하는 실력있는 의사'라는 대학과 의사 양측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임명장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역의 개원의는 3000여명. 이 가운데 외래교수는 3분의 1~4분의 1로 추정된다. 부산에만 외래교수가 최소 수백명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강의에 나서는 '진짜' 외래교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무더기로 양산되다 보니 '외래교수 직함 하나 없는 의사는 의사 축에도 못 낀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개원의는 "서울지역의 경우 외래교수가 더러 강의하지만 부산은 거의 없다"며 "이름 뿐인, 허울 좋은 외래교수"라고 실토했다.

의사가 과잉 배출돼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홍보수단인 명예 직함으로 변질된 외래교수. 의료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외래교수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내부의 목소리가 높다. 정금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