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선생이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가 새겨진 큰 돌을 나환자들이 어떻게 옮겨 왔는지를 직접 재현해보이고 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지난 1976년 5월25일 초판을 발행한 뒤 올해까지 100쇄를 넘게 출간하는 등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당신들의 천국’ 작가와 실존 주인공이 그 문학현장에서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청준 선생과 ‘당신들의 천국’ 주인공인 ‘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인 조창원씨가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난 21일 소록도에서 뜨거운 손을 잡은 것이다.



국제신문이 부산문화회, 동보서적과 매달 한차례 생생한 문학현장을 찾아 떠나는 ‘신문학기행’ 2주년 기념 특별행사에서 두 사람은 독자들을 동반하고 ‘당신들의 천국’ 작품무대를 함께 밟았다.



기행팀은 훗날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이들의 만남을 직접 지켜본 셈이다. 기행팀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이번 작가와 실존 주인공의 작품무대 ‘조우’를 함께 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록도. 지난 1916년 일본 총독부에서 나환자들을 강제 수용했던 장소. 한때는 ‘천형의 땅’으로 불린 곳이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는 일제의 만행과 나환자들의 애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당당한 삶을 꿈꾸는 ‘그들’의 아픔을 간직한 소록도의 역사가 잘 기록되어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현역 대령으로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한 조백헌 원장이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나환자들과 싸우고(1부) 오마도 매립공사를 둘러싸고 9개월 동안 정신적 방황(2부)을 하다 섬을 떠난 지 5년 뒤 한 사람의 시민으로 소록도로 돌아와 그 2년 뒤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 조백헌 원장의 실존 인물이 바로 조창원씨인 것이다. 조씨는 80세를 바라보는 현재도 경남 밀양 영남실버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현역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기행팀이 이청준 선생과 지금도 원장으로 불리는 조창원씨와 함께 소록도를 방문하자 병원측에서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요.”



이청준 선생은 소설 속의 소록도 모습을 그리고 온 독자들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그렇다. 소록도는 여느 섬과 다름없는 한적한 섬마을이었다. 국립소록도병원도 뭍의 다른 병원과 같이 차량 10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 옛날 환자들이 거주하던 ‘병사지대’나 ‘환자지대’를 가로지르던 철조망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냥 그렇고 그런 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행팀은 생가를 방문해 이청준 선생과 조창원 원장을 중심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그러나 소록도는 도저히 말로 표현못할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애한의 추모비.’



병원 본관 앞에는 지난 2001년 12월8일 세워진 추모비가 하나 있다. 이 추모비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8월22일 원생들이 자치권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직원과 알력이 벌어져 환자 85명이 몰살당한 곳에 건립됐다. 조창원 원장의 끈질긴 노력 끝에 세워졌다고 한다.



기행팀은 애환의 역사를 간직한 소록도 문학현장을 둘러보기 이전에 조 원장의 안내를 받아 추모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이 추모비는 ‘지구상에 있는 한센가족(나환자)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인 것이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이청준 선생이 어린 시절 겪은 소록도에 대한 견문과 1966년 10월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의 이규태 기자가 ‘사상계’에 ‘소록도의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쓴 오마도 간척사업 현장 르포기사가 바탕이 돼 탄생했다.



소록도 근처 전남 장흥 진목부락 태생인 선생은 1954년 봄 초등학교 졸업여행 때 어업조합에서 내준 화물선을 타고 소록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어린 이청준은 아름답고 정결한 느낌의 섬 한쪽에서 완전한 밝음과 어둠 두 겹으로 겹쳐 보이는 ‘수수께끼’를 느꼈다. 그 10년 뒤 월간잡지 ‘사상계’에 근무하면서 ‘소록도의 반란’을 본 것이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사실 3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청준 선생은 ‘당신들의 천국’ 1권은 소록도에서의 조 원장의 삶 그 자체이고 1권은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가 소록도를 찾아 쓴 르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설가 이청준의 몫은 그들 3명과 함께 쓴 3권이라는 것이다.



기행팀은 조 원장의 직접 안내를 받으면서 한서린 ‘소록도’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영광’을 누렸다.



나환자들이 강제로 단종수술을 받던 곳이나 우리나라 납골문화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납골당은 을씨년스러웠다. 반면 1936년부터 3년 4개월 동안 소록도병원의 4대 원장인 수호(周防正李)(소설 속에는 ‘주정수 원장’으로 나옴)의 강압에 의해 만들어진 중앙공원은 어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 공원은 원생 6만여명이 동원돼 손가락이 잘린 손에 곡갱이 등을 묶어 일을 하는 등 피맺힌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호 원장은 1940년 8월20일 완공을 기념해 자신의 동상을 세웠지만 2년 뒤 한 원생에게 무참히 살해된다.



그 동상이 있었던 자리 앞에는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를 새긴 시비가 누운 채 놓여 있다.



이청준 선생은 시비가 새겨진 이 큰 돌은 공원을 만들 당시 나환자들이 목에, 목에 나무를 매달아 힘들게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소록도. 이 ‘당신들의 천국’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어 불려질 때를 이청준 선생은 소망하고 있다. 그는 그 때가 오게 될 것을 확신했고 아마도 그때가 오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사시적(斜視的) 표현이나 책의 존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행팀은 아직은 ‘당신들의 천국’인 소록도를 방문하기 전에 이청준 선생과 1박을 같이 하면서 그 자신의 문학관을 육성으로 듣고 생가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 기행팀은 작가와 함께 문학현장을 그 주인공을 동반하고 찾아갔다는 큰 수확을 얻었다. 기행팀은 그렇지만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탈고’되지 못한 채 여전히 후속편이 이어져야 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 강춘진기자






# 이청준과 조창원 원장의 오랜 인연

- 엇갈린 삶의 궤적…5번째 어려운 만남

소설 당신들의 천국 작가와 실존 주인공이 30년만에 작품현장에서 뜨겁게 손을 잡았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과 조창원 원장은 이번 신문학기행을 통해 5번째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 첫번째 만남은 지난 1974년 1월4일 소설 ‘당신들의 천국’ 주인공 조 원장 취재를 위한 것이었다. 그 뒤 오랜 세월 서로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었든지 직접적인 대면은 없었다고 한다.



이청준 선생은 3년 전 조창원 원장의 전시회에서 만나게 됐다. 또 한번의 만남은 조 원장이 근무하고 있는 밀양실버요양병원을 이청준 선생이 직접 방문해 이뤄졌다. 올 초에는 ‘당신들의 천국’ 100쇄 발행을 계기로 한 신문사에서 마련한 인터뷰 취재를 위해 4번째 만남이 성사됐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두 ‘거목’은 1974년 이래 현장인 소록도에서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이청준 선생이 섬을 다녀온 지 보름쯤 지나 조 원장은 결국 병원장 직에서 퇴임해 은둔생활에 들어갔다고 한다.



‘신동아’에 소설 연재가 끝난 뒤 20년이 훨씬 넘어 조 원장을 만나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연재 당시부터 조 원장은 정권으로부터 적지 않은 제약과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몇 년간 불안정한 생활과 고초를 겪은 것이다.



소설을 연재했던 ‘신동아’의 모체인 동아일보가 1974년과 75년 박정희 정권의 미움을 받아 광고수입원이 봉쇄당하는 등 권력의 눈밖에 난 상황에서 소설의 실제 주인공이 ‘조창원’이라는 것이 한 이유였다.



그 뿐 아니라 소록도병원과 오마도 간척장 문제의 당사자였던 점과 겹쳐져 권력층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고 작가는 회상했다.



조창원 원장은 그러나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미움을 산 당시 권력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신문학기행의 특별강사로 초빙된 조 원장은 스스로 처음 하는 고백이라며 당시 함께 한 기자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청준 선생은 “조 원장의 삶을 통해 소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그 뒤 강원도의 한셈병원 등지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병상에서 500여명의 환자들을 ‘저 세상’으로 편안하게 보내는 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 신성한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을 조 원장은 일일이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까지 마쳤다.



이청준 선생은 “살아있는 환자의 육신도 돌봐주고 죽은 뒤에는 그림으로 영혼을 돌봐주는 일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좀처럼 만남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그들은 이번에 만났다. 만나는 순간 그들은 독자들이 보든 말든 뜨거운 포옹을 했다.



현지 소설가 김석중씨의 주선으로 교육청 통학선으로 회진항구를 출발해 소록도로 가는 배 위에서 조 원장은 독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하는 등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이청준 선생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청준 선생은 소록도 문학기행을 마치고 기행팀과 함께 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기자에게 슬쩍 이런 말을 전했다.



“우리는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인데 조 원장이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록도를 방문해 정말 기쁘지만 술 한잔 권하지 못하니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강춘진기자







# 이청준이 말하는 '소설'

- "두렵고 자신없는 길 혼자서 가는게 묘미"


“문학은 삶을 베끼는 것으로 우리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소설문학은 끝나지 않을 것이에요.”

이청준 선생은 소설문학의 묘미는 “무서운 밤길을 어딘지 모르지만 혼자 가야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두렵고 자신없는 그 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는 고향을 팔아먹고 사는 작가지요.”

이청준 선생은 생가를 방문하는 기행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그동안 쓴 작품의 3분의 1은 14세 때까지 살았던 고향을 ‘베낀 것’이고 3분의 1은 고향을 바탕으로 도시 속의 삶을 그렸다고 한다.

‘남도민의 한과 소리를 담아낸 소설가 이청준.’

전남 장흥군 진목리 472번지. 그가 태어난 마을 입구에는 대 소설가의 탄생지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이청준 선생은 이 고향마을 안팎의 풍정과 일화를 토대로 ‘나무 위에서 잠자기’ ‘심지연’ ‘침몰선’ ‘석화촌’ ‘해변아리랑’ ‘여름의 추상’ ‘축제’ ‘개백정’ 등을 탄생시켰다. 인근 천관산은 ‘잃어버린 절’ ‘인문주의 무소작시의 종생기’ ‘살아있는 늪’ ‘서편제’ 등의 무대다.

이청준과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향마을 부근에 있는 섬 소록도가 있고 여기에 고집스런 실존 주인공 ‘조 원장’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