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줄곧 야구팬들과 함께 해 온 야구해설가 허구연(50)씨. 경남 진주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1년때 부산 서구 대신동으로 이사를 왔다. 어릴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해 인근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와 야구 등 스포츠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보러 다녔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 ‘찜뿌’를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던 그가 야구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대신초등학교 5년때. 당시 김현옥 부산시장의 지시로 제1회 시장기초등학교야구대회가 열렸는데 무려 60여개팀이 참가신청을 했다. 이때 학급 반장이었던 허구연은 야구부감독의 권유로 테스트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잡아본 야구방망이로 학교 담장을 수월찮게 넘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는 곧바로 야구부 가입을 종용했지만 위로 세명의 형이 경남고, 서울고 등 소위 명문교를 졸업할 정도로 교육열이 강했던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어머니는 나를 서울에 있는 경기고로 보낼 욕심이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 성화 등으로 일단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만 야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허구연은 처음 나간 시장기대회에서 4번타자를 맡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렇게 잡은 야구방망이는 그의 뛰어난 재능때문에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경남중을 거쳐 경남고 재학시절 팀내 4번타자로, 부산지구 고교선발선수로 활약한 그는 고려대에 입학하자 마자 팀 4번타자를 맡으며 지난 71년 대학야구연맹전에서 홈런왕에 올랐다.
빠른발과 배팅파워 등으로 화려한 현역생활을 보내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76년 한·일 실업야구 올스타대항전. 2루수로 더블플레이를 처리하던 중 1루주자의 스파이크에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무려 4차례의 대수술을 거쳐 뒤에 재기해 1년여 선수생활을 연장했지만 부상 이전만큼의 기량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현역 생활 마감이라는 절망스런 순간이었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여의 투병 생활중 하루 10시간 가량 책과 씨름하다 53명의 응시생 중 13명만 뽑는 고려대 법학과 대학원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 신수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