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수면 위에 물닭 흰비오리가 헤엄치고 호수를 둘러싼 왕버들이 ‘고향의 봄’을 그린 파스텔화처럼 포근하다. 고요함과 적막함만이 흐르는 곳. 이곳엔 침묵이 있고 바람소리가 있다. 새들의 깃털 터는 소리까지 들리는 동판저수지. 언덕에 기대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물과 나무, 새 그리고 하늘이 하나가 된다. 문명의 스피드와 소란함 대신 자리잡은 태고적 고요함이 한동안 길손의 발걸음을 묶어놓는다.
주남저수지에 한두번 가본 적이 있는 사람도 동판저수지의 참 멋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곳에 앉아 동판 한가운데를 바라보고 있으면 ‘영성’을 느낄 수 있다. 철새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을 것같은 동판저수지에는 ‘정중동(瀞中動)’의 아름다움이 있다.
주남저수지는 경남 창원시 동읍면 일대 산남저수지, 주남저수지, 동판저수지 등을 합쳐서 부르는 명칭이다. 약 432㏊에 이르는 주남저수지는 일제시대에 축조됐다. 낙동강 하구의 배후습지로 관개용수와 홍수방지에 큰 역할을 한다. 주남저수지는 매년 가창오리 기러기 등 최대 4~5만 마리 철새가 월동하고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이 통과하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국제조류보호연맹(IUCN)에도 주요습지로 보고돼 있다. 주남저수지는 이들 철새 외에도 자라풀 가시연꽃 등 자연늪의 특성을 나타내는 식물이 대규모로 서식하며 이일대 주민의 농·축산업에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주남저수지는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 진영IC에서 약 4㎞ 거리이다. 진영IC를 나와 좌회전해 푯말을 따라가면 된다. 주남저수지의 탐조 포인트는 전망대이다. 3층 건물 규모의 전망대는 위압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주남저수지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이곳엔 상주요원이 있고 고배율 망원경 3~4대가 설치돼 주남저수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망원경으로 저수지를 살펴보면 재두루미나 큰고니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이 가까이 보인다. 운이 좋으면 노랑부리저어새도 볼 수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조심조심 둑을 거닐다보면 재두루미 가족이 노니는 모습을 더욱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저녁무렵 기러기떼들이 ‘과우 과우’하며 인근 산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쳐다보면 한동안 넋이 빠진다. 가끔씩 가창오리떼가 산머리쪽으로 팔랑팔랑 낮게 날아가는 모습도 렌즈에 들어온다.
주남저수지라고 해서 이곳 전망대만 보고 오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실제 주남저수지의 보물은 인근에 있는 동판저수지. 동판저수지는 물이 많아 흰비오리 물닭 고니 등 다양한 새들이 많다. 동판저수지는 호수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해훈가든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물가에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흰죽지 쇠오리 가창오리 물닭 등이 호수 위를 유유히 노니는 모습이 평화롭다. 멀리 호수를 둘러싼 듯한 왕버들 군락, 마주 보이는 산자락의 능선이 살아있어 반갑다. 20여 가구가 사는 판신마을 입구의 동산에 올라 동판을 내려다보면 태고적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귀로 듣는 것은 더 좋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저수지에 떠있는 조각배에 마음을 실어본다.
그러나 동판을 포함해서 주남저수지 일대는 새들에게 그리 편안한 여건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95년 동판저수지 인접한 곳에 군무원아파트가 건립돼 한동안 가창오리떼가 사라졌다가 몇년 전부터 조심스럽게 다시 찾아오고 있다.
주남저수지엔 아직도 동력선을 이용한 어로행위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철새는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개발에 대한 욕구가 크고 철새보전 지역으로 묶일 경우 재산권 침해 등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97년엔 ‘새야 내년에는 주남에 오지마라’는 플래카드까지 내걸기도 했다.
주남저수지의 경우 준설문제도 심각하다. 농업기반공사는 2백만곘의 토사가 주남저수지에 쌓여 홍수조절과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준설이 절실하다며 철새도래철인 지난해 10월 준설에 들어갔으나 지역환경단체가 반발해 중단되기도 했다. 지역 환경운동가들은 “주남저수지의 소유는 농업기반공사인데 보전 책임은 창원시가 지는 관리체계의 이원화문제가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남저수지 입구에는 해훈가든(055-253-7835)을 비롯해 크고 작은 식당들이 많다. 해운가든 대표 박해식(57)씨는 “식당을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새 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을 정도”라며 “철새보전과 함께 주민피해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 김해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