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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혼 사람의 길을 묻다 <10> 원로 합기도 무예인 유상호 씨

"불의와는 타협없다" 뚝심으로 지켜온 무예인 자존심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10-11-04 19:03:54
  •  |   본지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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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욕지도 섬마을 소년, 학교무술 시범보고 무인의 길 입문
- 1970년대 부산 동래서 도장 열어
- 폭력조직 잇단 스카우트 유혹 거절, 거리 활개 '어깨'들과 7대1 대결도
- 여러 무술 최고 단수 가지고 있지만 이젠 합기도 수련에만 열정
- "한 길이라도 제대로 道 수행, 어느 정도 경지 오르면 여러 길 보여"
- 학교주변 범죄예방 활동 등에 무예인들 적극 활용 했으면…

그의 얼굴에서 세월을 읽을 수 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항상 아파요." 그런데 '아프긴 아픈데 아프단 소리를 못한다'.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무예인의 자존심 때문에 함부로 아프다 소리를 하지 못하는가 보다. 몸동작은 날렵했다. 민첩한 동작선 하나하나에 부드러운 기운이 흐른다. 기합 소리는 우렁차다. 절도가 있다. 연결 동작은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그는 원로 합기도 무예인 유상호(74) 씨.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의 회장 등으로 활동하는 이 원로 무예인의 인생 역정은 흥미롭다. 먼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규칙적인 식사와 수련에 있었다. "식사도 수련이지요. 정량을 주기적으로 합니다. 시간에 맞춰 체내에 기를 채워주는 것이지요." 식사 후에는 가능한 한 10분 정도 합기도 품새 등 가벼운 운동을 한다.

유 회장은 무예인 최고수인 합기도 공인 9단에다 여러 무술 분야에서도 최고 단수의 자리에 올라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합기도 인생만 고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길만 걷겠다는 그의 정신 자세에서 새삼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무술이 대접 못받는 세태가 안타까운 원로

원로 무예인 유상호 씨가 기를 잔뜩 모아 수련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전통무예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사람이 살면서 하나의 길만 고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길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때론 달지만 쓴 맛이 더 많은 인생에서 한우물을 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는 이유다. "지나치게 여러 길을 걷다보면 그 많은 길이 도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될 때가 많다"는 것이 유 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요즘 문하생들에게 "이러저리 기웃거리지 말고 자기 위치를 지켜라"는 말을 부쩍 많이 던진다. 수많은 단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무림 세계'의 질서를 강조하는 말일 수도 있다.

젊은 시절 많은 무술(최고 단수의 공인 단증을 여러 개 확인했지만 합기도만 언급해달라는 각별한 부탁이 있었다)을 섭렵한 원로 무예인의 고집에는 철학이 있다. "한 길이라도 제대로 도를 수행하다 승화되면 여러 길이 보입니다." 인생사가 그렇다.

어떻게 한 길을 걸었을까. 수련 과정을 들어보자. '무림 세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 동래구에서 도장을 운영할 당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밤시간대 산으로 올랐다. 합기도 품새로 몸을 푼 뒤 어둠 속에서 동물이 덤벼드는 것을 상상하고 수련을 했다.

그 시절 금정산성 절벽 위에서 돌려차기를 하는 무예인을 접한 사람도 있겠다. 그가 바로 조그만 체구의 유 회장이었다. 몸이 흐트러지는 찰나의 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무서운 현장에서 회전차기 등을 수련했다. 담력은 저절로 생기기 마련. 중학교 시절에는 '동네 어깨'들을 만나면 '36계 줄행랑'이 최고의 기술이라는 것을 먼저 터득했다고 한다.

유 회장도 샛길로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 남포동 일대 '어깨들'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그러나 무예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없이 중요했다. 특히 운동을 하면서 몸에 밴 기공과 기백이 그를 무인으로서의 정의로운 길을 걷게 했다고나 할까.

이런 일이 있었다. 1970년대 '깡패 아닌 깡패' 대여섯 명이 작고 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는 순간 기합을 넣고 자세만 취했는데 그 놈들은 지레 겁을 먹고 그대로 물러났다고 한다. 동래구 명륜동에서는 일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7대 1'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이 '진짜 싸움'에서는 그의 기백을 못이겨 결국 다들 도망을 쳤다. 그는 끝까지 달려들어 동래 기차역 부근에서 두 명을 붙잡았다. 한 명은 손으로 목을 조르고, 다른 한 명은 발 기술로 제압했다.

"무술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태는 지구촌의 전체 풍경입니다." 그러면서도 지역사회, 더 넒은 의미로는 국가 차원에서 무예인들을 활용하는 방안이 얼마든지 있는데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일례로 학교 주변 정화나 범죄 예방 등에 퇴직 경찰관들만 투입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쓸쩍 흘렀다. 한 길만 걷고 있는 원로 무예인의 시선에는 시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 "후회 않는다"

유상호 씨가 합기도 기술로 상대를 가볍게 넘어뜨리고 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유 회장이 개인사를 담아 정리한 자신의 연보에 있는 이 문구가 눈길을 끈다. 그렇다. 그를 27세까지 키운 것은 할머니였다.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는 '별거 아닌 이별'을 하게 된다. 두 해 뒤에는 할아버지마저 세상과 이별하면서 할머니는 "저를 사랑하고 은덕을 베풀어주시고 지켜주시고 키워주신 분입니다." 그는 1937년 경남 통영군 한산면 염호리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해방과 더불어 욕지도에서 한산도로 옮긴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무술 시범을 보고 무인의 꿈을 키웠다. 그때 '동네 삼촌'으로부터 잔디밭에서 꺾기 던지기 낙법 등을 배웠으니 10세에 무술에 입문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마구잡이로 배웠다." 무술에 필만 꽂힌 것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할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옮긴 그는 서구 남부민동 한일체육관에서 복싱선수를 따라다니고 송도 아랫길에서 텐트를 치고 당수를 배우는 일이 잦았다. 그 시절에도 '서울이 좋았던가 보다'. 유 회장은 16세 때 직업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구포역에서 기찻길로 걸어갔다고 한다. 대구역까지 걷다가 결국 열차에 몸을 실었다.

1953년 5월 서울 소공동 향촌다방에서 당시 육군 총사령부 행정처장이었던 서정학 대령과 인연이 돼 어린 나이에 군복을 입고 사령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행운'을 누렸다. 서정학 대령은 제6대 법부부장관이었던 서상환의 아들. 그 인연은 18개월 만에 끝났다. 마치 운명처럼.

그는 남산에서 운전 연습을 하다 사고를 낸 것이다. 어린 마음에 겁을 먹고 안절부절못하던 차에 도로에서 군인들이 젊은 사람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강제로 차에 싣는 것을 목격하고 그 길로 자진 입대해 버렸다. 육군 헌병으로 3년10개월 근무하면서 호신술과 체포술 등을 자연스럽게 연마했다. 21세 때 제대하면서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할 무렵 무예인의 몸과 마음 자세가 이미 다듬어진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자진 입대하지 않고 서 대령과 계속 생활했다면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의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은 없었겠지요." 유 회장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합기도와의 인연은 어땠을까. "1961년 국술의 창시장인 서인혁 씨를 비롯해 김무진, 이한철 합기유권술 사범 3인이 공동으로 부산에 수련도장을 개설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와 활동했지요." 합기도의 최초 간판 명칭은 '합기유권술'이었다. 이 3인의 지도자들은 마음이 맞지 않아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그중 한 사람인 김무진 씨와 1962년 인연이 됐다.

1970년 경남 마산에서 첫 도장을 개관했다. 명칭은 '한국 팔광류 유술 경남본부 도장'. 이듬해 대한민국 합기도협회가 발족하면서 합기도가 정식 명칭으로 자리 잡고, 그는 '부산 사나이'로 무예인 인생을 새롭게 펼치게 된다. 이후 1986년에는 미국 정부 승인 대한 무예 대사로 임명되고, 1994년 대한합기도 부산시협회 초대 회장에다 2003년 영산대 생활스포츠확부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등 합기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 합기도는

- 관절기와 급소지르기가 특징, 정신 맑게하는 운동으론 그만

합기도는 관절에 거는 수와 급소지르기를 특기로 하는 호신술이다. 3000여 년 전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체술(體術)로 동양의학에서 다루는 신체의 경락(經絡)까지도 언급되는 등 짜임새 있는 무술이었다고 한다.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수도승의 호신술로 전해지다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립됐다.

유상호 회장은 "상대방과 제일 가깝고 정이 드는 무술"이라고 말했다. 116개의 사람 관절과 365혈을 활용하는 합기도는 약속에 의해 수련하는 운동이다. 서로 약속한 만큼 꺾는 활법과 달리 살법은 순간적으로 상대를 꺾어 제압하는 기술이다. 기본 기술에는 꺾기, 던지기, 치기, 차기 등이 있다. 특히 호흡을 일치시켜 기합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또 "상대의 피부를 자극하고 관절의 유연성을 키워줘 정신을 맑게 하는 운동"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태권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는 합기도는 상대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매력을 갖고 있는 무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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