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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그너머 <991> 창녕 화왕산

노을빛에 물든 억새 가을을 쓰다

  •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   입력 : 2016-09-21 19:38:00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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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1등산로~3등산로 8㎞
- 가파른 암능길·기암괴석 감탄사
- 배바위 고원 전체 조망 장관

- 창녕 조씨 시조 탄생지 들른 후
- 드라마 세트장·천문관측소는 덤
- 억새·숲 우거져 본지 리본 꼭 확인

불의 기억 때문일까. 지난 8일 찾은 경남 창녕군 화왕산(火旺山·758m) 정상부의 억새는 특이했다. 다른 지역의 억새는 대부분 은빛인데, 화왕산의 억새는 노을 같은 핏빛을 머금은 은빛이었다. 18만5000여 ㎡에 달하는 광대한 화왕산 정상부의 고원은 화산의 유산이다. 산은 아직도 용암을 분출하듯 핏빛 억새를 피워 올리고 있다. 화왕산의 계곡에도 '붉은 노을'을 뜻하는 '자하곡(紫霞谷)'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비화(非火) 비자벌(比子伐) 화왕(火王) 등 '빛벌'이나 '빛불'로 풀이되는 창녕의 옛 이름들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성. 말안장처럼 가운데가 푹 꺼져 있다. 오른쪽 고지대가 배바위, 왼쪽 고지대는 동문 갈림길이다. 두 곳 사이에 길게 쌓은 성곽이 보인다. 이창우 산행대장
화왕산의 핏빛 기억은 자연 작용만이 아니라 역사에도 아로새겨져 있다. 419년 전인 1597년 이맘때였다. 7만5000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온(정유재란)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화왕산성을 에워쌌다. 정벌 목표로 잡은 전라도 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왕산성 공략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성안에는 홍의장군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가 밀양·영산·창녕·현풍 고을의 군사·백성들과 함께 농성 중이었다.

왜적은 7일간 대치하다 함양 황석산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전주를 점령하려면 화왕산성보다는 인접한 황석산성 함락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왕산성으로 비보가 날아들었다.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1537~1597)를 비롯해 성을 지키고 있던 안음·합천·삼가·초계·함양·산음·거창 고을 군사와 백성 7000여 명 중 대다수가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화왕산성 사람들은 피울음을 쏟았다. '피의 기억'이 이뿐이겠는가. 가야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성이라고 전해지는 만큼 숱한 전투와 살상이 화왕산성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억새의 색깔이 붉은빛을 띠지 않겠는가.

   
화왕산 자하곡 매표소에서 1등산로를 따라 산성으로 올라가는 암능길. 기암괴석이 층층 쌓여 길이 매우 가파르다.
이런 연유에서일까. 무성한 억새밭은 사람의 진입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바람이 일면 길이 묻혀버리거나 등산객의 몸을 삼켜버리는 등 완강하게 저항했다. 억새는 인적을 지우고 날려버리며 '은빛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근교산&그너머' 시리즈 990회에 이어 991회에도 억새 산행을 한다. 가을의 전령사, 억새는 천의 얼굴을 지닌 듯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산행은 자하곡 매표소에서 시작해 1등산로로 정상에 오른 뒤 3등산로로 하산하는 코스다. 총길이는 8㎞로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특히 허준 드라마 세트장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은 억새와 숲이 우거져 길을 잃을 우려가 크니 반드시 본지 리본을 확인하고 산행해야 한다.

   
배바위.
자하곡 매표소에서 20분쯤 임도를 따라가면 1·3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1등산로로 오른다. 15분쯤 후 만나는 1·2등산로 갈림길에서도 1등산로 쪽으로 나아간다. 이곳을 지나면 가파른 암능길이 계속된다. 허연 속살을 드러낸 기암괴석들이 정상부까지 층층이 쌓인 벼랑 사이로 난 길이다. 층층 암벽이 병풍 두른 듯 산을 감싸 멀리서 보면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다. 2㎞가량의 암능길을 오르면 화왕산성 배바위에 이른다. 배바위에서는 말안장처럼 생긴 고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명멸하는 햇살, 일렁이는 은빛 물결. 바람을 등에 업은 억새는 고원을 휩쓸며 온몸으로 가을의 시를 쓰고 있었다.

   
화왕산 정상.
배바위에서 500m쯤 내려가면 화왕산성 남문이 나온다. 아래로 푹 꺼진 정상부의 중심으로 눈을 돌리면 창녕 조 씨 시조가 태어났다는 '용지(龍池)'가 보인다. 성곽 아랫길을 따라 150m쯤 더 가면 동문이다. 문밖으로 나와 600m가량 떨어진 허준 드라마 세트장으로 향한다. 세트장을 지나 50m쯤 가다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경북대 동아리의 천문관측소를 지나 능선에 올라선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상으로 직진한다. 정상까지 거리는 약 1.2㎞.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른 벼랑이 이어지고, 왼쪽으론 파도를 이룬 억새가 흰 물결을 일으키며 끝없이 밀려왔다.

   
허준 드라마 세트장.
화왕산 정상에서는 3등산로로 하산한다. 1.1㎞가량 내려가면 1·2등산로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오고, 500m쯤 더 가면 도성암 삼거리에 이른다. 도성암 아래가 산행 초기 거쳤던 1·3등산로 갈림길이다. 왔던 길을 따라 출발지로 돌아온다.


◆주변 가볼만한 곳

- 조선시대 석빙고 3단 장대석 눈길

   
조선시대 석빙고.
화왕산 자하곡 매표소와 지근거리인 창녕읍 송현리에는 조선시대 석빙고(보물 제310호)가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빙실(氷室)의 크기는 길이 11m, 너비 3.6m, 높이 3.7m다. 겉모양은 큰 고분처럼 보인다. 표면의 높이는 5.4m, 전체 길이는 13m다. 남쪽에 설치된 빙실의 입구 좌우에 장대석(長大石)을 3단씩 쌓아서 벽을 축조했다.

내부는 연석(鍊石)으로 4개의 홍예(紅霓)를 틀어 올리고 홍예 사이에는 장대석을 옆으로 건너질러 쌓아올려서 천장을 구성했다. 천장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이 설치돼 있다. 창녕 석빙고는 내외 구조가 경주나 안동 석빙고와 동일하지만 규모는 약간 작다. 석빙고 남쪽에 석비 1기가 세워져 있다. 비문에는 당시 현감 신후서(申侯曙) 등이 1742년(영조 18) 2월 초하루에 석빙고 축조 공사를 시작해 그해 4월에 완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교통편

- 부산 서부터미널서 창녕행
- 창녕터미널서 택시타면 편해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녕행 시외버스를 탄다. 버스는 오전 7시부터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창녕터미널에 내리면 산행 출발지인 자하곡 매표소까지 거리가 2㎞가량 된다. 버스를 타더라도 정류장에서 매표소까지 700m가량 걸어야 하니 창녕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는 게 편하다. 요금도 기본요금만 내면 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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