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산 들머리는 산길이라기 보다 트래킹 코스에 가깝다. 가지가 갈라지면서 V자 모양을 한 나무가 이채롭다 .

봄의 문턱. 동장군의 위세는 여전하지만 영상을 넘나드는 날이 차츰 잦아진다. 완연한 봄날은 아니라도 두꺼운 외투 한겹을 벗어던지기에는 충분한 날씨다.

칠곡 유학산(遊鶴山·839m) 가는 길. 군장 대신 배낭을 멨다. 소총 대신 스틱을 들었다. 전투화 대신 등산화를 신었다. 50여년전 한국전쟁 당시 이름없는 학도병들이 빗발치는 탄환을 뚫고 오르던 그 길을 찬찬히 밟는다.

유학산은 ‘학이 노닐던 산’이다. 산행 기점인 다부동은 ‘부자가 많은 동네’였다. 그러나 이 유유자적 평화롭던 동네는 갑자기 몰아닥친 한국전쟁이란 참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빠져들었다. 개전 2개월만에 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리면서 산 하나를 두고 인민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대구 사수의 마지막 보루였던 다부동. 양보할 수 없는 요지였다. 그 때문에 무려 9차례나 뺏고 뺏기기를 거듭하며 온 산과 들판은 선혈로 물들었다. 지금은 그 비극의 흔적이 거의 지워졌다. 공공근로사업으로 등산로가 말끔히 정비됐다.

산행코스는 다부동전적기념관~철탑~674m봉~793m봉~837m봉~헬기장~산불초소~유학산(838.6m) 정상~도봉사~팥재~도개2리 마을회관. 4시간 정도 걸린다.

다부동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하면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있다. 50여일간의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기념관이다. 탱크도 있고 비행기도 있다. 전적기념관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중부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면 유학산 개념도가 그려진 안내판이 서 있다. 산행 코스를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

곳곳에 유학산악회에서 부착해 놓은 정상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게다가 7부능선까지는 임도처럼 탐방로가 잘 나있다. 갈라지는 길에서는 이정표와 큰 길을 따라가면 된다. 폭 2m의 넓은 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다.

10분 정도 지나면 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중간에 나무계단이 나온다.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이어서 급하게 오를 수도 없다.

1시간쯤 지나 첫 고지인 674m봉에 닿았다. 거리로는 전적기념관에서 1.56㎞로 표시돼 있다. 1950년 8월13일부터 9월24일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국군 1사단은 인민군 13사단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국군이 8부능선까지는 여러차례 올랐지만 고지에서 아래로 던져대는 수류탄 때문에 번번히 분루를 삼키며 패퇴해야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러다 그해 8월 22일 백병전 끝에 고지 탈환에 성공한다. 그뒤로도 반격과 재탈환의 공방전에 9월24일까지 계속됐다.


잠시 내리막인가 싶더니 다시 오르막이다. 20분 정도 앞으로 가면 다부리와 정상으로 갈라지는 길의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앉아 쉴만한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참화가 지나간 지 50여년, 아래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숨을 가다듬고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경사는 약해지고 어느새 능선길이다. 15분 정도 가자 793m 봉우리. ‘유해 발굴지점’이라고 씌어진 작은 팻말이 있다. 능선에는 아직 눈이 남아있다. 양옆으로 시야가 트일 때마다 격전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실감난다. 능선 옆은 대구로 가는 골짜기. 이곳을 내주면 대로를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능선을 20분 정도 달리자 기이한 모습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산길 가운데 자라고 있다. 양 옆으로 휜 가지가 뻗었다. 가운데 곧게 자란 가지는 누군가 톱으로 잘랐다. 남자가 길에 누워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이 소나무에서 5분여 걸으면 유학산 제2봉인 838m봉에 닿는다. 당시의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설명하는 알림판이 있다. 왼쪽 아래를 내려다 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솟아있는 바위가 보인다. 상투바위다.

유학산이 유명한 이유는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는 역사적 사실 이외에 거대한 바위에 있다. 실제로 걸어보면 육산에 가깝지만 들머리에서 보면 여지없는 바위산이다.‘쉰길바위’. 어른의 쉰길이 넘는 절벽이란 뜻이다. 838m봉을 지나면 들머리에서 보던 절벽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절정은 철계단을 지나 바로 왼쪽에 있는 전망대이다. 누군가 길쭉한 돌멩이 두개를 세워 놓았다. 푹 꺼진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폼이 인민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초병같이 늠름하다.

이어지는 능선길이 막바지다. 헬기장과 산불방지시설을 잇따라 지나면 정면에 팔각정이 보인다. 그곳이 정상이다.

유학산. 학이 놀던 명산에서 피비린내나는 전장으로 변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이 산에서 국군도 600여명이 희생됐다.

정상에서 200m 아래 헬기장이 있다. 도봉사 600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섰다. 도봉사까지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15분. 도봉사의 뒤로는 수십m되는 절벽이다.

도봉사에서 10분쯤 내려오면 공사가 진행중인 도로다. 이 고개가 팥재이다. 오른쪽은 구미방면으로 넘어간다. 왼쪽으로 100m 정도 걷다 오른쪽 능선으로 붙는다. 2000년 공공근로사업 유학산~소학산 등산로개설 안내판이 있다. 산허리를 돌아간다. 중간에 가시덤불이 자라 길은 깔끔하지 않다. 등산로는 만들었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됐고 발길도 드물다.

유학산은 육산에 가깝지만 정상이 다가올수록 암릉 같은 느낌도 든다. 유학산 산행의 정점이라 할 만한 전망대 바위.

묘지를 정비하면서 소나무를 벌목해 길을 막은 곳이 있다.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서 걷는다. 10분 정도 내려가면 908번 지방도. 오른쪽으로 다시 10분 정도 도로를 따라가면 도개온천이 보이고 도개2리 마을회관 앞에 정류장이 있다.

/ 글·사진 = 김용호기자

/ 산행문의 = 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 전에]
다부동하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입으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빠지지 않는 곳이 다부동이기 때문이다.

유학산은 많은 사람들이 구국의 산으로 생각을 한다. 나라의 명운이 풍전등화일 때 다부동전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군이 전사하였다. 산행시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자. 옛날에는 학이 놀았다는 평화스러운 산이며 우리에게는 친근한 산으로 여겨진다.

유학산은 아래서 올려다보면 돌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 50길이 된다는 쉰길바위는 암벽훈련장으로도 유명하며 학바위로도 불린다. 상투바위, 도봉사, 다부동 전적기념관, 나라의 위급함을 알렸다는 듬티마을의 은행 나무, 도개온천 등은 유학산 산행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자녀들과 전쟁의 산교육장으로도 찾아보면 좋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겨울이라 추위에 대비하고 식수는 미리 준비를 하자.

산행을 마치고 현풍 옛날 손두부집(054-975-1419)에서 순두부로 요기를 하면 좋다. 손두부는 옛 방식을 고집해 담백하며 먹을만하다. 값도 저렴하다. 손두부 3천원, 순두부 3천5백원. 손두부는 2천원에 판매를 하고 있다.

도개온천(054-975-3700)은 850m의 암반수에서 퍼올린다. 유황 성분의 약알칼리성으로 피부미용 노화방지 신경통 관절염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유학산은 자가운전을 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장단점이 있다. 먼저 자가운전을 한다면 경부고속도로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뒤 다부IC에서 내린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전적기념관이 있다.

하산한 뒤가 문제다. 도개2리에서 다부동까지 버스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택시를 이용하면 8천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동대구역을 지나 대구역까지 간다. 대구역에서 다시 북부정류장으로 이동한다. 북부정류장에서 동명행 버스를 타고 다부에서 내린다. 대구북부정류장 (053)357-1851. 도개리에서는 오후 5시와 7시40분께 왜관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