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등산로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조용한 길이 이어진다. 기암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절묘하게 바꾼다.]
주왕산 하면 단박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뾰족뾰족 솟은 기암이 그것이다. 주왕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기암은 산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본래 이름은 기암(旗岩)이지만 볼수록 기암(奇岩)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바위다.
주왕산은 지난 76년 지정된 국립공원. 평일에도 주차장이 만원일 만큼 인파로 북적인다. 저마다 신발끈을 질끈 동여맨 등산화를 신고 울긋불긋한 배낭을 맸다. 그리고 한 길로 우르르 몰려간다.
상의매표소에서 출발해 대전사~주왕암~정상~칼등고개~사창골~2폭포~3폭포~1폭포~연화골~대전사를 돌아오는 코스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이 코스는 12㎞에 5시간 정도 걸린다. 대전사~주왕산~칼등고개~주능선~가메봉~대문다리~절골~절골매표소 코스도 이름이 높다.
근교산 취재팀이 소개하려는 코스는 대전사~광암사~장군봉~월미기삼거리~금은광이~분지골~너구동~달기폭포~월외매표소~달기약수탕. 약 5시간 걸린다. 주왕산 외곽으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주차장에서 기암을 보고 출발한다. 대전사 앞 매표소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첫 갈림길은 광암사 0.6㎞ 제1폭포 2.0㎞ 이정표가 있는 곳. 왼쪽으로 구름다리를 건넌다. 폭이 30곒 정도 되는 계곡을 건넜을 뿐인데도 완전히 딴 세상이다. 어른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저만치 멀다. 하도 조용해서 ‘같은 주왕산 맞나’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임도같은 너른 산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기암의 모습은 정면에서 보던 것과는 맛이 다르다.
얼마 뒤 등산로는 광암사와 금은광이 가는 길로 갈라진다. 왼쪽 광암사 이정표를 따른다. 산행 시간에 쫓긴다면 직진해서 금은광이 방향을 따라가도 된다. 월미기삼거리에 바로 닫는다. 협곡이 길을 향해 밀고 나오는 듯 갈수록 좁아진다. 능선에 닿기 직전 숨찬 오르막이 한 번 있다. 능선에 올라서기까지 40분이면 충분하다.
이왕이면 광암사로 가자. 광암사로 오를 것을 권하는 이유는 기암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다. 절집을 지나 장군봉을 오르기까지는 꽤 가파르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기암을 바라보는 쾌감은 대전사 마당에서나 산행 들머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떡 버티고 선 모습이 웅장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호기롭게 맞대결을 펼치려다 결국 벗어나지 못한 부처님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주변을 당당하게 둘러싼 암벽에까지 눈길이 미치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성을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보면 굳이 이런 비유까지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높푸른 하늘에 낮게 깔린 흰 구름 몇 덩이가 주변을 감싸면 그 기이함은 절정에 달한다. 기암은 그 자체로 빼어난 자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천천히 기암을 감상하면서 오르면 어느새 장군봉(685곒)에 이른다. 장군봉에서 월미기삼거리까지는 0.9㎞. 완만한 내리막이다. 10분 정도 걸린다.
월미기삼거리에서 직진해서 5분쯤 오르면 벤치가 있다. 다시 15분이면 금은광이 1.7㎞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만난다. 길이 평평해진다. 능선을 타고 20분 정도 걸으면 금은광이 삼거리(719곒). 금은광이 봉우리까지는 올라갈 수 없다. 본래 길이 잘 나 있지만 주왕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통제를 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달기폭포까지는 3.1㎞. 봉우리의 왼쪽 사면을 걷는다. 발을 헛디디면 수십곒를 굴러 내려갈 만큼 경사가 심하다. 이곳부터는 지나온 장군봉에서 월미기까지 보다도 인적이 드물다. 적막감마저 돈다. 능선 오른쪽 사면으로 꺾어 절벽처럼 쏟아지는 내리막이 기다린다.
내리막에 접어들면 아무리 발 뒤꿈치에 힘을 줘도 자꾸 가속도가 붙는다.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길이라 다행이다. 내리막이 끝나면 분지골. 완전히 묵었지만 제법 너른 논밭이 있다. 밭 이랑이 뚜렷하다. 폐가도 보인다.
낙엽송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는데도 낙엽송의 누런 황금빛은 조금 남은 햇살을 있는 대로 반사시키는 것 같다.
이때부터는 임도를 따라간다.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걷기에 딱 알맞다. 산새도 울지 않는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 적막을 깨뜨린다. 20분 정도 내려가면 나무로 만든 작은 다리를 건넌다. 이때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너구마을이다. 행정지명으로는 월외2동.
넓던 계곡이 한순간 좁아진다. ‘낙석주의’ 푯말도 섰다. 거무스레한 암벽이 양옆을 막았다. 제법 큰 소인 용추를 지나고 바로 아래 달기폭포가 있다. 천길 낭떠러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산행의 피로를 털어낸다.
[광암사에 오르기 직전에 본 기암의 모습 . 주왕산을 대표할 만큼 신비롭다.]
여기서 월외매표소까지는 1.9㎞. 매표소에서는 왼쪽 폭포식당을 보고 다리를 건넌다. 월외삼거리에서는 오른쪽. 허브농원이 나온다. 달기약수탕까지는 약 3㎞, 40~50분을 더 걸어야 한다.
/ 글·사진=김용호기자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취재 뒷 이야기＇
돌아다니다 보면 갖가지 황당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종종 겹쳐서 일어난다. 주왕산 가는 길도 그랬다.
지난 7일 취재산행의 당초 목적지는 군위 각시산이었다. 오전 6시45분 부산역을 출발, 동대구역에 내렸다. 동대구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8시 50분. 사단이 났다. 각시산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승객 감소로 없어진 것. 전날 인터넷으로 확인까지 했지만 그 노선은 오후 3시께 한 번 밖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마냥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주변의 어지간한 산은 이미 소개된 터라 더 막막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주왕산행 버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주왕산까지는 3시간. 도착하면 정오를 훨씬 넘는다. 시간 맞추기가 빠듯했다.
망설이다 일단 주왕산행 버스에 올랐다. 도착해서 지도를 한 장 구했다. 코스를 정하고는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어지간히 올랐다. 능선에 서자 이정표가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계획대로라면 장군봉을 지나 중간쯤에 보였어야 할 월미기삼거리에 벌써 와 있었다. 또 한 번 황당. 시간은 이미 오후 2시를 넘었다. 다시 돌아가자면 1시간30분은 까먹어야 한다. 할 수 없었다.
다시 찾아 오기로 하고 배낭을 벗어 대강 낙엽으로 숨기고 길을 되짚었다. 부산행 막차는 포기. 오후 7시에 떠나는 대구행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숨쉬는 시간도 아꼈다. 월외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마을 사람들에게 버스시간과 길을 물었지만 엉뚱한 대답만 들었다. 시간만 낭비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불렀다. 대구행 막차는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 김용호기자
＇떠나기 전에＇
주왕산에는 대전사 주왕암을 비롯해 군사들이 무기를 보관했다는 무장굴, 청학과 백학의 슬픈 전설이 있는 학소대, 신라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이 은신하며 계곡의 물을 퍼 올렸다는 급수대, 달기약수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 이번 산행 코스는 조용한 산길을 갈망하는 산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주왕산의 붐비는 여러 코스말고 한적한 길을 택했다. 장군봉에서 금은광산이 있었다는 금은광이 갈림길을 거쳐 분지골로 하산했다. 너구동, 바위병풍에 둘러 싸인 큰 용추, 달기폭포를 감상하고 약수를 맛보며 하루 산행을 접는 것으로 잡았다.
장군봉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여 쇠사슬이 묶여 있다. 발밑의 잔돌에 미끄러짐을 조심하자.
주왕산은 산불방지 등산로 통제를 실시하는 곳이다. 반드시 공원관리사무소(054-873-5593~4)에서 확인을 한 후 산행을 떠나자.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 노포동 종합터미널에서 주왕산까지는 하루 5차례 운행한다. 당일 산행을 위해서는 오전 7시40분 버스를 타야한다.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1만3천원.
문제는 달기폭포로 하산을 하고 나서이다. 국립공원지역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청송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 막차는 오후 5시50분께 출발한다. 그 전에 청송읍에 도착하려면 산행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월외리에서는 청송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오후 2시께 끊기므로 달기약수탕까지 부지런히 내려오든지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청송택시(011-804-7329, 054-872-7001), 청송터미널 (054)873-2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