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삼정산 정상에서 실상사로 향하는 하산길에 산죽 군락이 있다 . 이슬비 맺힌 댓잎 사이를 지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온 산을 휘감은 짙은 안개가 는개로 변한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거대한 둥근 바위는 문수암을 껴안았다. 산만한 바위의 처마 밑에 빗방울이 맺혀 물방울로 떨어진다. 톰방, 톰방, 톰방.

삼정산에 하얗게 이슬비가 내린다. 산바람을 타고 빗방울은 이리저리 떠다닌다. 이슬비가 점점 굵어진다. 땅에 고인 물에는 둥근 원이 자꾸 만들어진다. 물 먹은 등산화는 질퍽거린다. 어느새 이슬비는 가랑비로 변한다. 빗소리가 커진다.

삼정산은 지리산 자락이지만 한 발 비켜서 있다. 때문에 천왕봉에서 동서로 뻗어내린 지리산 주능선 서북릉 대부분을 바라볼 수 있다.

삼정산은 기슭기슭에 7개의 절과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산 전체가 작은 불국토(佛國土)다. 문수암 상무주암 실상사 삼불사 약수암 등 사찰이 줄줄이 있는 그런 산행로이다.

산행코스는 다리목수퍼~군자마을~도마마을~문수암~상무주암~삼정산(1,210곒)~1,182곒봉~실상사. 약 5시간 소요.

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천행 버스를 탄다. 팔량치고개를 넘고 남원시를 지나 40분쯤 달리면 마천면 소재지 입구. 오른쪽에 백무동 들어가는 다리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건넌다. 다리목 수퍼와 SK주유소 사잇길로 접어든다. 10분쯤 가면 군자마을.

오른쪽으로는 엄천강이 흐른다. 강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창암산이다. 왼쪽은 백운산 금대산. 군자마을 입구 첫 삼거리에서 도마마을 이정표를 따라 간다. 도마마을까지는 약 15분.

담배 모종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군자와 도마마을에는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특히 많다. 호두나무 잎을 한장 따 향을 맡아본다. 톡 쏘는, 짙은 향이 독특하다.

도마마을에 들어서면 파란색 지붕들이 인상적이다. 마을 첫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마을회관 뒤로 돌아 오른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간다. 포장길을 계속 따라가서 도마교를 건너 직진해도 중간에 만난다.

산행 초반은 삼정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오른다. 맑은 물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일품이다. 도마마을에서 20분 정도 가면 포장도로 끝부분에 문수암 삼불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5분쯤 가다 임도를 나와 왼쪽으로 들어선다. 수풀에 가린 산불조심 경고 간판이 서 있다.

이내 문수암과 삼불사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문수암까지 1.3㎞는 계속되는 오르막.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가자. 헉헉거릴 때쯤 경사가 완만해지고 좀 쉬었다 싶으면 곧 가팔라진다. 페이스 조절이 저절로 되는, 그런 산행이다.

추석을 전후해 삼정산에 오른다면 머루와 다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창 영글고 있다.

1시간여를 그렇게 오르다 지칠 때쯤 바위를 병풍삼아 다소곳이 앉은 문수암이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이곳은 1천1백곒 고지.

“성질 많이 나빠졌어요.”

문수암엔 도봉 스님이 혼자 수행을 하며 산다. 도 닦는 분이 성질 나빠졌다니. 오가는 등산객들 때문에 골치란다. 뼈 빠지게 마련한 장작을 허락 없이 함부로 때질 않나, 심지어는 비 바람 피한다고 스님이 암자를 비운 사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문수암 오르는 길에는 산악회 리본이 거의 없다. 도봉 스님이 꼴 보기 싫다며 눈에 띄는 족족 떼냈다.

그러나 그 성질 나빠진(?) 도봉 스님이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한 취재팀은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는지 따뜻한 차를 내왔다. “신문에 나먼 안되는디, 아무나 와서 차 끓여 내놓으라면….”

문수암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15분쯤 가면 전망대. 전망대 바로 곁에는 상무주암이 있다. 상무주(上無住).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이고,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상무주를 지나 100곒쯤 가면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삼정리 영원사로 빠지고, 오른쪽으로 치고 오르면 삼정산 정상 가는 길이다. 15분 정도면 헬기장. 삼정산 표지판이 있지만 정상은 아니다. 10분쯤 뒤 대동금속이 95년 세워둔 표지판이 있는 바위가 정상이다. 정상에서 마천쪽을 바라볼 때 오른쪽이 삼정리 벽소령으로 오르는 골짜기이고, 왼쪽은 뱀사골이다.

하산은 능선을 타면서 시작한다. 올라온 길과는 달리 수풀이 제법 우거졌다. 20분쯤 가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다시 10분 뒤에 전망대.

전망대를 내려서면 10분쯤 급격히 떨어지는 위험한 구간이다. 네갈래 길에서 직진하면 약간 오르막. 전망대에서 30분 거리에 무덤 3개가 있다. 이때부터는 조금 지루할 정도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무덤에서 30분 정도면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을 무시하고 직진. 약수암 가는 길이다.

곧게 자란 소나무숲이 나오면 실상사에 다다랐다는 표시다. 갈림길에서 15분이면 임도와 만난다. 왼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20분 뒤 실상사에 도착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산길로 접어들면 실상사 주변 논두렁으로 나온다.

/ 글·사진=김용호기자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떠나기전에
지리산. 지리산은 아무리 불러도 지겹지 않는 어머니 같은 산이다. 그 지리산에는 하늘이 열리는 전망대가 두 곳 있다. 남으로는 삼신봉이요, 북으로는 삼정산이다.

삼정산에서 바라보면 천왕봉과 지리 주능선이 여인의 비단 치마폭처럼 펼쳐지고 골짜기 골짜기가 세세히 나타난다.

삼정산에는 절집 또한 많다. 실상사 영원사 등 산사의 적막함이 세속에 찌든 때를 씻어 준다.

삼정산은 산 아래 마을인 하정 음정 양정을 합쳐 삼정이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됐다.

지리산에서 마음의 피로를 풀어 보자. 두 눈이 아닌 마음으로 지리산을 담아 오자.

삼정산 주변에는 지리산에서도 가장 맑고 깨끗하다는 칠선계곡과 천왕봉, 세석평전으로 통하는 한신계곡 뱀사골계곡이 있다. 피서를 겸해도 좋을 것이다.

/ 이창우산행대장 www.yahoe.co.kr



교통편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직행버스가 있지만 진주터미널에서 대기시간이 있으므로 일단 진주까지 가서 함양행 버스로 갈아타는 게 낫다.

부산~진주, 진주~함양은 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함양터미널에서는 마천행 버스를 탄다. 평소에는 약 30분마다 버스가 있지만 피서철에는 좀더 자주 다닌다.

실상사에서 함양행 버스는 약 30분마다 운행한다.

막차는 오후 7시30분. 함양에서 진주까지는 1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으며 막차는 밤 9시. 함양에서 부산직행 막차는 오후 7시25분이다.

진주에서 부산행 막차는 밤 9시10분. 진주에서 부산행 막차를 놓치면 밤 10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심야버스를 타야 한다.

자가운전을 한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주에서 대진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산청을 지나 생초IC에서 내린다.

첫 사거리에서 화계 구형왕릉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중앙선 없는 도로를 달리다 화계에서 마천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 화계에서 이정표를 따라가면 마천면 소재지를 지나 백무동으로 진입하는 다리까지 3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