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어디다 눈을 줘야할지 모르겠네. 저기 시퍼런 남해바다 좀 봐요.”

“큼직한 망울을 튼 철쭉은 또 어떻고. 만개하면 온 산이 자줏빛으로 불 붙겠는데.”

　“울퉁불퉁한 암릉구간에는 땀 좀 흘렸어요. 웬만한 공룡능선이 안 부럽군요.”

　산으로 갔더니 그곳에 바다가 있었다.

　남녘의 훈풍이 솔솔 부는 새 봄, 봄나들이를 겸할 수 있는 독특한 산행지를 찾았다. 이번에는 뭍을 떠나 섬으로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 거제도. 거제도는 노자산 가라산 옥녀봉 앵산 등 10여개의 산을 안고 있는 품 넓은 섬이다. 그 중에서도 계룡산~선자산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최고의 봄 산행길이다.

　멧부리에서는 수려한 다도해와 올망졸망한 섬, 그리고 거제의 10대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삐죽삐죽 솟은 공룡능선 위로는 봄의 전령, 철쭉이 살포시 자리잡고 있다. 산허리에서는 의상대사의 자취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덤으로 하산길에는 따사로운 봄볕을 담은 황톳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가히 이번 산행 하나로 봄 산행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산행구간은 ‘고현시외버스터미널~거제 공설운동장~김실령~434곒봉~계룡산(鷄龍山·566m)~의상대~여사바위(통신탑)~포로수용소 잔해~고자산치~철쭉지대~헬기장~선자산(扇子山·507m)~동부면 삼거리 원덕골’이다. 소요시간은 5시간~5시간30분 정도. 암릉구간은 계룡산부터 고자산치까지, 철쭉지대는 고자산치부터 선자산 정상까지다.

　곳곳에 탈출로가 있어 체력과 상황에 맞게 산행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짧은 가족산행을 원한다면 계룡산 정상 직후에, 포로수용소 잔해까지 보고 싶다면 고자산치에서, 철쭉지대를 모두 맛보고 싶으면 선자산까지 오른 뒤 하산하면 된다.

　하차지점인 고현시외버스터미널에서 들머리인 거제공설운동장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린다. 공설운동장 뒤 생활체육광장으로 올라가면 인공암장이 나타난다. 그 오른쪽으로 계룡산 초입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계룡산 정상까지 2.9㎞.

　들머리에는 생기를 머금은 소나무가 오솔길을 감싸고 있다. 잘 다져진 너른 등산로지만 비탈이 심해 한참에 달음박질쳐 오르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삼거리인 김실령고개를 지나면 누구나 계곡에 자리한 약수터에서 숨을 고르게 된다.
　들머리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 주변은 층층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갈참나무가 아름드리 자라고 있다. 30여분 올라왔지만 실제 거리로는 800곒도 채 되지 않는다. 임도에서 정상까지 2.1㎞가 남아 있다.

　임도에서 정면의 오르막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오롯이 고개를 내민 벤치가 있는 바위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쪽빛 남해바다는 이곳에서부터 열린다.

　암릉구간은 바위전망대의 200여곒 위에 있는 434곒봉부터 시작된다. 계룡산을 지나 고자산치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에서는 어디로 눈을 돌리나 천하의 절경을 시야에 담을 수 있다. 공룡능선과 남해바다가 어우러지는 경치는 어느 산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거제도의 자랑거리다. 암릉구간이지만 걷기 힘든 구간은 철제 사다리가 설치돼, 노약자나 어린이가 걷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계룡산 정상도 공룡능선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암봉이다. 암봉에 우뚝 솟은 정상석을 보노라면 닭벼슬을 닮은 머리와 용의 등을 닮은 암릉을 가졌다는 ‘계룡산’의 유래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정상에서 12시방향으로 앵산, 3시 방향으로 국사봉 옥녀봉, 6시방향으로 노자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속해서 7시방향에는 한려수도에 올망졸망 떠오른 산달도 한산도, 9시방향에는 산방산 대봉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길은 암릉구간을 따라 이어진다. 집채덩이만한 바위 골짜기가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구간이 곳곳에 버티고 있다. 10여분 공룡능선을 즐기면 장정 20여명은 족히 앉을 만한 너럭바위를 만난다. 이곳은 의상대사가 장기를 두었다는 장기바위다. 이 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서면 의상대사가 수도했던 의상대에 닿는다. 의상대 주변에는 돌담 샘터 대밭이 남아 지난날 화려했던 화엄종 가람의 영화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내리막길을 따라 15분 더 떨어지면 삼거리 안부다. 오랜만에 봄나들에 나선 가족들이라면 이곳에서 하산해도 좋다. 왼쪽으로 꺾으면 계룡사를 거쳐 포로수용소 유적관을 둘러볼 수 있다. 선자산으로 계속 가겠다면 직진해야 한다.
통신탑이 세워져 있는 여사바위에 올라선 뒤 25분 정도 내려가면 허물어진 건물이 나타난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관리를 위해 사용되던 통신대 건물로 을씨년스럽다. 이곳 안부서 직진하면 선자산(3.8㎞),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뒷뫼마을이다.

　이정표를 따라 고자산치에 이르면 암릉구간은 홀연히 사라지고 억새가 천지를 이룬다. 예전에는 가파른 고개라는 뜻으로 고산(高山)재라 불렸던 곳이다. 고자산치를 가로지르는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가면 상동리 용산마을, 오른쪽으로 가면 서상리다.

선자산은 정면으로 보이는 비탈길 끄트머리에 우뚝 솟아 있다. 초원지대에 세워진 단군상을 지나 수풀 속으로 들어간다. 철쭉이 군락을 이뤄 터질듯 말듯한 꽃망울을 움켜쥐고 있다.

　봄 기운에 토실토실해진 산길을 걷는 맛이 새롭다.

　억새가 자리한 곳에는 시원한 조망이 열리면서 다도해가 코발트 색조를 뿜어낸다. 50여분간 능선을 따라 오르면 선자산 꼭대기에 오른다. 선자산은 북서로 계룡산, 동남으로 옥녀봉과 부채꼴 모양으로 이어진다.

　정상을 조금 지나면 마지막 이정표다. 이정표는 왼쪽으로 구천댐 상류까지 2.1㎞를 가리킨다. 직진하면 거제자연랜드까지 2.3㎞. 거제자연랜드 쪽은 돌아오는 차편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취재팀은 왼쪽 하산길을 택했다.

　하산길은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호젓한 길이다. 이곳에서도 절경이 기다리고 있다. 산중턱 인근에서 오른쪽으로 열리는 구천저수지의 푸른 담수호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40분 뒤 상수원 보호를 위해 설치해 놓은 철제문을 지나 14번 국도에 내려선다. 도로를 따라 왼쪽 문동리 방향으로 20여분 걸어가면 삼거리에서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버스정류장 옆에는 심원사, 학동몽돌해수욕장 등을 알리는 대형 표지판이 서 있다.


# 교통편

부산에서 출발한다면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부산연안여객부두에서 장승포행은 오전 8시(로얄페리), 10시(데모크라시)에 출발한다. 요금 1만5천300원. 50분 소요. 장승포에 도착하면 고현행 버스로 옮겨탄다. 고현으로 가는 시내버스와 시외버스가 수시로 있다. 7백원. 20분 소요.

　부산연안여객부두에서 고현행 여객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오전 9시30분(엔젤9호)에 출발한다. 요금 1만4천700원.
　버스편 이용 땐,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장승포행 버스를 탄 뒤 고현에서 내린다. 오전 6시20분부터 20~30분 간격으로 있다. 9천600원. 소요시간 3시간.

하산 때는 삼거리 원덕골로 내려오면 14번 국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고현행 버스를 탈 수 있다. 오후 4시20분, 6시20분 7시20분 등 약 1시간 간격으로 차가 다니지만 교통사정에 따라 불규칙하므로 20여분쯤 미리 정류장에 나오도록 한다. 요금7백원. 고현까지 20분 소요. 택시를 타면 5천~6천원 정도 든다. 거제 개인택시 055-632-4477. 011-9508-1333.

거제에서 부산까지는 시외버스가 편리하다. 부산직행 막차 오후 6시40분. 마산을 지나가는 부산완행은 막차가 오후 7시28분에 있다. 요금 9천600원. 부산행 배편으로는 고현에서 오후 4시30분, 장승포에서 오후 5시30분이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