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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근 전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사업본부장이 지난 16일 ‘판문점에서 금강산까지’ 북콘서트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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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경남연구원서 북콘서트 개최
- 이산가족 상봉·대북지원 경험 공유
“생존 이산가족의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50년, 60년을 기다려 온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인고의 시간을 품은 징표입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34년간 근무하며 남북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대북 인도주의 지원 현장을 지켜온 김성근(63) 전 대한적십자사 국제남북사업본부장이 분단의 현장을 기록한 책 ‘판문점에서 금강산까지’를 펴냈다. 김 전 본부장은 지난 16일 경남연구원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책에 담긴 남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의 경험을 소개하고 남북관계의 부침 속에서도 지켜야 할 인도주의의 가치를 이야기했다. 이번 행사는 책방 ‘뜻있는 책방’이 주최하고 남북지역교류중앙협의회가 후원했다. 김 전 본부장은 현재 남북지역교류중앙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책은 남북분단 최일선에서 헤어진 가족들의 재회를 위해 분투했던 실무자의 기록이다. 남북관계의 역사적 장면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의 그리움과 고통,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생생한 현장 이야기로 풀어냈다. 김 전 본부장은 남북한 냉전기였던 1991년 대한적십자사에 입사했다. 입사 초기 이산가족 사업을 맡았지만 남북 간 대화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이후 재일동포 모국 방문 사업 등을 담당했고 1995년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대북 지원 업무에 참여했다. 1999년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회담에 지원 인력으로 참여하면서 이산가족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그는 2000년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행사장이던 서울 코엑스는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그리움을 쏟아내는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가족들이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만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박 3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하니 작별할 때 가장 많이 울었던 이산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상봉을 기다리는 이들의 사연도 절박했다. 북한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며 사무실을 찾아온 부모가 있었고, 90세에 가까운 어르신이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고 싶다며 직원들 앞에서 팔굽혀펴기를 해 건강을 증명하려 한 일도 있었다. 금강산에서 만난 한 노부부의 사연은 지금도 그의 가슴에 남아 있다.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는 반세기가 지나 어렵게 재회했다. 할머니는 2박 3일 동안 남편과 옛 신혼 시절로 돌아간 듯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작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남편에게 함께 서울로 가자고 말했다. 남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통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달랬다. 할머니는 “통일이 언제 되느냐”며 가슴을 치고 서럽게 울었다.
김 전 본부장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북관계가 악화하면 쌀 비료 등 인도주의 지원과 가족 상봉도 영향을 받지만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소식을 주고받는 일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가족이 다시 만나 함께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연락하고 소식을 주고받으며 필요할 때 만날 수 있는 상시적인 제도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책 제목인 ‘판문점에서 금강산까지’는 남북관계의 두 공간을 상징한다. 판문점이 남북 간 협상과 연락의 장소라면, 금강산은 헤어진 가족들이 실제로 만나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쏟아낸 만남의 장소다. 두 공간을 오간 그의 기록에는 남북회담의 역사와 함께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이 담겼다.
책은 과거에 대한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이산가족 대부분이 고령인 상황에서 만남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을 환기한다. 김 전 본부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사를 확인하고, 연락하고, 만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산가족 문제는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