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 마산지역 주역 중 한 사람인 정인권 씨가 별세했다. 향년 6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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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정인권 씨 생전 인터뷰 장면. ‘통닭구이’ 고문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 따르면 정 씨는 지난 22일 오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는 23일 추모식을 열 계획이다.
부마항쟁 발발 당시인 1979년 10월 18일 고인은 경남대 국제경제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당시 학교는 같은 달 16, 17일 부산에서 일어난 항쟁 여파로 휴교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군사정권에 항거해 4·19혁명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고인은 “3·15 의거 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며 연설해 학생들의 마음 속 불씨를 댕겼다. 이후 경남대에서 학생 수백 명이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시위는 금세 시내로 퍼져 나갔다. 이를 두고 훗날 학계에서는 ‘4·19의 길이 5·16의 길을 이긴 것’이라고 해석, 고인의 결행을 높이 평가했다.
시위 주동자였던 정 씨는 마산경찰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얼굴에 천을 씌운 뒤 주전자로 물을 붓거나, ‘통닭구이’로 불리는 고문 등에 시달렸다. 생전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마산경찰서에서 5박 6일을 얻어맞았다. 서장실에서 의자에 묶인 채 과장이란 사람에게 2번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러곤 지하 취조실로 끌려갔다”며 당시의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국제신문 2020년 10월 23일 자 6면 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지고 유신 정권이 막을 내린 뒤에도 고인은 오랜 시간 자유롭지 못했다. 군에서 전역할 무렵 군 간부로부터 ‘녹화사업’(전두환 정권이 학생 프락치를 이용해 시위를 차단하던 작업)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고인은 복학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군 인사로 보이는 자가 건네는 ‘안부 인사’를 받아 후배들이 학생운동 합류를 권해도 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엔 김대중 전 대통령 보좌관으로 잠시 근무했으나 이내 마산으로 돌아가 공장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이후 고인은 부마항쟁 진실규명을 포함해 3.15의거기념사업회 초기 국립3.15민주묘지 조성 등 성역화 작업에도 이바지하며 지역사회에 민주화 운동이 뿌리내릴 수 있는 기틀을 다듬었다. 고인은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01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정신 계승과 국가기념일 지정에 이바지한 공로로 ‘창원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창원병원장례식장 특실7호실에 차려려졌다. 발인은 24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창원 상복공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