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0여권 도서, 서예·사진 기증
- 청소년 애향심 갖게 도움 주고파
지난 4·15총선에서 후진을 위해 불출마한 울산의 한 중견 정치인이 3000여 권의 소장 도서를 도서관에 기증하고, 지역사회 요구로 기꺼이 명예도서관장까지 맡았다. 4선 관록의 강길부 전 국회의원. 지난달 말 16년간 오갔던 국회를 뒤로하고 낙향한 그는 이젠 ‘정치인 강길부’가 아닌 ‘지역 봉사자 강길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이 그에게 스스럼없이 금배지를 던지고 이런 새로운 2막 인생을 선택하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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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울주군에서 4선 의원을 지낸 강길부 전 국회의원이 정계 은퇴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
개인 소장 도서를 기증하고, 퇴임 후 울산 선바위도서관 명예 도서 관장직을 맡았는데 어떤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물었다. 이에 강 전 의원은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소년가장으로 농사를 짓게 됐다. 당시 형편이 어려워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며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면서도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던 것이 (시간상)책을 많이 읽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러던 차에 올해 4·15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퇴임 후 지역사회를 위해서 할 만한 뜻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책을 기증하기로 맘 먹었다. 이런 뜻을 이선호 울주군수에게 전하자 범서읍에 있는 선바위도서관 명예관장을 제의해 왔다. ‘도서관에서 군민, 특히 젊은이와 대화도 나누고,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 군수의 말에 어쩌면 보람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좋은 길을 열어 준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고 밝혔다.
명예관장이기 때문에 보수는 없는 말 그대로 명예직이다. 그는 3000여 권의 책과 함께 소장하고 있던 1000만 원 상당의 서예작품과 사진작품도 함께 기증했다. 반구대암각화 서예작품, 가지산 쌀바위와 백두산 천지를 촬영한 사진작품 등이 포함돼 있다.
명예 도서관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다니고 싶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국토교통부 차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울산 지명과 관련한 유래나 설화, 특성 등을 엮어서 이미 3권의 책을 냈다. ‘향토와 지명’, ‘땅이름 국토 사랑’, ‘울산 땅이름 이야기’ 등이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지명 유래나 자랑거리, 배출된 인물 등을 알게 함으로써 애향심을 고취시키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민감한 질문일 것 같지만 16년 정치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답변은 예상과 달리 명쾌하고 담백했다. “총선 훨씬 전부터 ‘사람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 “그러던 중 올 초 코로나19 사태가 닥치면서 나라와 국민이 경제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급격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그야말로 국가적 비상시국이랄 수 있는 이럴 때일수록 젊고 역동적인 후진에게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강 전 의원은 1942년생으로 올해 78세의 고령이지만 선언 직전까지 아무도 불출마를 예상하지 못했다. 울산과학기술대학원(UNIST) 설립, KTX울산역 유치 등 굵직한 지역 현안 대부분이 그의 노력으로 결실을 봤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상당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지역 대다수 유권자나 정치인은 그의 5선 도전을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퇴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정치 역정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맨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내 고장 울산과 울주를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초심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한다”며 “무엇보다 앞으로 할 새로운 일을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도 혹시 정치를 재개할 생각이 내심 있지는 않을까 싶어 떠보듯이 물었다. 그러자 바로 손사래를 치며 “더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만일 내가 다음 선거에 나온다면 이번에 기증한 책과 서예작품, 사진 작품 등이 모두 선거법 위반 증거가 될 것”이라는 간단 명료한 답변으로 결심의 진실성을 입증했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