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원작자
- 유튜브 ‘아주작은 코끼리’ 채널에
- 종교 관련 영상물 대본·출연·연출
- 첫 회 조회수만 23만 건 기록
- 글쓰기 교습생도 깊은 공감

선해 보이는 인상의 행인이 조심스레 다가서며 말을 건다. “공모전에 낼 작품을 준비하는 시나리오 작가인데, 제가 구상한 캐릭터랑 너무 잘 맞아서요. 혹시 잠깐만 인터뷰 가능하세요?” 인터뷰에 응하는 동안 자연스레 신상이 노출된다.

김유리 작가가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신천지 포교 관련 영상을 올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이름, 나이, 직업, 사는 동네. 행인은 추가 인터뷰를 부탁하며 연락처도 챙겨간다. 공모전 아이템이 보호돼야 한다면서 인터뷰 사실을 절대 주변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뒤따른다. 이 모든 과정에 응했다면, 당신은 ‘열매’(신천지 포교 대상자)로 노려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내용의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아주 작은 코끼리’에 올려 큰 호응을 끌어낸 이는 부산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김유리 작가(소설가)다.

‘수상한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김 작가가 직접 대본을 쓰고 출연·연출한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첫회 조회수만 23만 건을 기록했다. ‘옥탑방 고양이’로 유명한 김 작가는 어쩌다 신천지 포교 수법을 추적해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가 됐을까. 9일 김 작가를 만나 영상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분하고 화가 났어요. 코로나19 확산 탓에 일상과 수입이 엉망이 됐으니까. 여기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게 신천지 교단이라고 생각됐어요.” 김 작가가 밝힌 동기는 단순했다. 신천지 교회를 고리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그는 10년간 운영하던 글쓰기 교습소 문을 닫아야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돼 외부 강연과, 9년째 서울에서 상시공연중인 연극 ‘옥탑방 고양이’ 좌석 판매 수익도 내려 앉았다.

그러던 중 교습생이나 지인 가운데 신천지 포교 대상이 됐던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 김 작가는 “포교는 주로 여성, 그리고 개인 사정 탓에 우울감 등 심리적 결핍을 겪은 이들을 알아보고 접근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타심이 깊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들도 타깃이 됐다”며 “영상을 만들어 이들이 어떻게 접근하는지 수법을 알리면 경계심을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가장해 접근하는 수법을 다룬 ‘수상한 사람들’ 첫 번째 영상 사례의 주인공도 교습생이다. 이 교습생에겐 무려 12명이 붙어 작업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주변인들을 취재해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자를 섭외했으며, 본인 또한 난생 처음 연기자를 자처해가며 영상을 만들었다. 첫 영상에 이어 업로드한 추가 영상 3건도 총 6만22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얼굴이 알려진 ‘셀럽’이 아닌 데다, 실제 이 채널 구독자는 1100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숫자다.

1년에 한 번은 한 달 넘는 해외여행에 나선다는 그는 “원래 유튜브 채널은 여행 관련 콘텐츠를 올릴 생각으로 지난해 말 만들었다”며 “신천지 포교에 관심이 높아진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반향 속에 우려되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김 작가는 “댓글을 보면 ‘뻔히 보이는 수법인데 속아넘어간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이 아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천지는 무슨 수를 쓰든 포교 대상자의 환심을 한다. 치밀하고 집요하게 대상을 파악해 반드시 ‘심리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로 동요를 일으킨다”며 “영상을 보는 이들이 접근 수법과 위험성을 충분히 알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로서, 또 과거 교회에 나갔던 경험 때문에 사이비 등 종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김 작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천지 등 종교에 관심이 생긴 이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신천지 관련 콘텐츠가 마무리되면 과거 경험 등을 살려 종교 문제를 다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