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록 큰 센텀시티 차량 중심
- 소블록화해 걷기 좋게 해야
- 해안선 일대 고층빌딩 아찔
- 재해위험지 건물 못 짓게
- 지자체, 도시설계 주도해야
“부산은 돈과 자동차를 위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람과 안전을 위한 도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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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로버트 패터슨 교수가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하도록 설계된 부산의 도시계획을 지적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
도시계획분야 석학인 미국 텍사스주립대 로버트 패터슨(Robert G. Paterson·57) 교수가 지난 22일 부산에 왔다. 부산대 주최로 이날 벡스코에서 열린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도시통합모델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하기 위해서다. 패터슨 교수는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와 UNC채프힐을 졸업하고 현재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에서 도시정보연구소장을 겸임하며 도시지역계획학을 강의하고 있다. ‘부산을 적정도시로’ 시리즈를 연재하는 본지는 그를 만나 부산의 도시계획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대만 중국의 다른 아시아 도시도 가봤지만 부산은 유럽 도시만큼 생활의 질이 높아서 놀랐다”며 부산서 받은 인상을 전했다. 그러나 패터슨 교수의 ‘립서비스’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곧바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국인은 자동차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차를 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근거로 패터슨 교수는 센텀시티를 예로 들었다. “이곳(센텀시티)은 하나의 블록(구역)이 너무 큽니다. 그사이에 놓인 도로도 지나치게 넓죠. 이것을 ‘슈퍼 블록(Super Block)’이라고 하는데, 가로세로 길이가 1500m×2000m 이상으로 설계돼 있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힘듭니다. 사람이 아닌 차를 위한 도시를 설계한 셈이죠.”
그는 도시의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블록의 크기가 최대 200m×200m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터슨 교수는 “걷기 좋은 도시, 즉 ‘워커블 시티(Walkable City)’는 블록이 크면 안 된다. 작은 블록으로 도시를 설계하면 도로 연결성이 확대되면서 학교 병원 공원 등을 걸어서 5분 거리에 갈 수 있다”며 “미국도 ‘슈퍼 블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좌우하는 고층 아파트에도 주목했다. 주거지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한, 아파트 일변도인 현재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장년층 이상 세대를 위한 기존 주거지를 복원·재생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초고층 아파트가 너무 많더군요. 이런 단지가 외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출입도 막는다고 하던데, 이러면 도시 전체의 공공성이 무너집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고층 빌딩에 도 우려를 제기했다. 이상 기후로 해안, 강변에 건물을 지으면 재해 를 당할 위험이 높은데, 부산은 아슬아슬할 정도로 해안선에 근접해 짓는다고 지적했다. “해운대 일대 아파트를 보고 아찔했습니다. 방파제를 쌓으면 된다지만 이는 생태적이지도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닙니다. 해수면이 상승한다고 계속 방파제를 높일 건가요?” 이어 그는 “미국은 오래전부터 건물을 해안선에서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자연재해가 잇따르자 도시계획도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가 도시 설계를 개별 사업자에게 맡겨놓지 말고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이들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정부가 ‘해안선 가까이에는 건축물을 못 짓게 하겠다’고 선언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은 해안가 등 침수 위험지에는 재정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거죠. 대신 해안선에서 일정 간격 이상 떨어져 건축물을 지으면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줍니다.”
패터슨 교수는 도시와 사람의 안전을 한 번 더 강조했다. 해안선을 비우는 것도, 블록을 작게 쪼개는 것도, 도시의 연결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결국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개발업자들은 땅만 있으면 일단 높이 지으려고 하죠. 정부는 이를 공공시설로 제한해야 합니다. 규제가 아니라 도시와 사람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박호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