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고 도시계획 전문가
- “북항 바다 시민에 돌려주고
- 항만 기능·공항은 가덕도로”

- “한일 해저터널 실현된다면
- 세계 물적 교류 중심 될 것”

정갈한 옷매무새와 백발, 안경 너머 눈엔 총기가 진했다. 4일 오후 부산대 건축관에서 만난 건설융합학부 서의택(81) 석좌교수의 모습이 그랬다. “사람 능력이 다 엇비슷한데, 나라고 뭐 그리 대단한 구석이 있겠습니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게 운이 따르곤 했을 뿐입니다.” 서 교수는 겸양의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서의택 부산대 석좌교수가 최근 부산대 후배들이 발간한 ‘서의택 평전’ 내용과 함께 부산지역의 굵직한 도시계획을 맡았던 배경을 말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서 교수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도시계획학 전문가다. 지역 대학교수 출신으로 이례적이게 ‘건설국회’라 불리는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위원장을 여러 차례 지냈다.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추진위원장, 청와대 지역균형기획단 자문위원 등을 맡았고 거가대교, 북항재개발, 가덕도 신공항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철학을 강단 밖에서 실현하는 데 힘썼다.

그 삶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부산대학교 후배들이 최근 ‘서의택 평전’을 내고 봉정식을 열었다. 한사코 자서전 쓰기를 마다하는 꼿꼿한 서 교수의 성격에 후배들이 ‘작정’하고 감행했다. 서 교수는 “기록까지 남길 일은 아니다 싶어 자서전 권고를 물렸다. 어느 날 후배들이 ‘평전을 낼 테니 그리 아시라’고 통보해왔다. 평전은 남이 써주는 것이니 내게는 쓰라 마라 할 권한도 없다 하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도시계획학을 접하는 데서부터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대학원 시절 도시계획 교과서를 정리하는 교수 밑에서 일을 거들었다. 건물 한 채에만 집중하는 건축학과 비교하면 건물·도로 등 여러 시설 사이의 인과를 따져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는 일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선 부산공업대학 시절 마침 서 교수에게 도시계획 강의가 주어졌다. 교과서 집필을 도운 ‘내공’으로 강의를 맡으며 그는 점차 도시계획학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1975년 프랑스 유학이라는 또 하나의 행운이 찾아왔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항공권과 등록금, 체재비를 모두 주는 ‘풀 스콜라십’ 유학생을 모집했다. 당시 불어로 말하는 데 미숙했는데 마침 면접관이 영어로 말하는 게 가능했고,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만난 러시아인 지도 교수도 영어에 능했다. 논문은 불어로 썼지만 주변에 도와주는 학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서 교수는 2년여 만에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따 귀국했고, 국내 몇 없는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행정 자문과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부산은 경관 측면에서 보면 실패한 도시다’. 평전에 쓰인 이 말의 의미를 묻자 서 교수는 “부산의 ‘메이저 스페이스’는 산과 바다다. 하지만 피란도시 부산은 고도 100ｍ 이상 산복도로를 보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다는 어떨까. 서 교수는 1990년대 북항 재개발을 주장하며 ‘친수공간’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는 “도심과 인접한 북항은 시민이 아니라 화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돼왔다. 항만 기능을 옮기고 북항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가덕도 신공항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그는 항만의 기능이 가덕도로 옮겨지면 공항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서 교수는 “신공항은 지역감정을 초월해 국가적 인프라라는 관점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일 해저터널 건설은 10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 구상이다. 서 교수는 “철도는 가격·시간 측면에서 합리적인 수단이다. 해저터널은 1시간 만에 한국과 일본을 철도로 잇는 구상”이라며 “경기도에서 중국을 곧바로 잇는 해저터널 구상안도 나오고 있다. 3국 간 역사·정치적 앙금 등 해결할 문제가 많지만, 실현된다면 아시아가 인적·물적 교류 측면에서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