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서울시 총괄협치지원관
- 부산시 방문 협치교육 강의
- “정책 설계과정부터 시민 참여
-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은 필수
- 추진 속도 느려진단 단점 불구
- 가고자하는 방향이 더 중요”

“협치(協治)란 행정과 시민이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것입니다. 시민이 행정에 참여함으로써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두 가지 효과가 있어요.”

이강준 ㈔시민 운영위원장은 “정책을 만들기 전 시민의견을 먼저 듣는 청책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협치를 이강준(46·전 서울시 협치추진단 총괄협치지원관) ㈔‘시민’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정의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부산시청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부산시 간부공무원 대상 ‘협치역량 강화교육’ 강의를 위해 부산을 찾았다.

과거 여야 협치 등 정치권에서 주로 통용되던 용어가 이제는 행정의 무대로 옮겨왔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이끄는 민선 7기 부산시정도 협치를 강조한다. 전담조직인 시장 직속 ‘시민행복추진본부’를 만드는 등 시민협치를 시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행정에서의 협치 모델은 서울시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부임으로부터 시작된 서울시정에서의 민·관 협치는 7년째 호평받으며 순항 중이다. 그 과정을 주도한 이 위원장은 “과거에는 관이 행정을 주도해 일방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지금은 민과 관이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함께해 복잡다단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고 결과의 만족도,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식을 원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협치를 위해 ‘청책(聽策)’ 과정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정책을 세운 뒤 공청회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청취해 결과에 반영했다면, 현재는 부서별로 정책을 만들기 전 시민 의견을 먼저 듣는 ‘청책 토론회’를 연다. 시민 생각을 듣고 주민과 공무원, 전문가가 함께 ‘숙의 토론’을 거친 뒤 계획을 수립한다. 이는 예산 편성과 집행으로 이어진다. 요즘 행정에 강조되는 ‘민·관 거버넌스’가 쉽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구조다. 이 위원장은 “여기서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다. 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시민이 생각을 개진해야 민의가 왜곡되지 않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1만 원 이상의 예산이 드는 정책 내역은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 위원장은 “공문서 결재란에는 ‘시민결재칸’이 따로 있고 서울시 조직도를 보면 시장 위, 즉 맨 위 칸이 시민의 자리로 돼 있다”며 “이는 정책 모든 과정에 시민이 참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협치의 결과물 중 대표적인 게 ‘원전 하나 줄이기’와 ‘올빼미버스’다. 원전 하나 갖추지 않은 소비도시 서울이 ‘에코 마일리지’ 제도를 통해 원전 한 기가 생산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내용이다. 이 민관 운동은 마을 단위로 확산돼 성과를 거뒀다.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운행하는 올빼미버스는 한 대학생의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는 대학생이 집으로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버스를 늘려달라고 요구한 게 시작이었다. 버스회사는 수익성이 없어, 택시업계는 수입이 줄어 반대했다. 하지만 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심야시간대 동선이 많은 곳을 우선으로 심야버스를 운행하기로 하고, 업계에 양보를 얻어내 현재 운영 중이다.

정책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는 취지는 좋으나 이러한 방식의 약점은 속도라는 지적에 대해 이 위원장은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부산시는 협치학교 등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시민 참여를 늘리는 지원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위원장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국회의원 보좌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등을 거쳐 2016~2017년 서울시 협치추진단 총괄협치지원관으로 일했다. 이후 대학에서 시민교육과 협치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 ‘시민’에서 이사 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